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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하느님의 때
조회수 | 80
작성일 | 21.02.18
[청주] 하느님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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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처럼 타성에 젖어 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냥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믿는 우리들에게 시간은 의미 충만한 하느님의 때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땅,
같은 시간을 살아도
그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이 사뭇 다릅니다.

어떤 이는 어려움 속에서 천국의 시간을 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풍족함 속에서 지옥의 시간을 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미신과 우상숭배를 통해서
점을 보고 부적을 써서 좋은 때를 찾으려 합니다.

행복한 시간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시간을 하느님의 시간으로 만들 때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기도와 미사입니다.

우리는 기도와 미사를 통해서
하루를 거룩하게 하고
일주일을 거룩하게 하고
한 해를 거룩하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와 미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때를 발견하게 되고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의 삶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죽음과 종말이 언제 오든지
이제 그것은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시간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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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김훈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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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담배 끊는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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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는데
그는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이었습니다.
이 도둑은 사순절을 맞이해서
이 시기 만큼은 뜻 깊게 지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들은 풍월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순절만이라도 도둑질을 하지 않는
양심적이고 신앙적인 도둑(?)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
이 고질적인 습관과 버릇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남의 집을 털려고 하다가 여의치 않아
가장 부담이 적은 성당 사제관을 털기로 했습니다.
이 도둑은 마침 그 때
성당 마당에서 산책하고 있던
신부 등 뒤로 가서 칼을 들이댔습니다.
“신부님, 가진 것을 모두 내어 놓으십시오.
그러면 저는 조용히 돌아가겠습니다.”
그 때 신부는 주머니 이곳저곳을 뒤지다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도둑에게 말합니다.
“당신 참 안됐습니다.
하필이면 가난한 신부라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드릴 것이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피우고 남은 담배가 있는데 그거라도 가지고 가겠습니까?
그러자 이 도둑이 하는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신부님, 저를 뭘로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사순절이라 저도 담배 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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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지만,
사순절을 시작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도둑이 끊어야 할 것은 담배입니까?
아니면 도둑질입니까?

지금도 아랍세계에서는 물건을 훔치면 그 손을 끊어버리는 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끊어야 할 것은 그 손입니까?
아니면 도둑질하려는 그 마음입니까?

누군가와 싸웠다면 화해가 먼저입니까?
아니면 미움을 없애는 것이 먼저입니까?

욕을 하고 남을 비방하는 사람이 고쳐야 할 것은 그 입입니까?
아니면 좋지 않은 그 마음입니까?

도둑이 정작 끊어야 할 도둑질은 끊지 않고 담배만 끊은 것처럼, 우리도 정작 끊어야 할 것들은 끊지 않고, 술, 담배, 음식 같은 외적인 것만 끊으면서 자기만족 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볼 일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고 있지 않은지
머리 숙여 성찰해 볼 일입니다.

“이 눈먼 사람들아,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그대로 삼키는 것이 바로 너희들이다.

너희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만은 깨끗이 닦아 놓지만
그 속에는 착취와 탐욕이 가득 차 있다.
이 눈먼 사람들아, 먼저 잔 속을 깨끗이 닦아라.
그래야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겉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썩은 것이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옳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차 있다” (마태오 복음 23장 24절-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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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사도 요한 신부
  |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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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유혹은 은총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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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베푸십니다.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는 용기를 통해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특별히 유혹에 관해 묵상하며
주님의 손길이 늘 우리를 지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시조 한 수 읊어 드리겠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는 고려왕조를 뒤엎고 조선왕조를 창건하려는 야심을 품은 이방원이 충신 정몽주를 회유하려고 시조 한 수를 들려주면서 마음을 떠본 내용입니다.

칡덩굴처럼 서로 얽혀서 옛 왕조, 새 왕조 따지지 말고 오래오래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한 것입니다.

이에 정몽주가
시조 한 수를 지어 변절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결국 정몽주는 이런 충절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천주교회는 100여년의 박해 속에
만 여명이 넘는 순교자를 낳았습니다.
온갖 유혹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임 향한 일편단심”을 버리지 않은 분들이 순교자들입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세례성사를 청하면서 주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였고
온갖 허례허식과 마귀를 끊어버린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서약을 잘 지켜야 합니다.
주님을 첫 자리에 모시겠다고 약속하였지만
주님보다 세상의 소유와 지배,
재물과 권력에 마음을 빼앗길 때가 많습니다.
온갖 유혹에서 자유롭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신부가 된지 10여 년 만에 사회복지 공부를 했습니다.
조치원역에서 서울로 야간열차를 이용하며 대학원에 다녔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충남 조치원역에 새벽0시10분경에 도착하게 됩니다.
역 앞을 나오기가 무섭게 아가씨들이 달라붙어 말합니다.
“오빠, 따뜻한 방 있어요, 쉬고 가세요!”
그러면 제가 “내 방도 따뜻한데요!”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런 다음부터는 로만 칼라를 하고 다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씨들은 여전히 달라붙었어요.
요즘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기분이 좋았을까요?
한번 가고 싶었을까요?
여러분 좋은 대로 생각하십시오.

