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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외상 신자와 맞돈
조회수 | 53
작성일 | 18.11.08
[광주] 외상 신자와 맞돈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실 때에는 남기지 않고 있는 것을 다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어떤 의미에서 지독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그러한 철저한 요구가 우리에게는 큰 축복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요구에는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주시는 사랑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계산입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백 살에 아들을 하나 얻어 금이야 옥이야 하고 키울 때 하느님께서는 그 하나뿐인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도록 아브라함에게 명하셨습니다. 아들을 죽여서 불에 태워서 바치라는 것입니다. 잔인하고도 끔찍스런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요구에 순명합니다.

귀여운 아들을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치기 위해 산으로 끌고가는 아브라함의 마음은 참으로 착잡했을 것입니다. 아마 눈에서 피눈물 을 쏟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에 따랐을 때 그는 상상할 수도 없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들을 잃지 않고도 하늘의 별보다도 더 많은 후손을 약속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산은 인간의 계산과는 다릅니다. 인간의 계산으론 하나 있는 아들에서 하나 있는 아들을 봉헌하면 무자식이 되고 후손이 끊기지만 하느님의 계산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 있는 아들에서 하나 있는 아들을 봉헌해도 그 후손이 십만도 되고 백만도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봉헌을 인간의 계산으로만 따져서는 안됩니다.

오늘 1독서에서 사렙다의 과부도 자기가 마지막으로 먹고 죽을 아깝고 귀한 음식을 먼저 예언자 엘리야에게 바쳤기 때문에 그 과부 집에는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아 그 대흉년에 살아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만일에 자기가 먼저 먹고 하느님의 사람을 생각했다면 그녀는 굶어죽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실 때는 있는 것 전부를 원하시는데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개 마귀란 놈이 그 백 배, 천 배를 뺏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께 봉헌한다 해서 뺏기는 손해로 생각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 봉헌을 통해서 내 인생과 재산이 지켜진다는 축복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성서에 보면 하느님의 몫이 꼭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십일조라고 합니다. 레위기(27,30)에 보면 “수확과 수입의 십분의 일은 내 것이니 나에게 바쳐라."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라기(3,10)에 보면 “십일조를 바쳐 나를 시험해 봐라.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풍성하게 주겠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십일조의 은혜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쓰고 남는 것에서 얼마를 바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바칠 것도 없고 또 그나마도 바치는 것을 굉장히 아까워합니다. 바칠 때는 심장이나 허파를 떼서 바쳐야 신이 나고 간이나 콩팥을 봉헌해야 재미도 있습니다. 신앙의 기운이 거기서 생기고 은혜의 맛도 거기서 생깁니다. 찌꺼기를 바치려니까 신앙이 부담만 됩니다.

시골 본당에서의 일입니다. 주일미사에 참석하는 농촌 사람들의 얼굴이 늘 죽어 있었습니다. 강론 때 아무리 웃겨도 웃지 않습니다. 웃으려다가는 쑥 감춥니다. 뭘 시켜도 눈치만 보고 표정들이 항상 어두웠습니다. 처음에는 그 내용을 몰랐습니다. 가난과 일에 찌들어 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일 년 내내 교무금을 안 냅니다. 성탄 면접에 가서 야 그때 추곡수매한 돈에서 누구는 삼만 원, 또 누구는 오만 원씩을 일 년치라고 냅니다. 그래서 제가 신자들에게 그 얘기를 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일 년 내내 죽어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그것은 성당을 줄곧 외상으로 다니기 때문에 표정이 떳떳지 못하고 죽어 있다고. 그러니 매월 하루 품삯씩 첫 주일에 맞돈처럼 내놓고 다니라고 했습니다.

맞돈 내놓고 성당에 다니라고 하니까 신자들이 모두 웃었습니다. 그런데 일 월부터 교무금이 수백 퍼센트 인상이 되더니 첫 주일에 그것도 구십 퍼센트 이상이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신자들의 죽은 얼굴에 비로소 생기가 돌고 빛이 생겼습니다. 강론 때 웃기지 않아도 신나게 웃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이젠 신앙이 즐거우니까 성당만 쳐다봐도 재미있다고 했습니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입니다.

외상 신자니 맞돈이니 하는 표현이 아름답지 않은 것만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 바쳐야 할 것을 제대로 바치지 않게 되면 그 신앙은 위선이요 떳떳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속이고 있기 때문에 기도에도 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은혜의 맛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봉헌이 떳떳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복은 봉헌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십일조가 어려우면 적어도 십일조의 반은 바쳐야 됩니다. 그래야 정성이니 성의니 말할 수 있지 그렇지 않다면 그는 하느님을 속이고 자신도 역시 속이는 것입니다. 오늘 과부의 헌금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따라서 우리도 아름다운 봉헌을 하도록 합시다.

▥ 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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