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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자진해서 기쁘게 사순시기를...
조회수 | 64
작성일 | 21.02.17
[원주] 자진해서 기쁘게 사순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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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만 생각하면 은근히 어깨가 무거워지고,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뭔가 보속해야 할 것 같고,
절제해야 할 것 같고,
결심해야 할 것만 같아서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
'회개해라, '단식해라'.

생각만 해도 힘들고,
어둡고, 복잡하기만 합니다.

그 동안 들어왔던 사순시기의 강론이나,
또 제가 했던 강론도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죄의 회개에 그 중심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올해는 좀 다른 시각으로 사순시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물론 또 같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복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회개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예수님을 통해 이제 실현되었으니,
예전의 그 낡은 사고방식 속의 내 행동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 속으로 걸어가라는 것이 오늘의 복음말씀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 어르신들은 이 사순시기가 은혜로운 때라고,
하늘나라 문이 열려 있어서
이 시기에 죽으면 곧장 천국으로 간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사순시기는 은혜로운 때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일입니다.
기쁜 일입니다.
그리고 새로움을 시도할 수 있는 때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는데
나의 태도를 바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 전의 고집불통이고, 낡고, 아집 투성이인 나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순시기에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회개인 것입니다.

머리로
'내가 잘못한게 뭘까,
그래 이렇게 고쳐야지'하고 끝나면 안됩니다.

뭔가 행동 한 가지라도,
생각 한 가지라도 하느님의 뜻에 맞게 바꾸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는데,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즐겁고, 기쁘게 변화해야 합니다.
올해는 남이 시켜서,
혹 주위의 눈이 너무 많아서 결심하고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자진해서 기쁘게 변화해 보면 어떨까요.
좀 더 기쁘게 사순시기를 지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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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박준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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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사순절, 지옥에서 탈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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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소설 속에서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무시무시하게 뜨거운 유황불,
그 불을 풀무질하시는 거대한 하느님의 숨, 추위, 배고픔, 악취, 질식, 으깨어짐, 못박힘.....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소설이라서 천만다행입니다.
그리고 지옥에는 절대로 가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 합니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세상이 지옥입니다.
돈 때문에 지옥,
사람 때문에 지옥입니다.
그럼 우리는 지옥에서 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겠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세상이 곧 천국입니다.
그러니 늘 기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천국에서 사는 것과 진배없겠지요.

같은 장소에서 살면서 누구는 천국에서,
누구는 지옥에서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사실 이 세상은 지옥도 천국도 아니겠죠.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지옥처럼'살고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천국처럼'삽니다.

지옥처럼'은 지옥행 티켓,
'천국처럼'은 천국행 티켓.
과장이 심했나요.
그래도 이왕 사는 거라면 '천국처럼'사는 것이
백번 나을 법 합니다.
그래서 사순절을 만드셨나 봅니다.

"지옥은 바로 나 자신이다.
사랑에 굶주리고 사랑의 능력이 없는 나 자신이 바로 지옥이다."
어느 신학자의 말입니다.

내가 지옥이면 지옥에서 사는 것은 물론이고 나랑 접촉하는 타인도 지옥의 맛을 보겠지요.

내가 천국이면 천국에서 사는 것은 물론이고 나랑 접촉하는 타인도 천국의 맛을 보겠지요.

사막에서 예수님은 아마도 냅다 고생하시곤 천국이 되셨나 봅니다.

그러니 그분의 말씀에서 절절히 천국냄새가 나지요.

추기경님께서 동그라미와 점 몇 개를 찍어놓고 바보야 하고 쓰고는 순진한 살인미소 한번 날렸을 뿐인데 천국냄새가 풀풀 나는 것도 같은 이치겠지요.

우리라고 못할 것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사순절이 있으니까요.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는
논리적이지 못한 은총의 시간, 사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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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장수백 신부
  |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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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회개 : ‘의미 없음’을 ‘의미 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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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성지 한구석에 놓여있는 자동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난여름에는 장마,
가을에는 황사, 겨울에는 눈이라는 핑계로 반년은 세차를 하지 않아 잿빛이 되어버린 제 하얀 자동차였습니다. 마침 하늘도 맑아서 큰맘을 먹고 시내에 나가 미뤄두었던 세차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세차를 끝내기 무섭게 흐려진 하늘은 야속한 겨울비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빗길을 뚫고 도착한 제 차에는 흙탕물이 잔뜩 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과 말들이 있습니다.
'비 오기 직전 한 세차'처럼
'술을 끊겠어',
'다이어트 한다.',
'언제 밥 한번 먹자.'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흘려보낸 하루'와 같이 말입니다.

