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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가깝고도 먼 길
조회수 | 3,075
작성일 | 05.11.19
기원 전 931년 이후 하나의 이스라엘은
두 왕국으로 갈라지는 불운의 역사를 맞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서로 갈라진 유다와 이스라엘 왕국은 각자 정통성을 주장하면서도 하느님 신앙에서 멀어지며 예루살렘 외에 지방산당들을 짓고  우상숭배에 빠지기까지 한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런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은 백성을 잘못 이끈 왕들과 종교 지도자들이라고 한탄한다.

그래서 예언자의 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된 목자를 잃고 헤매는 양들의 모습으로 비치었다. 오늘 제1독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어 줄 참된 지도자인 목자를 목말라 하며 그 희망을 예언자는 전하고 있다. 그 목자는 양들이 입은 상처를 싸매주는 인자한 모습이면서도 양과 양 사이 숫양과 숫염소 사이의 시비를 가려 줄 공정한 심판자의 모습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구약배경에서
예수님께서는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세상 종말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신다. 그 때 주님께서는 양과 염소를 구분하시는 목자이시면서도 임금의 모습으로 오신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의인인 양과 악인인 염소를 가르는 기준조건은 심판관이 정해주는 것이 아닌 심판을 받는 각자가 직접 "사랑실천"을 통해서 마련한다는 점이다.

그 조건은
까다롭거나 차별된 것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공평한 것이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할 수 있는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는 것,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는 것, 나그네 되었을 때에  맞아 주는 것,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는 것,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는 것, 그리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는 것'이라는 구체적인 점들을 들어 주님께서 설명해 주신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이라는 말이 있다.
머리로는 주님의 말씀을 "타당하고도 지당하옵니다"라고 떠들면서도 막상 그 말씀을 실천하기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활에서 체험한다. 야고보 사도는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 입니다"(야고 2,26)라고 신앙인의 핵심을 찔러준다.

이제 우리는 연중시기를 마감하며
대림시기로 바뀌는 소중한 때를 맞고 있다. 성서주간이기도 한 이 의미 있는 한 해의 마감 길목에서 주님의 말씀에 더욱 맛들이며 그 믿음으로 소외된 내 이웃에게 한걸음 더 다가서며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을 새길 때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봉사와 사랑을 하시며 세상을 다스리시는 진정한 왕 이심을 고백하며 대림시기를 준비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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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정인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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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고 사는 명령

교회 전례력으로도 일년의 마지막 주일인, 마지막 때의 심판이야기를 복음으로 듣는 주일이며, 내게도 '생활 속의 복음'을 쓰는 마지막 주일이기도한 오늘, 좋아하는 '옛날 먼 옛날에'라는 동화를 함께 듣고 싶다.

어느 날, 한 고관 나리가 어떤 곳을 지나다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장한 병졸이 엄숙한 얼굴로 파수를 보고 있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처는 허허벌판일 뿐 중요하다고 생각될 만한 건물은커녕, 물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리는 파수병한테 물었다. “자네, 무엇을 지키고 있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파수병은 부동자세로 대답했다. “예, 저는 오로지 상관의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고관나리는 상관을 찾아가 물었다. 그러나 그 상관 역시 더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명령에 따를 뿐이라고 했다. 나리는 계속해서 명령을 내렸다는 높은 곳을 찾아가 보았으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오로지 빈 명령만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바뀌어 옛날 먼 옛날에 큰 성이 있었고, 그 성안에는 아름다운 꽃밭이 있어 여러가지 화려한 꽃이 만발하였다. 어느 날 아침 꽃을 좋아하는 왕이 꽃밭 사이를 산책하다가 후미진 곳에 핀 아주 작은 낮선 꽃을 발견하였다. 왕은 이 가련한 꽃이 마음에 들어 혹시나 짓밟힐까 염려하여 파수병을 세워 이 꽃을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세월이 흘러 세상은 변했다. 옛 성은 무너지고 아름다운 꽃밭은 허허벌판이 되었다. 그런데 빈 명령만이 되풀이되고 있었던 것이다. 연중 마지막 주일이며 그리스도왕 대축일인 오늘의 복음말씀은 최후의 심판에 관한 내용으로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이자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공적 가르침의 총 결산인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는 말씀이, 오늘 우리 시대의 ‘나'에게 지켜지는 가르침인가? 아니면 아무 의미도 없는 ’빈 명령'인가?

