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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아, 하늘을 쪼개시고 내려 오십시오
조회수 | 99
작성일 | 17.11.29
[광주] 아, 하늘을 쪼개시고 내려 오십시오

오늘부터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의 옷깃을 여미고 주님께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아주 진정으로 기다리십니다. 따라서 지난 1년의 삶을 반성하면서 돌아가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는 주님을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유배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지난 잘못을 반성하면서 하느님의 새로운 사랑과 축복을 기원하는 일종의 탄원 기도문입니다. 기도문 자체가 매우 고상하면서 감동적이고 그리고 내용이 아주 풍부합니다.

"아, 하늘을 쪼개시고 내려오십시오."

이스라엘의 애절한 그리움과 진실한 뉘우침이 그 기도문에 새겨 있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일어설 수 없다는 절실한 믿음은 하나의 아름다운 꽃입니다. 실로 하느님께 믿음과 희망을 갖는 자만이 진정한 행복을 얻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늘 깨어 있어라.'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즉 그 때가 언제 올 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때가 무엇이냐?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주님이 찾아 오시는 때를 말합니다.

세상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사람들이 왜 사는지를 모르며 자기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를 모릅니다. 그래도 거기엔 관심이 없이 그저 많이 벌어 잘살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10년, 20년 잘살고 나면 무엇이 남습니까? 그래서 잘먹고 나면 무엇이 남습니까? 허무밖에 없습니다. 눈물밖에 없습니다.

성찰을 통해서 자기 삶을 반성해 본다는 것은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것입니다. 인생의 방향이 어딘 줄을 알고 올바르게 걸어가는 것은 백만장자가 되는 것보다 훨씬 훌륭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때'가 언제인 줄을 알고 미리 준비하는 것은 가장 지혜로운 일입니다.

미국으로 이민가는 어떤 형제가 부모님 산소를 지키지 못하고 그냥 떠나기가 죄스러워서 묘지기를 돈으로 사서 부탁해 놓고는 안심하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고생을 하면서 5년 만에 제법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부모님 산소 생각이 났으며 고마운 묘지기 아들도 미국으로 불러 교육을 시켜 주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불쑥 서울에 갔습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그는 묘지기에게는 미리 연락을 못했습니다. 그냥 김포에서 내리자마자 산소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산소에 도착해 보니 부모님의 묘는 잡초로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그렇게 부탁을 했고 그렇게 돈으로 베풀었건만 허사였습니다. 그는 대성통곡을 한 뒤에 묘지기에게 그랬습니다. “일 년에 서너 차례만 산소를 돌봤다면 당신에게 백 배 감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뭐냐?" 묘지기는 그 날로 집과 땅을 빼앗기고 쫓겨났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약삭빠르게 살려고 하다가 결국은 미련하게 사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조금만 주의를 하고 우 리가 조금만 깨우치기만 한다면 아무 탈이 없이 오히려 큰 상을 받을 것인데 바보같이 살기 때문에 좋은 세상을 아주 망치는 불행을 만들게 됩니다.

진정으로 잘사는 것은 사업을 잘하고 병 없이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진실하게 자신을 성찰해서 잘못되었으면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게 행복입니다. 아무리 재산을 많이 모으고 아무리 권력이 하늘까지 올랐다 해도 자기 성찰을 모르고 자기 잘못을 고치지 못한다면 그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진흙이요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 코가 비뚤어졌다고 고백한다면 하느님께서 고쳐 주십니다. 우리 귀가 떨어졌다고 고백한다면 하느님께서 다시 붙여 주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고작 잘못이지만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항상 새롭게 고쳐 주시는 사랑이십니다.

대림절은 은혜로운 시기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시기이며 또한 그분을 만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선 우리보다 더 간절하게 기다리시며 우리보다 더 큰 애정으로 우리를 만나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고 주님 만날 채비를 하면서 그분을 기다립시다. "아, 하늘을 쪼개시고 내려오십시오."

▤ 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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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깨어있는 삶

드디어 대림시기의 첫 번째 초가 밝혀졌습니다. 교회력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이 대림시기는 아기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기이면서, 동시에 마지막 날 다시 오실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우리의 삶이 조금은 안이하거나, 그저 하루하루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면, 회개와 보속으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차분히 마음을 모으는 이 대림시기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대림시기의 첫 주일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깨어 있어라”고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어라.” 사실 깨어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순간 방심하면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하루가 지나간 날들도 많습니다. 내가 뭔가를 하지 않더라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 길지 않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깨어 있어라”고 네 번이나 거듭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말임을 강조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맡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먼 길을 떠나는 주인이 종들에게 권한과 함께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듯이, 하느님께서도 우리 각자에게 우리의 생명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건강, 능력 등 ‘그 모든 것’을 잠시 맡겨 주신 것입니다.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렇다면, 우리는 맡겨 주신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며, 그 어느 하나 소홀히 하거나 함부로 하지 않으며, 다시 오실 주님을 항상 깨어 기다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분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곧 우리들에게 오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충만하게 받아 안기 위해, 우리들에게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셨듯이, 오직 하나입니다. “깨어 있는 삶을 사는 것.”

단순히 육체만이 아니라, 마음이, 정신이, 영혼이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일이며, 오히려 우리에게 더욱 큰 유익이 될 일일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아멘.

▤ 광주대교구 유기영 바오로 신부
  |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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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라틴어로만 봉헌되던 미사는,1967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눈과 귀에 익숙한 모국어로 봉헌되고 있습니다. 미사 경문은 하나의 언어로 구성되었고,언어란 또한 시대를 반영하는지라 미사 경문 역시 지금까지 수차례 개정을 거쳐 왔습니다. 가장 최근의 개정은 1996년에 있었는데, 아마도 20년 이상 성당에 다니신 분들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던 그때의 기억 이 오늘 미사 중에 다시 떠오르리라 여겨집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는 지난 8월15일「로마 미사 경본」을 발행하여, 이번 대림 제1주일부터 새 번역판 미사 경본을 사용하기로 결정 하였습니다. 아마 기존의 미사에 익숙해왔던 우리들에게는 오늘부터 사용하게 되는 새로운 미사경문이 아직은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으로 다가오겠지만 이는 라틴어 본문에 충실하고 성경에 일치시키기 위함임을 상기시켜드립니다.

사실 익숙함은 편합니다. 무언가를 당연하게 여기게끔 합니다. 이러한 편함은 가끔 준비를 더디 하게 만듭니다. 준비가 소홀하면 자연스레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는 영적 죽음입니다.

반대로 새로움은 낯섭니다. 낯 삶은 무언가를 다시 보고 확인하게끔 합니다. 다시 보다 보면 예전에는 ‘획’하고 지나가 버렸던 어떤 것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낯 삶은 우리로 하여금 긴장하고 깨어 있게 만듭니다. 깨어있음은 곧 살아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살기 위해 필요한 ‘깨어있음’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익숙함과 편함에 젖어 집 안에 머물고 있던 종들에게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있으라.’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겨보면 좋겠습니다.

대림 제1주일입니다. 전례력 상 새해의 시작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부어야 하듯, 새해를 맞아 바뀐 새로운 전례에 긴장하며 깨어서 참여해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자주 떠올리시며 대림 시기를 보낸다는 마음보다는 대림의 삶을 산다는 마음으로 간절히, 정성스레 깨어있음으로 순간들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 광주대교구 최용감 안젤로 - 2017년 12월 3일
  |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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