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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그리스도 우리의 왕
조회수 | 3,018
작성일 | 05.11.19
가치혼돈의 시대

요즘은 참 가치가 거짓 가치에 의해서 밀려나고 있다. 물질이라는 가치는 어느새 인간의 우상이 되어버렸다. 하느님도 신앙인의 마음 속에서 제2의 가치로 밀려나고 있다. 이제는 사랑과 진실, 자비의 고귀함도 제2의 가치로 여겨지는 암울한 시대가 되였다.

약 200여년전 조선의 유교 학자들이 불교의 절과 암자에 모여 천주교의 진리를 연구하고, 그 진리대로 살 것을 결의하였다. 그들은 예사 사람들이 아니었다. 당대의 내로라 하는 명망가요, 학자들이었다. 그들 중에 왕자를 가르치는 선생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 당시의 그들은 오늘날 우리네 식자들이 그리도 귀하게 여기며 탐구의 열을 높이고, 목청을 높이며 배워야 한다는 불교와 유교의 교리와 사상을, 참 진리인 하느님의 진리,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보다 못하다고 생각했기에 제2의 가치로 여겼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천주교 교리에 매료되었었다. 그래서 교리를 배우는 동안 교리대로 살았다. 그들은 새벽에 일어나 찬물에 세수하고 기도하며 하느님을 흠숭하는 예를 드렸다. 그들은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믿음의 확신이 있었으며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인류에게 오직 왕은 하나,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오로 사도처럼 “그리스도는 나의 생의 전부입니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 선조들의 신앙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니, 한편으론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 성직자, 수도자들 그리고

평신도들이 승방을 찾아가서  진리를 탐구하겠다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선을 하기도 하고, 하안거, 동안거를 하고 돌아왔음을 자랑하기도 한다. 거기 가서 피정을 한다는 사람도 있으니 참으로 세월이 많이 변했다.

또 그곳에 가면 마음이 안정된다느니, 피정다운 피정을 한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저승에 계신 우리 조상님들이 보시면 웃으실 일이다. 과거 우리의 신앙 선조들이 우리보다 식견이 모자라서 천주교의 진리를 공부하고 복음을 받아들이고․감사하며,․타인들에게 전했을까? 우리의 선조들은 예수 그리스도 외엔 구세주가 없음을 분명히 알았고 그것을 믿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의 왕이심을 고백하였기에 목숨도 기꺼이 바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우리의 주님, 나의 주님, 우리의 왕으로 모시는 일이다. 어떤 이들은 세계화, 토착화시대에 그게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진리는 하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참 신앙인인 것이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 우리의 왕

왕은 누구인가? 전권을 가진 사람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전권을 가지신 분이고 나에게 전권을 가지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마태 28,18)고 말하신 분이시고 “장차 쇠지팡이로 만국을 다스리실 분"(묵시 12, 5)이시다. 교회의달력으로 한해를 마감하는 오늘은 그리스도 오직 우리의 왕이심을 고백함으로써 흐트러진 우리의 마음을 다시 추슬러, 그리스도 좌에 무릎을 꿇는 날이다.

아시아 주교회의는 우리에게 있어서 메시아, 즉 구세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다시 강조 발표하였다. 지난 10월22일에는 유럽주교회의에 참석한 시노드 교부들이 최종 메시지를 발표하였다. ‘우리는 유럽의 희망의 복음을 기쁜 마음으로 선포한다'라는 제목의 메시지에서 “오늘날 온갖 형태의 고통과 불안, 죽음으로 우리들의 희망이 약해지고 있다. 우리는 인류와 역사의 유일하고 참된 희망인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선언했다.

복음의 메시지

그리스도,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시며 우리의 왕이시다. 우리의 왕을 제쳐두고 다른 왕을 찾아 헤매는 것은 모반이다. 그분은 사랑의 왕이시다. 이 세상의 왕들은 지배하고 권력을 휘두르지만, 그분은 사랑에 관한 심판만 하실 것이다. 종말의 날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랑을

실천한 대로 심판 받을 것이다. 그분은 사랑의 자(尺)로 재실 터인데, 길이가 짧은 사람은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지 못한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하는 말씀이다.

인간은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눈길을 돌리기보다. 잘난 사람에게 눈길을 한번 더 주고 잘해 주게 마련이다. 의인들은 연민의 눈으로 부족한 사람들을 늘 생각하고 그들에게 잘해 주었다. 그들은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잘해 준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연스럽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혹은 어떤 꿍꿍이속이 있었다면 모두 적어 놨을 것이다.