우리는 혹시 이 가르침을, 무엇을 지키는지 그 목적도 모르고 그냥 엄숙한 얼굴로서 있기만 하는 파수병처럼 그저 지켜보고만 있지 않는가?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이웃에게 사랑과 자비의 실천적 행동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신 “나에게서 떠나라, 그리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라"는 그리스도왕의 명령도 빈 명령일 수 없다,

그렇다. ‘사람의 아들'을 알아 뵙는 일과 '여기 있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알아보는 일 사이에는 특별한 연관이 있다. 즉 대신관계(對神關係)와 대인관계(對人關係) 사이에는 특별한 연관과 상호작용이 있다. 인간의 근본은 하느님이며, 그 분과의 관계가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인간은 하느님을 인간들 사이에서 만나고,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최후의 심판 비유의 핵심은 바로 이 두 관계에서의 실천적인 행동이다. 세상 종말에 오실 그리스도왕이 어떻게 사람들을 심판하실지, 그 심판의 척도는 실천적인 행동, 즉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자비와 사랑의 행동이다. 우리 구원의 결정적 가치 기준이 어떻게 말했느냐, 어떻게 생각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했느냐라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 역사를 들추어보면 수많은 왕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였고, 지금도 대통령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이야기에서처럼 자신이 벌거벗은 줄도 모르고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옷을 입은 양 착각하고, 보란듯이 거드름을 피우며 거리를 행차하면서 ’자기를 섬기라'는 크고 작은 임금님들이 많다. 순진한 어린이의 눈, 진실의 눈으로 불 때는 “야! 벌거벗은 임금님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왕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말․생각이 아닌 행동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그리스도왕은 사람을 좋아해서,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유다인의 왕(INRI)'이라는 억지 죄목의 명패를 달고, 벌거벗은 몸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자기를 섬기라'가 아닌 ‘여기 있는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잘하라’는, 다른 왕들은 흉내도 낼 수 없는 명령을 주셨다.

이 명령을 뒤집어 보면, 그리스도왕은 우리의 이웃 안에서, 가장 상처받기 쉬운 모습으로 현존하신다는 사실이다. 이 명령이 ‘옛날 먼 옛날에' 이야기에서처럼 빈 명령으로 되풀이되는 오늘의 현실이지만, 세월이 흘러 장면이 바뀌면, 바로 나의 마지막 이야기라는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 살아오면서 내가 상처 주고 소외시킨 사람들을 한사람씩 떠올리며, 또 나를 상처 준 사람들을 떠올리며 용서하고, 용서받는 마음으로 주의기도 한번씩 바치면 어떨까, 그럴 때 빈 명령이 아닌, 지키고 사는 명령이 되지 않을까. 나에게 상처받은 사람이 바로 나의 그리스도왕이다.

김현준 신부
  |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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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섬김 - 엄마의 수술

엄마는 무엇이든 자식들을 위해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십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느닷없이 조금 멀리 여행을 다녀온다면서 나가셨습니다. 저는 방학이라 늑장을 부리며 오후에 다 되어서야 일어나서는 웬 여행이냐며 밥 차려 먹는 게 귀찮아 불평하며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늦은 저녁, 엄마는 여행이 취소됐다며 돌아오셨습니다. 표정이 평소와 달리 안 좋아 보이셨습니다. 여행이 피곤했던 탓이겠지 하며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방에 앉으시더니 저를 부르셨습니다. 엄마는 작은 가방에서 통장 하나를 꺼내셨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어 뭐냐고 여쭤 보았습니다. 엄마는 "피아노 사고 싶다면서…. 엄마가 그동안 조금씩 모아 봤다" 하셨습니다. 저는 피아노 연주를 무척 좋아하는데, 제게는 고작 전자피아노밖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날 저녁, 아빠가 퇴근해 들어오시면서 "입원하라니까 왜 안 했어?" 하고 역정을 내셨습니다. 저는 무슨 소린가 싶어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쳐다보았습니다. 그제야 엄마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딸이 좋아하는 피아노 사 주려고 입원도 하지 않으신 채 돌아오셨던 겁니다. 그리고 딸이 걱정할까 봐 수술 이야기는 입 밖에도 내지 않고 잠깐 여행 다녀오신다고 거짓말을 했던 거고요.

겨우 밥 차려 먹는 일조차 귀찮아 불평했던 딸이 뭐가 예쁘다고 피아노까지 사 주시는 건지….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안 울려고 했는데 결국 엄마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습니다. 엄마의 사랑은 바로 이건가 봐요. 보이지 않게 자식들 걱정하고 자신 몸 희생하며 자식들을 위해 뭐든 해 주고 싶은 마음. 그날 이후로 저는 전자피아노로 피아노 연습도 더 열심히 하고, 집안일도 많이 한답니다.

"엄마, 엄마가 제게 해 주신 만큼 이 딸도 최선을 다해 효도할게. 사랑해."

[좋은 생각]에서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최후심판 이야기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 까지 인간을 위해 희생과 섬김을 유산으로 남겨주신 주님을 거듭 묵상하고, 위의 이야기에서 부모가 자녀를 위해 헌신하듯 서로 섬기는 사람들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굳게 다짐하며 주님의 은총을 구했으면 좋겠습니다.

한상용 신부
  |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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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타는 혼인을 하자마자 남편을 왕처럼 대했습니다. 사람들은 남편을 너무 깍듯하게 대하는 아가타에게 여러가지 조언(?)을 했습니다. 신혼 초에는 아내가 주도권을 잡아야 하고, 기싸움에서 밀려서는 안 되며, 시작부터 너무 잘하면 나중에 감당하기가 힘들다고 충고를 해줬습니다.
 
