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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누가 우리의 왕인가
조회수 | 2,757
작성일 | 05.11.19
교회는 연중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정하여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왕이시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실로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세속적인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으며 오히려 봉사하는 왕, 아픔을 나누고 사랑을 베푸는 왕으로서 가난하고도 비천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왕이야말로 왕 중의 왕이요 세상 모두를 다스릴 왕이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에 왕이 등장하게 된 것은 기원 전 11세기경의 일입니다. 그때까지 그들에겐 하느님만이 유일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위대한 모습을 보고는 하느님께서 왕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 후에 등장되는 왕들은 모두가 백성을 실망시키는 왕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다윗'을 기대합니다.

‘새로운 다윗'을 소망하는 백성들의 기대는 메시아 신앙으로 발전되며 언젠가는 다윗처럼 자신들의 불쌍한 처지에서 해방시켜 복된 나라로 이끌어 줄 날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그런 왕은 등장되지 않았습니다. 모진 박해 생활과 식민지 생활에서도 하느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등장된 분이 예수님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믿었습니다. 다윗에 버금가는 훌륭한 왕으로서 새 이스라엘을 건설할 분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은 사람들이 원하는 그런 왕이 되는 것은 원치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조국을 식민지에서 건지고 굶주림에서 해방시키며 어지러운 사회를 바로잡는 그런 현실적인 문제에서는 그분은 어쩌면 외면 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백성들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보면 분명히 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왠지 속 시원히 세속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병자들 치유요 그리고 설교로써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뭐 그런 소극적인 일뿐이었습니다.

유다는 그래서 예수님을 팔았으며 군중들은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분은 메시아가 아니요 메시아는 아직도 안 왔다고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3차 중동 전쟁에서 다얀 국방상이 이스라엘을 6일 만에 승리로 이끌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얀을 일시 메시아로 보았다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속의 왕은 다 지나가는 것이며 왕권은 언제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아무도 반석 위에 자기 왕권을 영원히 간직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진정한 왕이십니다. 십자가 옆의 강도가 주님보고 왕이 되어 오실 때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천국 낙원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보통의 왕과는 다릅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우리의 왕이 계신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굶주리고 헐벗으며 감옥에도 갇힌 병들고 비천한 인생들이 바로 예수님이 보여 주시는 왕이며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만이 주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방향과 그 본질을 분명하게 바라보고 올바르게 걸어가야 합니다. 만일에 ‘왕'이라는 개념을 착각한다거나 어긋난 왕을 찾고 있다면 그는 벌받는 곳으로 쫓겨날 것입니다.

언젠가 ‘꽃동네'에서 자신도 불구자이면서 다른 불구자를 도와 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성한 사람들이 그들을 찾아와서 도움을 베풀면서 오히려 더 많은 도움을 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기적이었고 천국이었으며 그리고 그것은 주님께서 직접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걷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는 그들 가운데 주님은 분명히 계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기 위해 ‘왕궁'을 찾는 모습을 봅니다. 교회 자체도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 ‘궁전'을 짓는 모습도 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가난한 자를 바라보고 병든 자를 바라보십시오. 슬퍼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고 죄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십시오. 바로 그들 안에서 주님이 여러분을 환영하여 당신 시민으로 받아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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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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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위기의 순간을 새로움의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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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하지 못합니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습니다. 평생을 매일 해 왔던 일이라 일상처럼 느껴왔던 삶을 멈추라고 합니다. 이해하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밀려오는 아쉬움과 허전함은 어쩔 수 없습니다.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 때로는 위로와 힘이 되어주었던 소중함을 언제까지 찾지 못할지 이제는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올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계속되어지는 위기감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두려움에, 그리고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은 불안감에 올 한해의 마지막 주간을 맞이합니다.

코로나 상황을 살아가는 우리는 위기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위기이면서도 우리 신앙생활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한 번 무너져 버린 삶을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다시 시작하고 바로 잡아가야 할지 걱정입니다.

이 걱정 안에서
하느님께서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아담을 부르신 말씀을 되뇌어 봅니다.
"너 어디 있느냐?”(창세기 3,9).
제36회 '성서주간'의 주제인
이 말씀은 지금 위기에 처해있는 우리에게 새로움의 기회를 만들어가게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미사도, 모임도, 성당 안에서의 신앙생활도 할 수 없었던 우리는 그 위기의 순간에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되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편안함이 나태함으로, 그래서 익숙함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나도 힘들고 어렵다며 시간을 내고 나누어주고 함께하는 것에 인색하지는 않았는지, 조금은 귀찮아했던 일들이 당연함으로 다가오지 않는지, 예수님의 가치와 꿈이 희미해지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처럼 임금의 오른쪽에 서 있는지, 아니면 자신만을 배불리고, 누군가를 외면했으며, 겉만을 치장하며 살아온 왼쪽에 서 있는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 위기의 순간 어디에 있었으며
무엇을 했으며 어떤 것을 희망하며 살아왔는지 그 어떤 사람이 자신은 예수님의 오른쪽에 서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부끄럽고 창피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 부끄러움이 우리를 새로움으로 나아가게 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디에 있을지 알려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 여기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용기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그대들의 첫걸음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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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최종훈 토마스 신부
2020년 11월 22일 <광주대교구 주보>에서
  |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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