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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구원의 길
조회수 | 3,018
작성일 | 05.11.18
그리스도 왕 대축일인
오늘 많은 본당에서 주님께서 한 해동안 베풀어주신 풍성한 은혜에 감사드리는 추수감사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말 그대로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의 왕이심을 경축하고 그리스도의 백성들이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기뻐하면서 온 세상이 그리스도 왕의 통치로 인하여 새롭게 되도록 기원하는 축일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된 주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는 일에 동참할 것을 다짐함과 동시에 세상 마지막날에 오실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가 치를 '셈'을 생각하며 하루 하루의 삶을 더욱 충실히 살아갈 것을 되새기는 날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주간은 성서주간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연중 마지막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여 자칫 소홀하기 쉬운 성서 읽기 운동과 함께 성서 보급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서 주간을 맞아 우리는 성서를 늘 가까이 하고 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도록 더욱 힘써야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요한 6, 68). 베드로 사도의 말처럼 주님께 대한 믿음을 더욱 굳게 고백하고 말씀과 함께 살아가도록 다짐합시다.

성서는 그리스도가 왕이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셨고, 왕궁은 커녕 머리 둘 곳조차 없을 만큼 가난한 분이셨습니다.  힘없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무력해 보이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진정한 왕이 되었겠습니까?

그 이유는 하느님이신 분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셔서 섬김과 가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진리의 길을 걸어가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신의 부활로써 그 길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해주셨고, 그럼으로써 세상의 모든 권세를 굴복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는 우리의 진정한 왕이십니다.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가 진정한 왕이 되어 다시 오실 때 어떤 기준에 의해 '셈'을 치르게 될 것인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마태 25,35-36). '너희는 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 25,34).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의 글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다를 항해하던 배가 파선이 되어서
선원 한 사람이 파도에 밀려 어느 섬에 닫게 되었습니다. 섬의 원주민들이 선원을 발견하고는 추장 앞으로 데려 갔습니다. 선원은 '이제 내가 저들의 손에 죽게 되는 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원주민들은 선원을 그 섬의 임금으로 추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원은 왕의 자리에 앉아 권세를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상히 여겨져
하루는 원주민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원주민들이 하는 말이 "이 섬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왕을 세웠다가 1년이 지나면 그 왕을 다시 무인도로 보내서 그곳에서 죽게 만듭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원은 깜짝 놀라서
'구원받을 길이 없을까?'하고 곰곰이 생각하던 중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선원은 원주민들에게 명령하기를 배를 한 척 만들어서 그 배에 곡식과 과일 나무를 싣고 무인도로 가서 심으라고 했습니다. 임금의 명령이므로 원주민들은 모두 순종했습니다. 드디어 1년이 지나자 원주민들은 임금을 무인도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선원은 자기가 임금으로 있을 때에 구원의 길을 준비했던 까닭에 여생을 안전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구원의 길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너무 근시안적으로 현실에만 집착해서 살지는 않습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구원의 길을 준비하는 삶인 것입니까? 그 답을 오늘 복음은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종으로서의 왕, 겸손의 왕, 가난의 왕으로 오신 주님을 본받아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섬김으로써 그리스도의 왕직을 세상 속에서 수행합시다.

그리고 이번 주간을
마지막으로 연중 주일은 끝이 나고 다음 주일부터는 교회력으로 새해인 대림주일이 시작됩니다.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생기기 쉬운 이시기에, 우리는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면서 나로 인해서 상처받은 이웃을 생각하고 그 사람에게 화해와 용서를 청하며 사는 한 주간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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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허춘도 도마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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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범이의 걱정

언젠가 평일미사 후에 본당 수녀님께서 “신부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 다가오는데 꽃꽂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하며 물어오셨습니다. 꽃꽂이를 왜 나에게 물어보시냐고 하자 수녀님께서 “그러게요. 참 고민되네.” 하시며 발길을 돌리셨습니다. 그렇게 고민하셨던 수녀님의 작품은 왕관이었습니다. 꽃으로 멋진 왕관을 만드셨습니다. 잎새란과 명자란, 해바라기와 소철 등이 사용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전례력으로 한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주일인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셨음을 기념하고 나아가 세상의 끝 날에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고대하는 희망을 새롭게 합니다.

