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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하느님께서 창조의 순간에 맺어준 사건, 혼인
조회수 | 117
작성일 | 18.10.02
[전주] 하느님께서 창조의 순간에 맺어준 사건, 혼인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혼에 관하여 질문을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하느님이 어떻게 명하셨는가를 묻지 않고, 모세가 어떻게 명하였는지를 물으심으로써 바리사이의 완고함을 경고하십니다.

사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에게 던진 질문에는 아내를 버려야하는 정당한 이유가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신명기를 인용하면서도 “그 여자에게서 추한 것이 드러나 눈에 들지 않을 경우(신명 24,1)”라는 이유를 생략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마치 자기들이 증서를 써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들의 완고함을 경고하십니다. 하느님께서 혼인에 대하여 본래 원하신 것을 보지 못하는 그들의 완고함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예수님은 모세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명하신 것을 말씀하십니다. 창세기에 따라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협력자 관계를 맺고 있고,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는 것 그리고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남자와 여자의 이런 일체의 관계를 인간이 갈라놓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십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처음부터 아담과 하와로 창조하시어 인간이 서로를 향하여 내면적인 관계를 맺도록 하셨고, 그 바탕에서 서로 창조 발전해 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라고 하신 것은 ‘둘’의 개성을 죽인 ‘하나’를 강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는‘둘’을 없앰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둘’ 서로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를 창조의 첫 순간으로 이끌고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입니다. 상대의 살과 뼈를 자기의 살과 뼈로 느끼는 데서 모든 이기심을 물리친 참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인간이 맺는 계약에는 인간의 완고한 마음과 이기적인 마음이 작용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혼인은 단순한 인간들이 맺는 계약을 넘어 창조적인 일입니다. 창조적인 일에는 헌신과 신뢰와 사랑이 근원이 됩니다. 이것이 혼인의 바탕입니다.

▦ 전주교구 백승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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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하느님 창조의 뜻과 축복

아쉬운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로사리오 성월인 10월의 첫 주일이면서 연중 제27주일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인과 이혼 그리고 어린이에 관하여 명확하게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질문하는 내용에는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려는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또한 이 문제는 유다 율법 해석에 있어서도 난해한 문제였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율법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두 인물인 힐렐과 샴마이가 있었는데, 힐렐은 비교적 융통성 있고 관대한 해석을 하였고, 샴마이는 엄격하게 해석하였습니다. 신명기 24장 1절의 말씀인 “어떤 남자가 여자를 맞아들여 혼인하였는데, 그 여자에게서 추한 것이 드러나 눈에 들지 않을 경우, 이혼 증서를 써서 손에 쥐어 주고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는 부분에서 바리사이들은 힐렐파와 샴마이파로 나뉘어 논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의도를 지닌 바리사이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창조의 뜻에 의하면 남자와 여자는 한 몸이 되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모세가 허락한 남자에 의한 이혼의 권리를 없애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데려온 아이를 예수님은 손을 얹어 축복해주시는 것은 유다인들 관습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랍비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어린이들은 구원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율법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치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에 가치를 두시고 어린이와 같이 단순하고 의심 없이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뜻, 창조의 뜻을 삶 안에서 의심 없이 단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러한 신앙 안에 있는 우리를 주님께서는 축복해주십니다.

▦ 전주교구 백승호 토마스 신부
  |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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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창세 2,18)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는 군종병들과 함께 성당에서 차로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공소에 갔습니다. 그곳으로 가는 내내 미사에 오는 병사들에게 복음을 어떻게 나눌까 하며 준비했습니다. 공소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와 보니 힘이 쭉 빠졌습니다. 안에는 병사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 때는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이 공소에 와서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부대 개편으로 인한 부대이동과 미사에 참석하여 받는 상점제도가 없어지면서, 미사에 참석하는 병사의 숫자가 준 것입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다섯 명 정도는 왔었는데, 그 날은 그나마 한 명도 오지 않은 것입니다. 미사 시작시간 십 분이 흐른 뒤, 다행스럽게도 한명이 왔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제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과연 나는 군종이라는 현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맞는 걸까?’

오늘 제 1독서인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선물하시고자 부단히 애쓰십니다. 하느님께서 흙으로 온갖 생물을 빚어 아담에게 데려가시지만, 아담은 마음에 와 닿는 협력자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아담을 잠들게 한 후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어 여자를 지으십니다.

아담은 여자를 보고 참으로 기뻐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아담이 ‘알맞은 협력자’로 누구를 원했는지 묵상하게 됩니다. 아담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짐승보다는 자신과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를 원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자기 존재의 허전함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상대를 원한 것은 아닐까?

하느님께서는 군대 공동체에 군종 신부님들을 알맞은 협력자로 선물하셨습니다. 군종 신부님들의 중요할 역할 가운데에는 튼튼한 군 성당을 짓고 병사들에게 맛있는 간식을 마련하며, 신자를 많이 늘리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는 것보다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알맞은 협력자’가 되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군종 신부님들은 장병들의 마음을 열어 대화하고 그들 마음의 허전함을 보듬고자 먼 거리나 사람 숫자에 아랑곳하지 않고 분주하게 활동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군종 신부님들이 기가 꺾이지 않고 하느님께 받은 사명을 기쁘게 수행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 전주교구 최민성 베드로 신부 : 2018년 10월 7일
  |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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