부부간에 갈등이 있고 지쳐서 집에 들어가기 싫은데 “따듯한 방 있어요!”하고 아가씨가 달라붙는다면 한번쯤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러니 남편에게 바가지 긁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아내에게 대한 신뢰와 사랑이 있는 사람이야 어디다 한 눈을 팔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악의 유혹은 달콤하게 다가오는 법입니다. 내가 약해 졌을 때를 이용하는 법입니다. 교묘하기 기회를 만들어 냅니다.

창세기에 보면 간교한 뱀이
여자를 유혹하는데 “여자가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 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다 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다 주었다”(창세기 3장 6절)고 했습니다.

“먹음직하고 탐스러운”게 문제입니다.

다른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떡은 더 커 보이는 법입니다.
재물이나 명예, 권력에 대한 욕심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밟고 올라서게 하는 죄로 이끕니다.

시기 질투하는 마음, 이기심, 미움에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식욕이 때로는 탐식하게 만들고
성적인 욕망이 음란의 죄로 이끌고,
휴식에 대한 욕망이 게으름에로 젖어들게 합니다.

잠언에 보면
“달콤한 말로 꾀고 꿀맛 같은 말로 유혹하자 젊은이가 따라 나서는데 마치 푸줏간에 끌려가는 소와도 같이 올가미에 걸려드는 사슴같이 제 발로 창애에 걸려드는 새 꼴이 되어 언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고 따라가다가 결국 간에 화살이 박히고야 말리라”(잠언 7장 21절-23절)하고 말합니다.

결국 유혹이란 부정적으로 보면
어리석은 자를 꼬이는 것을 의미하고,
올바른 생활 원칙에서 돌아서게 해서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혹에 넘어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것은 첫째로 자만해서입니다.

“네가 실컷 나쁜 짓을 하면서도 ‘나를 감시할 눈이 없다.’하고 자신만만이구나. 너는 지혜로운 체, 세상일을 다 아는 체하며 ‘이 세상엔 나밖에 없다’고 하다가 제 꾀에 넘어가리라”(이사야 예언서 47장 10절).

둘째로 ‘남 들이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사람의 모든 마음을 살피시고 모든 생각을 꿰뚫어 보십니다”(역대기 상권 28장 9절).

집회서를 보면 “어떤 생각도 그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분 앞에는 말 한 마디도 숨길 수 없다”(집회서 42장 20절).

잠언서에는“사람의 길은 주님 앞에 펼쳐져 있고, 그분께서는 그의 모든 행로를 지켜보신다”(잠언 5장 21절)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하는 일을 남이 모른다고 생각할 때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눈 아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 욕심에 끌려서입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면 좋겠는데 더 많이 소유하고 지배하고 싶은 욕심이 우리를 흔듭니다.

정말이지 그칠 줄을 알면 부끄러움이 없고 분수에 맞으면 세상이 여유로운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사실은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서 유혹을 당하고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 옵니다”(야고보서 1장 14절-15절).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해 가정이 파탄되기도 하고, 재물에 눈이 어두워 속이고, 뇌물 받고 그러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뇌물 받아 망한 사람 많지만 요즘 대통령 주변의 많은 사람들, 심지어 국회의장, 국회의원, 경찰청장 대기업 사장 등 모든 명예를 잃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술과 도박, 권세에 집착하다가 제 명대로 못사는 분도 많습니다. 분수에 맞지 않게 카드 빚 쓰다가 감당 못해 목숨을 끊는 사람도 많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혹은 긍정적으로 볼 때 은총의 시작입니다.

이 유혹을 통해서 나의 현주소를 확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내 자신의 상태를 결정적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의 유혹은 주님께서 주시는 시험입니다.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이 지상의 순례생활에는 유혹이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진보는 유혹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유혹을 당하지 않고는
아무도 자신을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유혹을 받지 않을 만큼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거룩하고 완벽하게 살려는 사람일수록 더 큰 유혹을 받게 마련입니다. 이 유혹에서 지면 보통사람이고, 이기면 그야말로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마태오 복음 6장 11절-13절).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니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시고
세 제자에게 돌아와 보시니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너희는 나와 함께 단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마태오 복음 26장 40절-41절)한탄하셨습니다.