먼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이신 메시아에 대한 기대는 다분히 현세적인 것이었습니다. 태평세월을 가져다 줄 그런 왕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입성 때 당신을 이스라엘 왕으로 찬양하는 백성을 묵인했고 빌라도 앞에서 당신이 이스라엘 왕임을 부인하지 않았으나 당신의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왕국은 사랑과 희생을 통하여 세워진 왕국이요, 섬김과 봉사의 왕이 다스리는 왕국입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왕국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이들을 위해 봉사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단순한 박애정신이나 인간적 동정심에서가 아닙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말씀 따라 우리는 그들 안에서 주님을 뵙고 알맞은 봉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봉사는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에게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에게도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나보다 부유하고 건강하며 나보다 많이 배운 사람에게도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잘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들 역시 부족함과 나약함을 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 역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고 나의 봉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저희 본당에서는 첫영성체 교리가 한창입니다. 얼마 전 할머님과 함께 성당을 나오기 시작한 용범이란 어린이가 있습니다. 주일마다 새로운 친구를 한명씩, 벌써 4명을 데리고 왔는데 주일 아침마다 친구 집을 직접 찾아 준비시켜 데려옵니다. 글쎄 이 어린이가 요 며칠 전 주일학교 선생님께 “선생님, 그런데 제가 친구들을 너무 많이 데려와서 성당이 비좁으면 어떡하죠?”하더랍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성당이 비좁으면 우리 신부님께서 더 큰 성당 지어 주실 테니 그런 걱정은 하지마라’고 했답니다. 참 기특하기도 한 이 어린이 덕분에 아마도 내년부터는 어린이 미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태양은 가난한 이들의 이불이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태양이시며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의 삶을 따뜻하게 해 주시듯 우리의 봉사도 따사로운 햇살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대부분 본당에서 추수감사절을 보냅니다. 풍작이 되게 땀 흘려 농사를 잘 짖고도 시름에 잠겨있는 농민들이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고 모두가 기쁨 속에서 감사의 날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또한 오늘부터 시작하는 성서 주간에 하느님 말씀에 젖어 한 주간을 지내며 대림절을 맞게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주님, 저희는 이제 저물어가는 한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아직 못 다한 일이 많이 남아 있지만 새해에도 계속해서 잘 이어갈 수 있도록 함께하여 주소서. 저희에게 이토록 소중한 신앙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영원히 영광 받으소서. 아멘

김종섭 갈리스도 신부
  |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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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찬미 예수님!
한 주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흔히들 사는 것이 쉽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적어도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하고 남보다 더 빨라야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하여 살아가는 세상, 느린 사람은 잡아주고 적은 사람은 나누어 주는 세상이 참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오늘은 연중 마지막 주일이며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주님께서 왕이심을 기뻐하며 동시에 세례를 통하여 우리도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기뻐하는 축일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셨는데 사랑과 봉사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세속적인 왕은 권력과 힘으로 군림하는 사람이지만 왕으로서의 주님은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신 분입니다. 지난 두 주간의 복음은 하느님 나라가 임박했다는 것을 전해주면서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가르쳐줍니다. 오늘 복음은 최후심판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으며 심판의 기준이 다름 아닌 사랑의 실천이라고 전해줍니다. ‘많이 가졌는가? 혹은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을 실천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즉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사랑을 실천했는가?’하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으신 주님은 마지막 날에 모든 민족들을 불러 모으시고 그들을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구분하십니다.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이루어 놓은 업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며 직업으로 구분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 당신이 굶주렸을 때, 병들었을 때, 그리고 감옥에 갇혔을 때 관심을 가져주었는지 물으시며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 그들에게 베푼 작은 관심과 사랑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라고 그분은 말씀하시며 심판의 기준은 사람들을 돌보는 구체적인 사랑뿐이라고 강조하십니다. 결국 주님을 사랑한다는 신앙고백은 행위로써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므로, 이제 우리들은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하며 그때 우리는 그분의 왕직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사랑의 나눔, 사랑의 실천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하겠지’하는 생각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형제를 이야기하고 친구를 이야기하고 이웃을 이야기하지만 진정 그들이 어려울 때, 힘들어할 때, 병들었을 때 찾아가보고 도와주었는가를 반성해 보아야합니다.

이 세상에는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어렵게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가진 바를 나누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누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고 인도의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혼자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나눔을, 남보다 위에 서려고 하는 것보다 섬김을, 경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것입니다. 어려운 이들 뿐만이 아니라 나이 많으신 어른들, 몸이 불편한 장애인, 가난한 이웃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기에 그들을 누군가 도와주면서 살아갈 때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이시며 목숨까지 바쳐서 사랑을 증거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가 잘 살아가기를 원하시며 나눔과 섬김의 세상,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원하십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1코린 15, 22) 우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주님을 보아야하며 우리 주위의 사람들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형제애로 살아가며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에서 주님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사랑과 봉사의 왕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면서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기 위해 할 일이 무엇이며 아울러 우리 형제들에게 해 준 것이 바로 주님께 해 준 것임을 깨달으며 살아갑시다. 아멘.

김한모 바오로 신부
  |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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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떤 다스림을 …

