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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부족한 한 가지
조회수 | 116
작성일 | 18.10.11
[청주] 부족한 한 가지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겸손한 분들도 참 많지만, 반대로 교만한 분들도 꽤 많이 봅니다. 그런 분들에게서 볼 수 있는 교만의 모습 중에서 우리 역시 쉽게 실수하는 행동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을 할 줄 모르는 것, 인사나 말을 먼저 건네지 않는 것, 자기 이야기만 계속하면서 “내가 ~했잖아”라는 식으로 자랑을 많이 하는 것, 남이 아무리 잘해도 “조금 하네”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것, 나눌 줄 모르는 것 등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세우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묘사합니다. 하느님은 착한 사람을 기뻐하시며 쓰십니다. 착하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함축된 말이지만, 앞서 언급한 교만한 행동과는 반대로 남을 귀하게 여기는 겸손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은 나보다 남을 귀하게 여겨 상대를 높이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으로,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착한 사람은 다른 이들의 영혼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놓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반면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 나아와 자신의 영생을 구하고자 한 ‘부자’를 봅시다. 그는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갖고 누리게 된 사람인 듯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영적인 갈증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안 예수님께서는 그 부자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부자는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는 그가 가지고 있었던 것을 포기할 만큼 용기가 없었으므로, 겸손히 주님을 따르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오늘 복음의 부자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습니까? 자녀로서, 부모로서, 신자로서, 이웃으로서 주님을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바로 지금 겸손을 배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없게 해야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겸손히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겸손은 하느님 앞에서 내 모습을 정직하게 보는 것입니다.

► 청주교구 김선우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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