사랑이란 자신의 이익이나 어떤 목적을 위해서 남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이 인간이기에, 하느님의 모상이기에, 예수님께서 그들 안에 계시기에 무조건 베푸는 것이다.

인천교구 최기산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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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문제를 일으키지!

30년 전 유신 시대에는 공포정치를 하였다. 국민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억울한 사람들도 많았다. 모든 언론은 통제되고 집회도 금지되었다. 그때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가 대통령과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양심선언을 하고 감옥에 갇혔다. 그러자 정부의 홍보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성직자가 정치 발언을 하고 사회를 혼란하게 한다고 비난하였다. 천주교 안에서도 문제를 일으키고 교회를 분열시켰다고 매도하였다.

그 후 지주교 사건을 계기로 소수의 신부들이 사회정의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게 되었다. 당시 신부들이 정치문제에 발언을 한다고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세월이 지나자 지주교와 그 신부들의 활동은 우리나라 민주화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인정받게 되었다. 사회학자인 오경환 신부는 교회의 사회운동이 우리나라 교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연구하여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 연구 발표를 보면 사회운동을 활발히 한 교구는 예비신자들이 많이 와서 교세가 크게 증가하였고 그렇지 않은 교구는 신자증가율이 적었다고 하였다.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왜 이 사람들이 이렇게 가난하느냐?’고 하면 나를 공산주의 자라고 한다.”

브라질에서 사회운동가로 유명했던 헬더 까마라 주교의 말이다.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뿌리가 되는 구조 악에 대한 투쟁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불쌍한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돕는 일에는 기부금을 내고 봉사를 많이 한다. 그러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인권운동 기금이나 모임 활동을 하는 곳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들은 너무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회문제에 별 관심이 없고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도 큰 문제인데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문제의식을 제기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가난하고 고통을 받는 것은 어떤 개인의 탓인 경우도 많겠지만 그 나라의 사회제도나 구조, 그리고 정책 등에서 오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쁜 구조나 정책에서 발생하는 많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돕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나쁜 구조나 정책 등을 바꾸게 하는 사회운동도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대의 큰 죄악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무관심하고 알아보려하지 않은 태도이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인류학자의 말이다.

오늘 복음에 우리가 언젠가 하느님 앞에 가면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잣대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황상근 베드로 신부
  |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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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과 영혼의 참 왕이신 예수님!

1986년11월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이탈리아 동고 출신의 스테파노 곱비 신부님은 성모님으로부터 (내적인) 말씀을 듣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만민의 마음과 영혼에 군림하셔야 한다.
그분의 왕권은 은총과 거룩함과 사랑의 왕권인 까닭이다.
예수께서 한 사람의 영혼에 군림하시면,
그 영혼은 신적 빛에 의해 변화된다.
이 빛이 영혼을 점점 더 아름답고 찬란하고 거룩하게 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게 한다.”
「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 339,2

마음과 영혼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군림하셔야 그분의 왕권이 세워집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예수님의 생명으로 채워지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투쟁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투쟁의 삶에는 세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 영혼으로부터 ‘죄의 온갖 그늘’을 몰아내야 합니다.
둘째, 우리 영혼으로부터 ‘모든 이기심의 올가미’를 몰아내야 합니다.
셋째, 우리 영혼으로부터 ‘정욕(애정과 욕망)’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우리의 마음과 영혼 안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왕국이 세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왕이신 예수님의 영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참 왕으로 우리의 영혼에 군림하실 수 있게 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자주 묵상해야 합니다.