오늘은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이며 하늘과 땅의 모든 민족과 인종을 한데 모으기 위해 가르치고 통치하며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왕이란 말은 오늘날 유행에 뒤떨어진 옛 시대의 말 같지만, 우리는 일상생활 안에서 각자의 왕(주인으로, 우선적으로)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예언자들이 말하는 하느님이 아닌 ‘거짓 우상’으로 권력이나 야심, 재산, 쾌락, 성욕 혹은 논쟁의 승리감, 자기 성취욕 등으로 포장되어 나타났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성서는 누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맘몬 중 하나를 사랑하면 다른 하나는 미워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 아우구스띠노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자아를 망각하지만, 거짓 자아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을 망각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각자의 삶, 일체의 언동 밑바닥에는 결국 하느님의 초대에 “예”라고 답하거나 “아니오.”라고 뒤돌아서며 귀를 막은 데서 각자가 받들어 섬기는 임금의 정체가 확연히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빌라도의 심문에 예수께서는 “내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그리스도의 왕국의 정체는 무엇이며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되 다만 그 존재 방식과 법도를 이 세상의 왕국과 달리하는 왕국입니다. 세상의 왕국과 본질을 달리하는, 그리고 존재방식과 법도를 달리하는 그리스도의 왕국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요한 18,36)나라이며, 경제적 수단이나 공격과 방어의 도구를 상비해 두어야 하는 어떤 정치적 구조나 조직체와 동일시 될 수 없는 나라이며, 진실과 진리가 통용되는 나라입니다. 진실과 진리를 증거하고 목말라하고, 배고파하며,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어 모인 나라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를 으뜸(王)으로 모시는 우리는 오늘 미사의 감사송에서 밝혀졌듯이 우리의 율법은 사랑의 계명이고, 목적은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으며 이 나라의 특징은 정의의 나라, 사랑의 나라, 생명의 나라, 진실이 통용되는 나라, 은총의 나라, 평화의 나라임을 명심합시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 때, 한 주간을 뒤로하고 새 주간을 맞이하기 전에, 한 달을, 그리고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지난날들을 뒤돌아보며 나와 주위 이웃들에게 잘잘못을 되짚어보고 반성하며 새해, 새날의 결심을 다짐합니다.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그리고 모시고 있는 우리 임금께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떠한 태도로 살아왔는지 돌아봅니다. 오늘 교회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특별히 그리스도를 내 안에서 얼마만큼 왕으로 모시고 흠숭하고 찬미하고 받들어 섬기는데 노력했으며, 또한 지금까지 그리스도 왕국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자 생활했는가를 깊이 돌아보도록 합시다. 그분을 왕으로 모시고자 시민권(세례성사)을 얻었고, 하느님이 통치하는 나라의 방위군으로서(견진) 얼마만큼 외부의 도전에서, 그리고 내 자신이 그 나라의 시민으로 의무와 책임을 다했는지, 자타가 공인하는 하느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왔는지 생각하고 반성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며 그 분을 맞으려 길을 재촉합시다.

▤ 안동교구 이준건 콜베 신부 : 2017년 11월 26일
  |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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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종말론적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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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전례력으로 올 해의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창조와 함께 시작된 하느님의 계획이 왕이신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성된다는 종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시작과 끝에 대한 관심은
인간이 이 지구상에 서식한 이래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연과학도 성서상의 초자연적 계시도 우리의 의문에 대하여 명확한 대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시공을 초월하는 세계를 시공의 개념으로 알기란 어렵겠지요!

전통적 신학은
사후세계에 어떤 일련의 장소적 개념으로 설명을 시도합니다. 사심판과 공심판을 거쳐 천당, 연옥과 지옥으로 진행되는 물리적인 종말로서, 세상이 그 마지막 굽이를 돌아 찾아오는 어떤 천지개벽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현대신학은
종말의 세계를 물리적 종말을 기다릴 필요가 없고 시, 공간적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장소 개념이 아닌 상태개념으로 설명을 시도합니다.

천당은
하느님과 하나 된 삶을 살아가는 삶, 현세에서 하느님을 선택한 삶으로서 선행이나 사랑의 친교를 통해서 체험되는 용서, 평화, 행복 등이 그 천국의 표징이라 생각합니다.

지옥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선택하지 않고 거부하는 삶으로 하느님과 공동체와 이웃으로부터 멀어져 이탈함으로서 자신의 삶을 망가뜨려 버린 굳어진 삶이고, 죄를 지어 양심의 가책을 받는 고통이 지옥의 상징이 아닐까요?

연옥은
하느님을 뵙게 되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요인들을 씻는 정화의 단계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죽어서 어디로 갈 것인가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지금 여기서’ 천국의 기쁨 곧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여기서 하느님과 함께하면 나의 미래는 희망과 구원이요, 지금 여기서 하느님과 함께하지 못하면 나의 미래는 절망이요 심판이리라!

‘지금을, 현재를 살아라!,
‘한 순간이 영원이고 영원이 한 순간이다’(화엄경),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같다’(시편),
‘없어도 되는 내가 이렇게 살고 있음 자체가 가장 큰 기적임을 깨닫도록 회개하며 살아라!.

신앙인의 눈에는
영원이 희미하게나마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은 천국의 가치(kingdom value)를 살면
영원을 사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나눔, 용서, 화해, 일치, 사랑 등이 천국의 가치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알아보고
발견해 내며 살아내는 식별(discernment)의 영성이 현대 신앙인에게 필요합니다. 이게 바로 현재를 사는 것이요 구원을 사는 것이며 영원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말론적인 삶은 영원을 미리 앞당겨 커다란 희망 안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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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정일 가브리엘 신부
2020년 11월 22일 <안동교구 주보>에서
  |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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