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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예수님을 따르는 길
조회수 | 2,789
작성일 | 05.11.18
위기에 처한 여자 청소년들을 위해 불철주야로 뛰시는 존경하는 수녀님께서 체험하신 일입니다. 부모에게 외면당한 아이였을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도 셀 수도 없이 많은 상처를 받은 아이였겠지요. 아무리 기를 써도 그 상처가, 그 아픔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필요했던가 봅니다. 아이는 시설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출을 거듭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

한 울타리에서 생활하는 다른 아이들에게 미칠 악영향, 가출할 때마다 파생되는 심각한 문제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텐데, 수녀님께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밤 열두시가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가출한 아이에게서 수녀님을 찾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수녀님, 저예요."
 
"응, 그래. 너구나. 지금 어디니?"
 
"좀 먼데요. 여기 ○○동이에요."
 
"괜찮아. 꼼짝 말고 거기 가만 있어라. 내가 지금 바로 갈게."

수녀님께서는 아이에게 왜 또 가출했는지 묻지 않으십니다. 왜 그 늦은 시각에 거기 있었는지도 묻지 않으십니다. 오직 기쁜 마음으로 데려오십니다. 그저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십니다. 다시 한 번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말씀만 하십니다. 수녀님은 어쩌면 또 다른 돈보스코이십니다. 수녀님은 참된 사목자가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보여주셨습니다.

사목이란 세상 사람들이 사목자를 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을 향해 사목자가 다가서는 것입니다. 사목자가 세상을 향해 자신을 활짝 여는 것이 사목입니다. 참 사목자는 언제나 준비되고 열린 마음으로 기쁘게 잃어버린 양떼를 찾아나서는 사람입니다.

당장 사정이 딱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혹은 당장 거처가 필요한 사람들을 시설로 입소시키기 위해 이곳 저곳 문의를 하다 보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물론 대상자에 대한 정확한 신상파악도 중요합니다. 시설이 이미 적정 수용인원을 넘어서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지요. 그러나 당장 너무나 다급한데도, 시일이 오래 걸립니다. 준비해야 할 서류도 너무 많습니다. 한마디로 너무 문턱이 높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곳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요. 말 떨어지기기 무섭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빨리 데려오십시오." "무척 상황이 딱하신 것 같은데, 사람이 우선 살고 봐야지요. 서류야 나중에 천천히 해도 되니, 우선 모시고 오십시오."

이런 대답을 들었을 때 정말 기분이 좋고 살 맛이 납니다.

오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맞아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하신 예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 번 한 가지 진리를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보잘 것 없는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휘청휘청 걸어가는 사람들, 그 사이에 현존하시며 절대로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는 진리를 말입니다.

복음서 전체를 한번 훑어보면 이 사실은 명백하게 입증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아주 드물게 고관대작 집에 초대도 받으셨지만, 거의 대부분 시간을 가난하고 소외받은 민중들 사이에서 지내셨습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예수님은 언제나 주도권이나 기득권을 쥔 사람들 편이 아니라 고통 받는 백성들 편에 서셨습니다.

결국 현실적 눈으로만 바라본다면 '예수님=가난한 사람, 불행한 사람'이셨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사람'로 지칭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면 우리는 바로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가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간 것입니다.

요한 23세 교황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린 교회가 돼야 합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문을 활짝 여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레르카로 추기경님께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이렇게 강조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영혼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조직, 정체성 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소중한 보물입니다."

우리가 철저히 예수님을 추종한다면 결국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들 곁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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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463 49.6%
불우한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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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역 가까이에 있는
성모 대성당 맞은편 길가에는 안토니오라는 나폴리 출신의 노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돈이 생기면 음식보다 술을 사 마시고 술에 취해 길거리에 쓰러져 자곤 했습니다. 나는 기숙사가 그 근처에 있어 그가 누워 있는 길을 수시로 지나가곤 했습니다. 오랫동안 몸을 씻지 않아서 그에게는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행인들은 그가 풍기는 냄새와 모습에 놀라 황급히 그 자리를 피해 지나갔습니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에게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안토니오를
도와주는 것을 기숙사 친구들이 알고부터 위험하니 가까이 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외면할 수가 없었고 학교에서 간식으로 먹으려고 싸온 빵을 그에게 주곤 했습니다. 종종 그를 데리고 근처 바에 가서 커피와 빵을 사주곤 했는데, 하루는 바 주인이 영업에 방해가 되니 다시는 오지 말라며 면박을 주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몹시 민망했지만 상처받을 안토니오를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습니다. 나는 주인에게 “공짜로 달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내고 사먹는데 왜 그러느냐?”고 따졌습니다.

그해 가을,
다른 지방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고 9월에 기숙사에 돌아오니 친구 페네시아가 안토니오가 뉴스에 나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뉴스에 따르면 로마역 근처에서 노숙하던 한 남자가 더위에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안토니오가 노숙하던 곳을 지날 때마다 슬픈 눈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받는 작은 불편 때문에
고통받는 이웃에 대해 무관심과 무례함을 일삼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통해 자신의 불행한 처지 때문에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왜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했을까요?

사회의 약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로는 삶을 변화시킬 수 없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음을, 그들에게도 인간의 존엄성이 있음을 상기시키시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우리 사회가 강자에게는 너그럽지만 약자에게는 무자비함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당신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어야 함을 알려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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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자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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