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나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1 80.4%
[대전] 일어나야 할 시간입니다.
조회수 | 92
작성일 | 17.11.29
[대전] 일어나야 할 시간입니다.

육십을 훌쩍 넘기신 분이 TV 앞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적고 계십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영어회화 강의를 들으시며 메모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언제 써먹으시려고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조금은 쑥스러운 웃음을 보이셨지만 그래도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는지 모릅니다. 예전에 보았던 내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강론 원고 요청을 받고 피해 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저녁도 거르고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 저녁 내 모습입니다.

교회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시 한 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지나간 한 해가 아쉬움과 후회로 가득 하기만한데 다행스럽게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하였습니다. 부족한 것을 채우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하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것은 분명 커다란 선물이며 은총입니다.

다시 한 해를 시작하고 주님의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깨어 있어라”하고 당부하십니다. 잠들어 있다는 것은 무엇이며 깨어 있는 사람들은 또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까. 높은 산에 오르거나 비행기를 타고 우리가사는 곳을 바라보면 평소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보면 ,우리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 참 보잘 것 없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데 우리는 왜 그렇게 버둥거리며 살려고 무리를 하고 있는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이웃’을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을 보면 참 부럽고 내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거울삼아 내 자신의생 활을 비추어 보면 힘들고 괴롭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착시 현상의 증세까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깨어 있어야 할 시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심을 기다려야 할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임께서 오실 것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준비한다는 것은 설렘이고 기도이며 또한 희망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기다리는 이 대림시기가 우리 모두에게 앞서서 그분을 만나는 은총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대전교구 이원우 베다 신부
451 80.4%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린다는 의미의 대림待臨시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누군가 또는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은 기다리는 사람이 기다림의 대상을 아직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더구나 그 고대하는 것이 다름 아닌 주님이라고 한다면, 풍요로운 물질의 소유 속에서 안락 한 삶을 살고 있 다면 적당히 안심하고 있는 우리 삶의 처지가 사실은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유배와 귀환을 배경으로 노정 露呈 되고 있는 이스라앨 백성의 혼란스러운 처지와 죄악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을 강렬히 청하고 있는 오늘 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은 인간이 하느님 없이도 살아 갈 수 있으며 소유를 통해서 행복할 수 있다고 여기는 세속주의적 사고의 허상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탄생과 죽 음이라는 생명활동의 양대 축 안에서 유한한 존재자인 사람의 참모습을 바라 보게한다.

“이제 저희는 진흙, 당신은 저희를 빚으신 분,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이사 64, 7)”라는 고백처럼 사람은 자신의 기원과 삶 전체의 주도권이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게 되고 자신이 범한 죄악과 그 결과인 죽음으로 상징되는 고통과 무질서를 넘어 서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하느님에 의해서만 가능하게 됨을 알기에 “주님, 당신만이 저희 아버지시고, 우리의 구원자’이시니, 하늘을 찢고 내려오소서!’(이사 63,16.19)라는 절박한 외침을 하게한다.

다행히도 사람은 자신의 비참한 처지 한복판으로 들어오시는 놀라운 분을 발견한다. ‘하늘을 찢고 내려오시라’는 그 절 박한 외침에 응답하여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님이 바로 그것이다. 성실하신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라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알려주셨고,(1코린1. 9 참조) 이러한 은총을 통해 죽을 운명에 놓인 사람의 품위를 하느님의 거룩한 영역에로 들어 높혀 놓아주신다. 자신의 한계에 대한 절망과 슬픔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희망과 감사로 바뀌는 순간이다'.(1코린 1. 4 참조) 하느님 자비의 손길이 사람을 휘감고 있으며 주님의 섭리가 단 한순간도 떠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인간 자신의 구원뿐만 아니라 원죄 이후 하느님의 자녀가 나타나길 고대하며 신음해왔던 모든 피조물들이 마침내 주님의 날에 죽음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며 완성될 것이라 는 희망은 사람이 자신과 세계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게 한다. (로마 8, 19-25 참조) 이제 인생은 하느님의 자비와 섭리 속애 구원에 대한 희망이라는 사람의 응답으로 수놓아진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자녀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강력하게 보호하시며 이끌어 주실 것이다. (1코린1. 8참조)

오늘 복음의 가르침처럼 신앙인들조차 부지불식간에 물들어 있는 세족주의적 사고와 생활에서 벗어나 반드시 오실 주님을 향해 깨어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아버지 하느님의 자비 속에서 우리 삶에 대한 구원의 희망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시기가 은총의 대림시기임을 발견할 수 있다.

▤ 대전교구 권세진 알베르또 신부 - 2017년 12월 3일
  | 12.01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702   [수도회]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3] 1966
701   [수원] 예수님의 전도행적과 메시아의 비밀  [3] 2083
700   [인천] 예수님의 선택 기준  [3] 2035
699   [서울]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나병 환자와 같은 깊은 믿음과 용기이다  [4] 2334
698   [마산]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3] 2245
697   [안동] 깨끗하게 되어라  [4] 2335
696   [부산] 하느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모른다.  [4] 2109
695   [대구] 첫 만남의 결실  [3] 2047
694   [광주] 나병환자의 용기와 믿음  [1] 31
693   [전주] 치유를 청하고자 예수님께 다가온 나병 환자의 용기와 믿음입니다.  [3] 2309
692   [청주] 나병환자를 치유하신 예수님  [1] 11
691   [대전] 예수의 메시아적 사제 직분이 드러나는 나병 치유  [1] 2133
690   [군종] 나병환자의 용기와 믿음  [1] 8
689   [춘천] 동감(同感)·공감(共感)  12
688   [원주] 아! 아름다운 만남이여  10
687   [의정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 2182
686   (녹) 연중 제6주일 독서와 복음  [1] 1632
685   [수도회] 또 다시 길을 떠나며  [3] 2111
684   [춘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2] 2260
683   [전주] 기도와 삶 : “왜 걱정하세요? 기도할 수 있는데”  [2] 2280
682   [안동] 관심과 사랑이 이루는 기적  [3] 2157
681   [대구] 기적  [3] 1844
680   [서울] 기도 안에서 병자를 치유하시는 예수님  [3] 2345
679   [수원] 예수님의 복음화 사명 : 권위있는 가르침  [2] 2177
678   [의정부] 부끄러운 고백  [2] 2058
677   [마산]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는 신앙인의 모습  [2] 1974
676   [광주] 희망 2009  1891
675   [대전] 우리도 발품 팔자.  [2] 1836
674   [인천] 예수님과 손을 잡을 때  [2] 2164
673   [부산]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떤 사람인가?  [3] 1653
672   [청주] 복음 선포의 기쁨  [1] 98
671   [군종] 그들도 급히 회당에서 떠나...  [1] 86
670   [원주] 소통과 신뢰의 촉진자인 교회  80
669   (녹) 연중 제5주일 독서와 복음  [2] 1692
668   [수도회]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  [6] 2194
667   [마산] “진심으로 믿는 사람에게만 열려있는 놀라움”  [1] 1783
666   [대구] 겸손한 자의 권위  [2] 1873
665   [수원] 죽음으로 이끄는 약  [3] 2381
664   [서울] 하느님 다스림의 위력  [3] 2021
663   [인천] 나자렛 예수님, 당신은 저와 상관이 있습니다.  [3] 1970
1 [2][3][4][5][6][7][8][9][10]..[18]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8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