결국 기도함으로써 유혹을 극복하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 지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 하십시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소서 6장 10절-17절)하고 권고합니다.

히브리서에서는
“그분은 친히 유혹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모든 사람을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히브리서 2잘 18절).하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유혹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유혹을 통해
오히려 우리의 인격을 연마하고
우리가 주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유혹은 더없이 큰 은총입니다.

주님께서는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라고 대답하길 원하십니다.

따라서 어떤 유혹 앞에서도 분명히 대답하십시오.
“좋은 일에는 ‘예’,
나쁜 일에는 ‘아니오’.
하느님의 뜻에는 ‘예’,
인간의 뜻에는 당연히 ‘아니오’”,
대답은 이렇게 하시면서도 속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열차를 타고 의자에 앉았는데 옆자리에 할머니께서 앉으셨답니다. 할머니께서 피곤하신지 꼬박 꼬박 졸다가 젊은이에게 기대서 주무시는 겁니다. 그래서 젊은이가 기도했습니다. “주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런데 어느 날 복이 많은지 예쁜 젊은 여자가 옆자리에 앉는 겁니다. 여인도 피곤했는지 졸더니만 급기야 젊은이 어깨에 기대어 자는 겁니다. 그래서 젊은이가 기도했습니다. “주님, 당신 뜻대로 하소서”. 혹 우리의 마음이 아닌지요?

세례를 받은 후 더욱더 심하게 유혹을 받는다고 생각될 때,
왜 나에게는 이런 유혹이,
시련이 오느냐 투덜대지 말고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신 후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았고
또 말씀으로 물리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루카 복음 4장 1절-13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1). 돌더러 빵이 되게 해 보라는 악마의 경제적 유혹 앞에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하셨습니다.

2). 내 앞에 경배하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는 정치적 유혹 앞에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3).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천사들이 떠받쳐 주리라고 하며 자신을 위해 기적을 남용하라는 유혹 앞에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마라.”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하시며 유혹을 멀리하셨습니다.

그러나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습니다.

다음 기회를 노렸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도 우리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의 힘을 입어 얼마든지 유혹을 극복할 수 있고 은총의 기회로 만들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바닷가에 가보면 벼랑 끝의 소나무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면서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리고 가지를 튼튼하게 뻗었습니다.

우리도 유혹과 시련의 시험을 통해 더 강해지기를 희망합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보내신 이유가 뭘까요?

그곳에 구원해야 할 인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목마르고 배고프고 외롭고 쓸쓸한 곳입니다.
황량한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이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바로 온갖 유혹이 있는 이 세상이 광야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몸소 유혹을 받으시고
우리 인간이 처해 있는 상황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십니다.

그분이 유혹을 받으셨기에
유혹받는 우리를 이해하시고
더 큰 사랑으로 보듬어 주십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연약함을 너무 쉽게 유혹에 노출시키지 마십시오.
가능하면 유혹 당할 수 있는 기회를 피하십시오.
왜냐하면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작심삼일作心三日입니다.

아무쪼록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지 말고,
주님의 시험으로 받아들여
은총으로 만드는 한 주간되시길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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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 02.18
465 94%
[청주] ‘나는 먼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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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은총의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시기의 첫날인 재의 수요일에
우리는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에 참례하며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라는 말을 듣습니다. 죄에서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향한 보속을 하는 사순시기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말입니다.

‘나는 먼지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우리가 ‘사람’임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언젠가는 먼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지금 누리는 즐거움과 쾌락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릴 것임을 깨닫는 일입니다.

‘나는 먼지입니다.’

물론, 자신이 먼지임을 고백하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진실을 부정하거나 외
면하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좀 더 화려하고 좀 더 대단하게 살려고 하면 할수록 그런 유혹은 더욱 강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먼지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더라도 그 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나는 먼지입니다.’
이 껄끄러운 진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회개의 여정은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제서야 이 세상에서 눈을 들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찾게 됩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알아보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사고 기도하게 됩니다.

회개의 마지막 목적지는 하느님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다고 전해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사탄은 매일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 다가옵니다.
사탄이 사람을 유혹하는 이유는 자신이 사람임을 잊게 하고 나아가 하느님을 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던지 하느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적어도 먼지처럼 살지는 말라고 유혹합니다.

유혹을 이기시고 하느님 아버지를 알려 주신 예수님.
먼지 같은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시며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 참사람의 삶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닮을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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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신동운 요셉 신부
2021년 2월 21일 <청주교구 주보>에서
  |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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