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나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1 64%
[광주] 삶에 대한 축하, 사랑의 방식
조회수 | 127
작성일 | 18.11.02
[광주] 삶에 대한 축하, 사랑의 방식

“주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차이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평온의 기도’ 라인흘드 니벼).

어떤 자매가 면담 중에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평소 부정적인 말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데, 그렇게 안 하려고 노력하는데도 안되는 자신이 싫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부모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일하고 희생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런 부모를 위해 그녀는 완벽해져야만 했다. 그리고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비난하고 학대하고 못난이 취급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자신에게 했던 방식으로 대했다. 그것이 그녀만의 사랑 방식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는 내 안의 아픔과 상처, 한계를 보았다. 나는 완벽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 또한 완벽할 수 없음을. 때로는 남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지만 내가 그들을 바꿀 수 없고, 나 자신의 나쁜 성격이나 습관조차 바꾸기 쉽지 않음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직 지금 여기,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 일 것이다. 좀 더 나아지기 위해서.

대화 도중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그토록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런 것처럼 남들도 자신처럼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은 내가 좀 더 행복해지고 그처럼 다른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해지도록 돕는 것임을. 그것은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한다”는 계명의 그녀만의 버전이 되었다. 그녀는 삶을 축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자신과 그들의 열망을 축하했고,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자신과 자신처럼 애를 써온 그들의 삶을 축하했다. 더욱 사랑하려고 애쓰는 자신과, 앞으로의 거창한 기대보다 이제까지 조금 성장한 자신에게 만족했고, 완벽하지 못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자신과 그들을 축하했다. 그리고 부족하기에 하느님의 도우심과 그분의 자리가 필요한 자신과 그들을 축하했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늘 축하하시듯이.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

▦ 광주대교구 한병학 마태오 신부 : 2018년 11월 4일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725   [청주] 감사의 생활  [1] 2544
724   [대전] 권력보다 사랑을 택한 그리스도  [1] 965
723   [수원] 그리스도의 왕권은 어디로부터?  [2] 2084
722   [수도회]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4] 1924
721   [의정부] 주님! 왕입니다요!  [1] 1996
720   [안동] 그리스도 우리의 왕, 우리의 주님!  [1] 1997
719   [춘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앙  [2] 2027
718   [전주] ‘갑질 신부님, 주교님께 이를 거예요!’  [1] 161
717   [원주] 우리 삶의 왕이신 주님과의 만남  103
716   [서울] 예수님, 그분은 과연 누구이신가?  [2] 2575
715   [마산] 우리도 그리스도의 왕직을 계승해야 한다.  [3] 1957
714   [대구] 구유에서 십자가까지  [1] 1879
713   [군종] 왕입니다요.  90
712   [광주] 이 세상 왕이 아니다  [1] 2023
711   [인천] 고백하자! 누가 왕인가?  [2] 2023
710   (백)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성서 주간)]독서와 복음  [4] 825
709   [수도회] 하루 하루를 꽃밭으로  [4] 2552
708   [대전] 환난 이후 종말의 희망이  [2] 1052
707   [부산] 이 순간 최선을 다하자  [5] 2256
706   [수원] 시간에 대한 영원의 승리  [5] 2683
705   [원주] 역사의 완성인 종말은 분명 있다는 사실  [2] 2627
704   [대구] 빛과 소금의 삶  [2] 2067
703   [청주] 낼까 말까? 얼마 넣을까?  134
702   [광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122
701   [서울] 악한 세상을 이기는 지혜  [8] 2712
700   [인천] “미쳤어. 저렇게 왜 살까?”  [4] 2384
699   [전주] 종말론적 교회  [1] 2506
698   [의정부]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일  [3] 2159
697   [춘천]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4] 2894
696   [안동] 그 날과 그 시간에 대한 표징  156
695   [군종] “끝에서 만나는 은혜로운 시작”  140
694   [마산] 내 삶의 마지막을 기억하며  187
693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 세계가난한이의날  [5] 1910
692   [수도회]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봉헌  [4] 2689
691   [수원] 사랑은 작은 법이 없다  [4] 2673
690   [군종] 컵에 우유가 반밖에? 반씩이나?  [1] 2330
689   [부산] 참된 봉헌  [5] 2466
688   [안동] 나눔은 변화된 삶!  [2] 2535
687   [춘천] 정성어린 이 제물  [4] 2712
686   [의정부] 하느님과 공동체를 위한 카리스마  [4] 2400
1 [2][3][4][5][6][7][8][9][10]..[19]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