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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조회수 | 58
작성일 | 18.05.05
[원주]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오늘 성경 말씀은 그 어느 주일보다도 사랑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하는 예수님의 죽음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사랑 그 자체이자 사랑의 절정인 샘이다. 죽음보다 더 큰 사랑이나 언어는 없기 때문이다. 그분의 죽음 앞에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분은 "누구든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하시면서 이 사랑을 몸소 증명해 보이셨다. 그러시면서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라고 강조하신다. 이 사랑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참된 자녀가 되게 하고 기쁨을 가져다준다. 이 사랑은 미움과 시기와 질투를 없애고 모든 사람을 하느님 안에 하나로 묶는 강한 힘을 지니는 것이다.

그레이 목사가 스위스의 작은 시골 마을에 세워진 교회에 부임했을 때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냉담하였다. 목사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열심히 전도했지만 사람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휙 지나쳐버리거나 집에 찾아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목사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에 아내는 몹시 가슴 아파하며 그곳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레이 목사는 오히려 아내를 위로하며 말했다. "그들의 마음의 문이 열리려면 시간이 걸릴 거요. 단 며칠 만에 그 문이 열리기를 바란다면 그건 너무 큰 욕심이지요. 시간을 두고 기다려봅시다. 우리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기다리면 반드시 그들도 우리를 반갑게 맞이할 거요." 그날도 그레이 목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지붕 위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에 잠이 깼다. "목사가 얼마나 견디나보자. 이래도 우리에게 사랑을 전한다고 못할 테지." 그들은 목사의 집 지붕을 뜯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레이 목사는 아내에게 맛있는 음식을 서둘러 장만하라고 말한 뒤 밖으로 나갔다. "열심히 일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잠깐 들어와서 야참이라도 좀 드시지요." 목사의 공손한 말에 놀란 그들은 어리둥절하며 얼떨결에 그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목사는 그들을 촛불이 켜진 식탁 앞에 앉게 한 뒤 어색해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않고 가봐야겠다고 하면서 슬금슬금 자리를 떴다. 다음날 그들은 다시 그레이 목사를 찾아왔다. "어제 보니 지붕을 수리해야 할 곳이 있어서 다시 왔습니다." 그레이 목사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후 뚝딱뚝딱 지붕을 고치는 망치소리가 들려왔다.

그레이 목사가 보여준 사랑은 모든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미움과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찬 그들의 냉랭한 마음은 그레이 목사의 사랑 앞에 녹고 만 것이다. 이 사랑을 심어주신 분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사랑을 말로써가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신 분이시다. 그분의 사랑이 참되다는 것을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보여주셨기에 그 사랑은 꽃을 피워 부활의 기쁨으로 온 누리를 밝게 비추고 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은 것"(요한 15,16ㄱ)이라고 하시면서 이는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ㄴ)라고 밝혀주시고 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하신 참 뜻은 모든 이가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 속에서 생명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게 하고자 함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아무도 소외되는 이가 없고 차별 대우를 받지 않으며 모두가 골고루 마음 뿌듯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 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참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를 위해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5,12)라고 유언을 남기신 것이다. 이 사랑이 먼저 가정 안에서 실현되도록 하고 이 사랑의 불이 되어 온 세상을 서서히 바꾸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원주교구 김한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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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서로 사랑하라!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며,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친구는 어떤 사람? 친구는 “있는 그대로 오라” 체험이다.

친구 사이에는 정장을 할 필요도, 체통을 지킬 이유도 없다. 친구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나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 부르며 그런 방식으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어떤 사랑?

1) 얘기를 들어 준다 : 상대방을 반갑게 맞아들이고 얘기를 들어주는 것 - 이것은 사랑의 행위이다.

2) 동반자가 되어라 : 친구는 가르치는 사람도 아니고 구세주도 아니고 동반자일 뿐. 내가 너의 인생 여정에 함께 하겠고, 너와 관련된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며, 네가 나를 필요로 할 때 거기 있겠다는 것.

3) 사랑하라 : 타인의 얘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고 동반자로서 그와 함께 한다는 것은 사랑의 표현. 이런 사랑은 치유의 효과가 있다.

칼 메닝거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람들은 건강을 잃게 된다.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그 사랑을 통해서 다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4) 자기 자신이 되어라 :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당혹감이 느껴지면 당혹감을 표현하고 확신이 느껴지면 그 확신을 표현하고, 견해 차이가 느껴지면 견해 차이를 표현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반응 이상의 권위를 가지지 않도록 적절해야 한다.

상대방의 얘기가 전개될 때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질문을 던지고, 관찰하며, 떠오르는 느낌들을 함께 나눈다. 그러므로 친구는 때로는 확인하고, 때로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도록 도전하면서 하나의 실제적 원칙으로서의 기능을 한다.

이런 친구가 있으면 삶은 참 행복할 것 같지 않은가? 예수님이 바로 그런 친구이다. 그리고 우리더러 서로에게 이런 친구가 되라고 하신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 원주교구 김창수 신부
  |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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