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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31주일 독서와 복음 [사랑의 이중계명]
조회수 | 945
작성일 | 12.11.03
<이스라엘아, 들어라.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6,2-6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2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평생토록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그분의 모든 규정과 계명을 지켜라. 그러면 오래 살 것이다.
3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이것을 듣고 명심하여 실천하여라. 그러면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약속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가 잘되고 크게 번성할 것이다.
4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5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6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사시기 때문에 영구한 사제직을 지니십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7,23-28

형제 여러분, 이전 계약의 23 사제들은 죽음 때문에 직무를 계속할 수가 없어 그 수가 많았습니다. 24 그러나 그분께서는 영원히 사시기 때문에 영구한 사제직을 지니십니다. 25 따라서 그분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살아 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빌어 주십니다.
26 사실 우리는 이와 같은 대사제가 필요하였습니다.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떨어져 계시며 하늘보다 더 높으신 분이 되신 대사제이십니다. 27 그분께서는 다른 대사제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치고 그다음으로 백성의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을 바치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28 율법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을 대사제로 세우지만, 율법 다음에 이루어진 맹세의 그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드님을 대사제로 세웁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8ㄱㄷ-34

그때에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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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의 질문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가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둘째가는 계명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목숨,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또한 이웃을 사랑하되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자신의 신조(信條)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조란 일종의 인생의 목표입니다. 한번은 공자의 애제자인 자공(子貢)이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평생 지켜야 할 신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서(恕)이다.”

한자의 ‘용서할 서’(恕) 자를 풀이하면 ‘마음〔心〕이 서로 같다〔如〕.’는 뜻입니다.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같은 것이 서(恕)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의 마음을 헤아려 그 마음과 하나가 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이 바라는 것을 실천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마음, 곧 하느님의 뜻과 하나가 됩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닮고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 이루어 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신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매일미사 2012년 11월
  |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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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날마다 하느님 말씀을 깊이 새겨듣는 마음을 주소서.

► 세밀한 독서 (Lectio)

어느 율법학자가 성전 안 마당에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와 논쟁을 벌이고 계시는 예수님”(마르 12,18-27 참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37절)는 많은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겠지요. 그는 먼저 예수님 말씀을 잘 듣고 질문합니다.(28절) 깊이 새겨듣는 마음은 예수님의 생각, 나아가 예수님의 정체를 더 잘 알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그가 “첫째가는 계명”(28절)에 대해 질문한 이유는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한테는 613개나 되는 율법목록이 있었고 그것의 가치와 중요성의 위계에 대해 날카롭게 토론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질문에 신명기 6장 4-5절을 인용해 답변하시고 이것을 이웃 사랑에 대해 말한 레위기 19장 18절과 연결해 율법 전체의 정신을 제대로 살 수 있는 전망을 제공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인간의 삶이 성공하고 번성하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 데서 출발한다고 봅니다.(신명 30,15-18 참조) ‘듣다’는 단순히 듣는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이 제안하시는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6,5)에서 ‘마음’ 곧 심장은 피가 순환하는 장소로서 신체의 중심지(2사무 18,14; 2열왕 9,24; 토빗 6,5), 나아가 영적인 삶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목숨’은 매 순간 쉬는 ‘숨’, 곧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입니다. ‘정신’은 아는 능력인 지성과 관련있는데 인식과 사고의 중심지입니다. 사랑하고 제대로 보려면 알아야 합니다. 지성은 마음의 눈과 같습니다. ‘힘’은 육체의 힘이 아니라 ‘네가 할 수 있는 한 완전하게’라는 의미입니다. 이 구절에서 ‘마음, 목숨, 정신, 혼’은 인격의 각기 다른 부분이 아니라 한 개인 전체, ‘나 자신’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로 결합됩니다. 여기서 ‘다하다’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홀로스’는 일치에 초점을 둔, ‘전부의, 완전한’이라는 의미입니다. 첫째 계명은 한마디로 하면 ‘네가 살면서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통해 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식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율법학자는 첫째 계명을 물었는데 예수님은 둘째 계명으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 참조: 레위 19,18)를 덧붙입니다. 하느님 사랑이라는 깊은 강에서 이웃 사랑이라는 물이 흘러나오기에 이웃 사랑은 ‘둘째 계명’입니다. 부차적이기 때문에 둘째 계명이 아닙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첫자리에 놓는 사람은 수돗물을 강과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수돗물이 마르면 강물에도 접촉할 수 없습니다. ‘네 이웃’이 누구인지에 잠시 머물러 봅니다. 예수님 말씀을 따르자면 나와 잘 지내는 사람만이 아니라 잘 지내지 못하는 사람, 나한테 상처와 모욕을 주는 사람, 나를 박해하는 원수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들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윤리적인 요구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랑은 피상적이고 위선이 될 것입니다. 이웃 사랑은 궁극적으로는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창조 목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창세 1,27) 그러나 사실 이웃 사랑은 어렵습니다. 아니 어렵게 보인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30)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이웃 사랑은 편한 짐이 될 것이며 우리도 시편 저자처럼 외칠 것입니다. “당신께서 제 마음을 넓혀주셨기에 당신 계명의 길을 달립니다.”(시편 119,32) 그리고 예수님이 주신 새로운 계명의 길을 용기 있게 걸어갈 수 있겠지요.(요한 13,34)

