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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나병환자의 용기와 믿음
조회수 | 240
작성일 | 18.02.11
[광주] 나병환자의 용기와 믿음

찾아오는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심으로써 당신의 정체를 조심스럽게 드러내시던예수님께서 이번엔 죽은 인생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나병환자를 고쳐 주심으로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그분의 능력과 권위는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모를 정도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점차로 믿게 됩니다.

나병은 실로 무서운 병입니다. 옛날엔 한번 걸렸다 하면 그 시간부터 완전히 죽은 인생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눈은 흘기게 되고 입은 비뚤어지며 목소리는 쇳소리를 내게 되고 눈썹이 빠지며 손가락 발가락 들이 오그라들고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얼굴에 돌기가 생겨서 사람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일으키는 징그러운 사람이 됩니다. 차라 리 죽느니만 못한 것이 나병에 걸린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그는 실로 '하느님께로부터 벌받은 상처'를 평생 지니고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나환자들은 건강한 사람들과 철저하게 분리되어야 했 습니다. 그들은 진지 밖에 자리잡고 따로 살아야 했으며 혹시라도 건강한 사람이 잘못 접근하게 되면 자기는 '부정한 사람이오.'하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병을 경고해 주어야 합니다. 만일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맞아 죽어야 합니다. 부모와 가족은 물론 세상의 모든 것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외롭고도 불행한 사람이 바로 나병환자였습니다.

제가 신부 되고 나서 부임한 첫 본당에는 나환자 정착마을이 있었는데 제법 큰 마을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착마을에 있는 환우들은 100%음성환자로서 이제 더 이상 환자는 아닌 셈입니다.

다만 일그러진 상처로 건강한 세상에서 맘놓고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이해 부족으로 인해서 그들과의 접촉을 대단히 두렵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것이 환우들이 평생 짊어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한번은 정착마을에서 식사를 하는데 회장님이 저 때문에 약간 불편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주 찾아 주면 반가워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건강한 사람에게 일당을 주고 또한 부식비를 별도로 지불하여 신부님 식사준 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공소 사목회의 재정으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자리에서 그랬습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하지말고 각 가정을 돌면서 그 가정에서 먹는 대로 식구들과 함께 먹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동네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누추한 집에 어떻게 신부님을 모시며 더구나 환자들이 어떻게 신부님과 함께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고집을 부렸고 그래서 일주일 에 두 번은 동네 잔치가 되었으며(일주일에 두 번 방문했음)백 호나 되는 정착마을을 4년 동안에 네 바퀴나 돌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신부님은 우리에게 돈 한 푼 주시진 않았지만 돈보다도 더 좋은 것을 주셨다."라고.

오늘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해 주신 것은 치유 그 자체를 넘어서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간주되었던 그들에게 높은 인격의 가치를 부여해 주신 것이며 또한 어떤 인생도 예수님 앞에서 치유될 수 있고 새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우리 모두가 본받기를 그분은 은연중에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나환자에게 손을 갖다 댄다는 것은 같이 부정 타는 일인데도 예수님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세상에는 나병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죄를 모르고 속에는 교만과 위선으로 가득 찬 인생들입니다. 그들은 속은 썩었어도 겉은 멀쩡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병자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평생 치유가 되지 않습니다. 옛날 바리사이파 사람이나 율 법학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시대에도 교회 안에서나 교 회 밖에서도 그런 무리들이 사회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병을 솔직하게 내보이면 고쳐질 텐데 감추고 있기 때문에 평생 불구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나환자는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님께 자기 병을 갖고 나감으로써 치유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용기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 곁으로 달려오기를 항상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잘못에 대해 늘 측은한 마음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 용기있게 나아갑시다. 그 분만이 진정 우리를 고쳐 주시며 구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저를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 (마르 1,40). 아멘.

▦ 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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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예수님께 매달린 나환자처럼

사제로 살아가면서 가슴 뿌듯할 때가 언제일까? 신자들이 기뻐할 때이다. 자신을 옭아매는 어둠의 그늘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위안을 받을 때이다. 사제에게 그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

2008년 한 해의 마지막 날, 한 자매님이 가슴 뭉클한 한 통의 편지를 주셨다. 그 편지는 내게 큰 선물이었다.

자매님에게 뜻하지 않게 찾아온 피부병. 병원에서도 병명을 알 수 없어 ‘아토피’라고 할 뿐 치료를 어떻게, 얼마나 해야 할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여정에 들어섰다.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약물에 중독되어 갈 뿐 희망의 불씨는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몸에 피를 다 바꾸면 혹시 나을지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두려워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자매님은 뒤늦게 찾아온 불청객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버려 하느님 앞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마르 1,40)고 예수님께 매달린 저 복음의 나병환자처럼 고해소에서 그동안의 모든 설움과 아픔을 비워냈다. 그리고 찾아온 위안과 평화. 자매님의 간절한 마음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셨다.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처럼 병이 깨끗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자매님에게 조그마한 변화가 일어났다. 다시금 마음을 붙잡아 세상 밖으로의 외출을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병든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은 것도 있지만 속으로 파고드는 마음의 병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괜찮다.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병을 얻었을지 모르지만 영적으로 하느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미사를 드리러 나오는 시간들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복음을 묵상하며 내게 사제로서의 보람과 뿌듯함을 안겨 준 자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십자가는 벗어 던져버려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것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시길 기도한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 1,41)

▦ 광주대교구 박재홍 베드로 신부
  |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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