그러나 아가타는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여전히 남편을 왕처럼 모셨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를 묻자 아가타는 "제 남편이 왕이면 저는 왕비이니까요!"하고 대답했습니다.
 
남편을 왕으로 대하는 아내는 왕비가 되듯이, 남편을 노예로 대하는 아내는 노예의 아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여기고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위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는 자녀와 부모, 사제, 친구 등 모든 인간관계에 해당될 것입니다.
 
마태오복음 16장 13-20절에 이러한 내용이 잘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예언자 중 한 사람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고백합니다. 누구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베드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알아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알아 본 베드로에게 "시몬아,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아들을 알아본 베드로 역시 하느님 아들로 여기며 하늘나라 열쇠를 주신 것 입니다.
 
우리도 이처럼 예수님을 어떻게 모시느냐에 따라 예수님한테 어떤 대접을 받을 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왕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자신도 예수님한테 소중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이고, 예수님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예수님한테 우스운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프랑스 출신 줄타기 곡예사 불롱뎅은 수면에서 48m 높이에 설치된 335m 길이 줄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는데 성공해 부와 명성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가 눈을 가리거나 외바퀴 수레를 타고 줄을 건너며 묘기를 부릴 때마다 관중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습니다.
 
한 번은 그 곡예사가 "내가 한 사람을 등에 업고도 외줄타기 곡예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하고 묻자 관중 한 사람이 "당신이라면 문제없이 할 수 있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곡예사는 그 사람에게 "그렇게 믿고 확신한다면 당신이 내 등에 업히시오" 하고 말하자 그는 "나는 아닙니다"하고 꽁무니를 뺐다고 합니다. 곡예사는 결국 자신의 곡예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 사람 대신 다른 이를 등에 업고 줄타기에 성공했습니다.
 
신자들도 주님께 비슷한 말을 합니다. "주님이라면 나를 업고 가실 수 있으니 나의 모든 것을 맡기겠습니다"하고 고백하지만 막상 주님께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 할 때는 꽁무니를 뺍니다. 인생 전체는커녕 돈 몇 푼, 잠깐의 시간, 하찮은 재주나 능력조차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이웃에게 봉사해야 합니다"하고 말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봉사좀 해주시오"하고 부탁하면 "나는 못합니다"하고 거절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머리로만 믿는 것도, 입으로만 고백하는 것도 아니라 몸으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고백하고 베드로처럼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삶의 맨 첫 자리에, 왕의 자리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왕으로 모시면 그 아내는 왕비가 되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면 우리도 왕이신 예수님 신하가 돼 하늘나라 시민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맞아 우리 삶에서 그리스도를 최고의 왕으로 모심으로써 그리스도 왕국 백성이 되는 영광에 참여합시다.

박용식 신부
  |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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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나의 삶의 왕이신 그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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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세상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생활의 큰 불편함을 가져온 코로나가 이쯤에서 그만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한 것 없이 또 한 해가 바쁘게 지났다는 마음,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 못했다는 아쉬운 마음,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았다는 마음 등등 한 해의 마지막 끝자락을 살고 있는 요즘 사람들의 마음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맞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난 한 해의 어수선했던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며 조용히 한 해를 마감하고 앞으로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겠다.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 마지막 주일인 오늘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는 것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의 시작일 것이다.

그리스도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분이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인류 역사는 전혀 다른 역사가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군대도, 국토도, 조직도 없으셨다. 예수님 주변에는 영향력 없었던 부족한 사람들뿐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인류 역사의 모습을 바꾼 위대한 왕이 되셨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예수님은 진리를 증언하러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요한 18.37).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진리 편에 서 있어야 한다. 내가 올바르게 살지 못한다면 내 말과 행동에 힘이 생길 수가 없다. 흠 잡힐 데 없이 당당해야 예수님처럼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랑이 넘치는 분이셨다.
그분은 우리의 허물을 탓하거나, 단죄하지 않으셨다. 언제나 같은 말씀으로 다시는 '죄짓지 말라' 하시며 수많은 죄인들을 사랑으로 품어 주셨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마태 18,21) 라는 베드로 사도의 질문에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 (마태 18.22)까지 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이와 같은 당당함과 떳떳함 그리고 사랑 넘치는 마음과 행동이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들을 변화 시킬 수 있었다. 이점이 바로 예수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킨 왕 중의 왕이 될 수 있으셨던 이유였다.

예수님을 따라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이라면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 또한 예수님처럼 진리를 마음에 품고 삶의 자리에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야 하겠다. 그리고 언제나 항상 예수님처럼 정의롭고 사랑 넘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오늘 연중 시기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며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삶의 왕으로 모시고 왕이신 예수님과 함께 살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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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조원행 안드레아 신부
2020년 11월 22일 <원주교구 주보>에서
  |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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