예수님의 답변을 들은 율법학자는 이렇게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라고 말합니다.(시편 40,7; 호세 6,6 참조) 이 율법학자는 마르코복음에서 예수님의 지혜를 알아본 첫 사람입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라는 말은 세리와 창녀들도 들어간다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이 사람한테 아직도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떠올리게 합니다. 편견과 선입견, 자기 삶의 안전을 위해 예수님을 비판하는 대부분의 율법학자들과 달리 진리를 말하는 사람한테 귀 기울이고 나아가 칭찬할 줄 알았던 이 율법학자한테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 묵상 (Meditatio)

주님, 저한테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제 마음을 넓혀주시어 저를 큰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당신께 청하는 일입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당신께는 어떠한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음을!”(욥기 42,2)

► 기도 (Oratio)

당신께서는 구원의 방패를 제게 주시고 당신 오른손으로 저를 받쳐주시며 손수 보살피시어 저를 크게 만드셨습니다.(시편 18,36)

▥ 임숙희(영성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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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이 없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마치 우리가 마시는 공기처럼, 날마다 받는 햇살처럼 하느님께서는 나보다 더욱 내 곁에 가까이 계시는 분이시지만, 때로는 너무 가까이 계셔서 그분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 때도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첫째 계명, 곧 “이스라엘아, 들어라!”로 시작하는 신명기의 위대한 계명을 상기시키십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주님으로 믿는다는 것은, 내 존재의 시작과 마침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때로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가 있지만, 마음이 흔들릴 때 언제든 하느님께 도움을 청해야 하고, 목숨 걸고 잃지 않으려는 내 재산과 명예, 건강만큼이나 하느님께 기도하는 시간과 봉헌의 몫을 바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올바른 믿음을 간직하려면 정신을 헛된 것에 쓰지 않고 성경과 교리 공부도 해야 하고, 삶에 지쳐서 쓰러지더라도 힘을 내서 일어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런 하느님 사랑의 첫째 계명은 이웃 사랑을 통하여 완성됩니다. 사랑은 마음이나 생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행동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내가 교리를 잘 몰라서도 아니고, 성경 지식이 짧아서도 아닙니다. 내가 만나는 이웃들, 특히 교회 생활에서 만나는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은 물론, 가족과 직장 동료, 일상에서 부딪히는 이웃들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무너질 때 신앙도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은, 피하고 싶은 내 이웃을 용서하고 이해하며, 기다려 주고 돌보아 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누구의 이웃이 되어 주고 있습니까?

▦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2018년 11월 4일
  |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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