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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내 얼굴은?
조회수 | 208
작성일 | 18.02.23
[군종] 내 얼굴은?

오늘 예수님께서는 타볼산에서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눈부신, 거룩한 변모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뿐만 아니라, 얼굴에서 빛이 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 바로 아기들의 얼굴에서는 빛이 납니다. 또 피정을 다녀온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빛이 납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기는 자신이 울기만 하면 언제든지 달려와서 자신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줄 엄마가 있습니다. 피정을 다녀온 사람들은 피정을 통해서 죄 많은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그런 나를 늘 용서해 주시고, 믿어 주시며,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을 발견하고, 그분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 드렸기 때문에, 바로 무엇인가 굳게 믿는 구석 덕분에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우리 모두의 얼굴에서 빛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옆에 계신 분들의 얼굴을 좀 봐주세요! 얼굴에서 빛이 나고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인식하면서 살고 있다면, 또 우리가 아무리 큰 잘못을 하더라도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씀만 드리면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나를 믿어 주시고, 나를 누구보다도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겨 드렸다면, 우리의 얼굴에서는 빛이 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얼굴에서 빛이 나지 않는다면, 아직 하느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겨 드리지 못하고,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세상을 나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기 위해서, 제자들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길, 십자가의 길을 충실히 가시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거룩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변모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사순시기를 거룩하게,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하느님, 나를 누구보다도 사랑해 주시고, 나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하느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겨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자 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너는 내 아들, 내 딸이다”라고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 군종교구 김종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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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너희는 그이 말을 들어라

오늘 사순 제2주일에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사건을 묵상하게 됩니다. 수난을 앞두고 하늘의 영광을 몸소 체험하신 예수님과 그분을 바라보던 제자들의 모습을 그려보게 됩니다.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인식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비유가 어울릴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두 사람이 똑같이 100억 원짜리 복권에 당첨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그 날부터 하던 일을 관두고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맘껏 하면서 부자처럼 살았습니다. 어제까지 가난했던 사람이 하루 만에 갑자기 부자가 되어 부자처럼 삽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은 수중에 큰돈이 생겼지만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니 자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원래 하던 대로 성실히 일하고 훨씬 여유로운 마음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 돈을 베풀면서 자기 재산을 늘려나갔습니다. 결과는 첫째 사람은 금방 다시 가난해졌고, 둘째사람은 덕망 있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에게 그 당첨금은 ‘결과’였지만, 두 번째 사람에게는 그 당첨금이 ‘과정’이었습니다. 결국, 같은 돈이었지만 한 사람에게는 ‘행운’에 그쳤고, 한 사람에게는 ‘행복’으로 다가서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갑작스러운 영광의 모습이 제자들에게는 그저 놀랍고 신비로운 환상처럼 다가 왔지만, 예수님에게는 종국에 다가서야 할 하느님의 뜻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거룩한 영광의 모습을 당장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뜻에 따른 사랑의 행위와 희생으로써 얻게 될 기쁨으로 받아들이셨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오시고 수난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오늘복음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주님의 수난과 희생이 없다면 부활의 영광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왜 꼭 그렇게 고통을 받고 죽기까지 하셔야 했을까?’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이 정말 그것밖에 없었을까?’ 이 질문은 오늘 제1독서의 아브라함을 보면서 드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 귀한 외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왜 꼭 그렇게 하셔야 했을까?’ 아주 잔인한 분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아브라함은 생각이나 말만으로는 완전할 수 없는 ‘믿음’을 바로 그 행동으로써 완전하게 증명해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왜 꼭 죽으셔야 했을까? ‘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그 수난을 통해서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우리의 대한 완전한 사랑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구원은 부족함이나 아쉬움이 있을 수 없는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실현되었습니다. 그 완전한 사랑의 길을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고, 그 길을 걸으십니다. 때로는 사랑의 길, 의로운 길은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시련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왜 그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분명히 그 길 끝에 참 행복과 하느님 나라의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갑시다.

▦ 군종교구 김만희 요셉 신부
  |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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