준주성범 제1권 1장 1항에서는 이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힘쓸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묵상함이다.” 이 말처럼 우리는 자주 예수님의 일생에 대해 묵상해야 합니다. 바로 복음을 읽고 묵상하고, 읽고 묵상하는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복음의 빛이 지속적으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때가 이르렀을 때,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죄의 덩어리들이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올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과 영혼의 참 왕으로 모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날을 위해 우리들은 복음을 자주 묵상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나병식 대건안드레아 신부
  |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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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신부님께서는 인사이동이 되어 지금 있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길 때 낡고 나쁜 것은 자신이 가져가고 반대로 좋고 새 것은 두고 가신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이상해서 이유를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신부님께서는 낡고 나쁜 것은 자신이 가고 나면 결국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이며, 대신 좋고 새 것은 계속해서 쓸 수 있기 때문에 두고 가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저는 이사를 위해 짐을 싸다보면 좋고 또 새 것은 가져갔습니다. 반대로 낡아도 쓸 만하다는 생각에 다음 신부가 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 자리에 두고 갔었지요. 하지만 다음 신부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앞선 신부님과 같이 행동했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했던 것은 내 안에 있는 욕심 때문이지요. 내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내가 써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좋고 새 것을 과감하게 내려놓지 못했던 것입니다. 교회의 전례력이 끝나는 마지막 날인 오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맞이하며, 이러한 내 자신을 반성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마지막 심판 때 우리들이 어디로 가야할 지를, 즉 영원한 벌과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에 가도록 결정을 내리십니다. 그런데 그 판결에서 특이한 말씀이 나옵니다. 영원한 벌과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에 가게 되는 이유가 주님께서 굶주리고 목마르거나 나그네 되었을 때 또 헐벗거나 병들고 감옥에 있을 때의 우리 모습에 따라 영원한 벌과 생명의 자리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가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나에게 해 준 것이고, 또 가장 작은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생각해보세요. 왕이 굶주리고 목마를까요? 왕이 나그네 되고, 또 헐벗고 병들 때가 있을까요? 세상의 왕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리스도왕은 절대로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당신께서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도와준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들이 이 땅의 진정한 그리스도왕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늘 남들을 배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욕심을 다 챙기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사람들 그리고 소외되어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보살필 수 있는 진정한 사랑에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년필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낡고 성능도 별로 좋지 않은 만년필이지요. 이 만년필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낡고 성능도 좋지 않으니까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만년필의 사용자가 글쎄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썼던 만년필이랍니다. 이 만년필의 가치는 어떨까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큰 가치를 갖게 됩니다.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왕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쓰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치는 높을까요? 낮을까요? 이렇게 가치 높은 내 자신임을 기억하면서 더욱 더 주님 뜻에 맞게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하겠습니다.

조명연 신부
  |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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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주님의 통치는 영원하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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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 최고 권력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 번의 기회를 더 잡아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고 외치려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내키지 않지만 조 바이든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 안에서 선거를 통한 권력의 이양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래도 그 안에는 치열한 권력투쟁이 있습니다. 대통령 자리를 두고만 다투지 않습니다. 각 국가는 세계의 패권을 잡기 위해, 각 개인은 계급, 지식, 돈과 같은 각기 다른 지배 요소를 더 획득하기 위해 분투노력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 드러나 보이는 지배 권력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임기에 의해 평화롭게 내어주든, 다른 힘에 의해 정복당하든 결국은 그 끝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전례력 상으로 2020년의 마지막 주일인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맞이합니다. 이 축일은 1925년 비오11세 교황께서 제정한 것으로서 당시 과학의 발달을 바탕으로 이성 중심적 사고, 무신론이 심화 되어가는 사회 풍조에 맞서 이 세상의 주권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을 천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임기도 끝이 있고,
패권국가의 위상도 시간이 지나면 몰락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한 시대, 한 국가에 묶이지 않고 언제나 영원히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절대적이고 영원한 통치권을 가진 임금이시나 그 모습이 세상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분의 권위는 우리의 감각과 경험의 단계 이상에서 활동하시기에 우리에게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는 왕의 모습은 화려함,
강함으로 대변되지만 역설적으로 그리스도왕의 권위는 가난함, 약함 가운데에서 나타납니다. 그 왕권은 당신 백성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신음하는 백성을 위해 봉사하기 위한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 분이 옷 벗김 당하고,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도 하느님으로서 지니신 온 우주에 대한 통치권은 훼손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때가 되기를 기다립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오리라는 희망을 가진 이들이 시련 속에서 빛나는 그리스도왕의 왕홀 (王笏)을 발견하기를 기다려 주고 계십니다.

대림 제1주일로 시작해서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끝나는 전례주년은 장구한 구원의 역사를 우리가 1년의 주기로 살고,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대림의 설렘, 아기 예수님 탄생의 기쁨, 그리스도 수난의 아픔과 부활의 영광을 함께 느껴온 한 해 였다면 이제 우리는 전례력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아직 체험하지 못한 종말을 엿보게 됩니다.

세상의 종말이든,
우리 개개인의 죽음을 통한 종말이든 그 때가 오면 우리는 선함으로 우리를 위해 봉사하시는 진정한 왕이신 주님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통치하시는 하늘나라에 영원히 머무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이 세상을 순례하는 우리를 이끄는 희망의 힘인 것입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들,
돈, 정치권력, 과학기술들이 우리를 현혹하지만 진정으로 우리가 머리를 조아려야 할 곳은 바로 영원한 임금이신 그리스도 앞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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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김원영 프란치스코 신부
2020년 11월 22일 <인천교구 주보>에서
  |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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