코로나19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과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고통은 '코로나 블루(코로나 19+우울감 blue의 합성어)'일 것입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는
만남을 두렵게 하였고 그로 인한 일상생활의 제약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일상과 그에 익숙해져 버린 무기력감에 '의미 없음'이라는 딱지를 붙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의미 없음'이라는 딱지를 붙였고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나타났습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의 키워드는 '회개'입니다.

회개가
죄로 물든 내 삶을 하느님께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래서 스스로를 죄인으로 낙인 짓지 않고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닫는 길이라면, 오늘날 코로나 블루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역시도 '회개'입니다.

'회개'는
하느님과 멀어져 의미 없어 보였던 내 지난날을 하느님의 뜻이 함께한 '의미 있는 삶'으로 다시 보고 감사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바로 그전까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실패로 여겨졌고 제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간의 예수님의 행적은 '의미 없음'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의미 없어 보였던
예수님의 하루들을 구원의 역사로 다시 보게 해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을 준비하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 시기는 의미 없어 보이는 수난과 죽음을 구원의 역사로 다시 바라보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 안에서
우리 삶을 바라보고, 의미 없어 보였던 내 일상이 구원의 역사 일부임을 깨닫는 회개와 정화의 시기입니다.

우울감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 없듯이
회개 역시도 홀로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이끄심과 함께 하셨듯,
우리의 여정에 성령의 동반을 청해야 합니다.

부디 지금 내 일상과 삶이 의미 없이 여겨지고 있다면
이번 사순시기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이 겪으시는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이르기까지 함께하시어
우리의 삶과 일상이
구원 역사와 하나로 여겨지고 있음을
깨닫는 은총 받으시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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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김재훈 베드로 신부
2021년 2월 21일 <원주교구 주보>에서
  |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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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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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보면 노아와 방주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세상이 타락해서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십니다(창세기 6장 5절-7절). 그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그러나 의인 노아만큼은 구원하시려고 그에게 방주를 만들도록 명령하십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 암수 한 쌍 씩을 배에 싣고 노아 가족을 방주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40일을 동안 비를 내리셔서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키려 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여 방주를 만든 노아는 홍수에서 날 수가 있었고 노아와 그 가족은 홍수가 끝나고 새와 집짐승과 땅의 모든 들짐승과 함께 그 방주에서 마른 땅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파멸시키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시며 무지개를 세우셔서 계약의 표징으로 삼으십니다.1)

베드로 사도는 서간을 통하여 하느님께 순명하지 않은 이들을 멸망했지만 하느님께 순명하여 방주로 들어갔던 노아 가족은 물로 구원받았던 사실을 연결시키며 세례에 대한 말씀을 전합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베드로 1서 3장 20절-21절)
마르코는 다른 공관복음이 전하는 사막에서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사탄에게 받으셨던 유혹들’을 간략하게 전합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에 내 보내셨다.’(마르코 복음 1장 12정)라는 표현은 마르코 특유의 짧으면서도 강한 인상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스스로 가신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보내진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마태오와 루카는
좀 더 상세하게 세 가지 유혹에 대해서 전하고 있습니다.2)

그리고 마르코는 요한이 잡힌 사건을 전하면서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로 가시어 하느님말씀을 선포하시며 말씀하신 것을 또한 전하고 있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코 복음 1장 15절)

마르코 복음사가는 다른 복음과는 달리 주님께서 광야에서 ‘들짐승과 천사들과 함께’라는 지내셨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마르코는 이사야 예언자의 도래한 메시아 시대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3)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사실이 우리에게는 당혹스러움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여기에서 마르코는 예수님의 뜻보다는 성령의 힘을 더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주님을 광야로 ‘내몰으셨다.’라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몰론 예수님께서 억지로 끌려가다시피 광야로 들어가신 것은 아니지만 이미 계획되었던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명하셨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바로 요르단 강 부근의 사막에서유혹을 받으심으로써 이 세상에 파견되신 복음 선포의 소명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일상생활을 한번 볼까요?
유혹과 거기에 따르는 혼란과 고통은 우리나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이끌려서 그 세계로 내가 들어간다고 하겠습니다.

누가 유혹과 그 고통을 계획하며 또 원하겠어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들이 우리를 힘들게 할 때가 많은데, 주님께서는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단식과 함께 유혹을 겪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마치 모세가 호렙산에서 40일을 단식과 함께 보내고 나서 하느님의 십계명을 받았고(탈출 34,28),예언자 엘리야는 주야 사십 일간 걸어서 호렙산에 당도한 다음에 하느님을 만났던 과거의 사실이 예수님의 유혹사건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구약에 있었던 모세와 엘리야의 사건들을 메시아의 사건으로 이어가시며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광야의 40일은 그분의 공생활의 서막이라고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광야에서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심으로, 장차 다가올 사람들로부터의 소외와 고통을 받아들일 바탕을 마련하시는 것입니다.

정점인 겟세마니의 기도에서 나타나듯 주님께서는 인간의 나약함을 딛고 오로지 순명의 길을 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소외와 단절,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을 맞이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광야에서의 유혹사건을 묵상하면서 사람들로 부터의 격리와 거기에 따르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께서 철저하게 아버지의 뜻을 따르신 순명의 길을 함께 걷도록 합시다. 그리고 광야에서 40년을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의 삶도 하느님 나라를 향한 멈추지 않는 여정임을 아울러 가슴에 새기도록 합시다.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현실은 때로 우리 자신 안에 또 이웃 안에서 실망하며 살고있습니다. 주님께서 유혹을 받으셨다는 사실이 유혹 속에서 흔들리며 사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그 유혹이 얼마나 힘들면 주님께서 유혹에 맞서지 말고 당신처럼 순명의 자세로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며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마태오 복음 6장 13절)라고 기도를 당부 하시겠어요?

마귀의 유혹 앞에 우리가 바람처럼 흔들리고 연약할 수 있지만 주님께서 함께 계셔서 위로와 용기를 갖고 이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런 모습을 잊지 말고 이웃이 유혹에 시달리고 있을 때, 유혹을 다 이긴 사람처럼‘누구는 이렇고 저렇고’하며 시건방 떨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사순절동안 우리의 약한 모습, 죄인의 모습을 주님께서 자비와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고 용서해주시기를 청하며 열심히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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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느님께서 “내가 구름사이에 나의 무지개를(’eṯ-qaš·tî) 둔다. 그리고 이것이 땅과 나 사이에 계약의표징(lə·’ō·wṯ bə·rîṯ)이 될 것이다.”(창세 9,13)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하느님께서 ‘내가 둔다’라든지‘나의 무지개’라고 표현하시는 것은 하느님께서 친히 노아와 모든 생물을 다시는 물로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을 무지개를 계약의 표징으로 삼으시겠다는 뜻을 드러내신다.

2)

마르코는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셔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게 하신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에크발레이 ἐκβάλλει)’라는 보다 강한 표현을 쓴다. 이것은 성령께서주도하셔서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고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게 하셨다는 뜻으로도이해할 수 있다. 마태오(4,1)는 예수님께서 성령에 의해서 ‘인도되셨다.’는 수동태 동사 ‘아네크테 ἀνήχθη’를,루카(4,1)는 성령에 ‘이끌려.’라는 수동태 동사 ‘에게토 ἠγετο’를 각각 다르게 쓰고 있다.

마르코는 사십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는데 내내 들짐승과 함께 지내셨고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셨다는간단한 설명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마르코는 유혹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는데 비해서 마태오(4,3-10)는‘돌을 가지고 빵을 만들어 보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보라.’, 높은 산에서 ‘악마에게 경배하라.’라는악마의 유혹을 전한다. . 악마는 그분에게서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든다.(마태 4,11)

루카는 유혹을 받으시는 동안 아무것도 잡수지 않았다고 설명과 함께 마태오와는 조금 차이가 있게 유혹받으신순서를 전하고 있다.(4,3-13) 악마는 ‘돌을 가지고 빵을 만들어 보라.’, 높은 데에서 ‘악마에게 경배하라’,그리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보라.’고 유혹한다.

예수님께서 성경의 말씀으로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신다.악마는 다음 기회를 노리며 예수님에게서 떠난다. 마태오와 루카는 유혹 순서만 다르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의말씀(신명 8,3; 신명 6,16; 신명 6,13)으로 그 모든 유혹들을 물리치신다. 악마도 “그분께서는 너를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시편 91,11-12)를 인용하며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게 유혹한다.

3)

마르코(1,13)는 ‘사나운 들짐승과 함께 지내시고 천사들이 시중을 들었다.’라는 표현으로 구약으로부터 내려오는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암시하고 있다. 이사야 예언자는 종말의 메시아 시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늑대가 새끼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이사 11,6) 다시 말해서 메시아의 날에는 들판의 동물도 위험하지 않고 서로 평화로운 시대가 오리라는 예언이다. 마르코는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1,1)의 주제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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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정인준 신부
2021년 2월 21일
  |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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