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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참된 봉헌
조회수 | 876
작성일 | 12.11.11
오늘 복음에 나오는 과부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돈을 전부 헌금궤에 집어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의도적으로 헌금궤 맞은편으로 가서 앉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헌금하는가를 보시고 무엇인가를 말씀하시려는 의도였습니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동전만 썼기 때문에 헌금궤에 떨어지는 돈 소리도 여러 가지였을 것입니다. 돈을 많이 내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조금은 거들먹거리면서도,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보아 주기를 바라면서 헌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부는 부끄러워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되도록이면 눈여겨보지 않기를 바라면서 돈을 집어넣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장면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누가 진정으로 더 많이 내었는가를 말씀하십니다. 액수가 큰 헌금을 내놓은 부자보다 그야말로 동전 한 닢을 넣은 과부가 더 많은 것을 냈다고 말씀하십니다. 헌금의 크고 작음은 객관적인 액수의 과다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액수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내놓은 헌금이 그 사람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결정적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부자들에게는 그 헌금이 큰 의미가 없는 액수입니다. 그들의 생활에 별다른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액수입니다. 그러나 과부에게는 그 헌금이 자기가 가진 것 전부였습니다. 헌금을 함으로써 이 과부는 자기 생계에 대해서 모험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헌금하였습니다. 결국 자기의 일부를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진정한 헌금, 또는 남을 진정으로 돕는다는 것은 단순히 자기가 가진 바의 일부, 또는 쓰고 남은 나머지를 내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자신의 일부를 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떠합니까? 나는 과연 하느님께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바치며 살고 있습니까? 또 나는 과연 다른 이들에게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내주면서 살고 있습니까? 다시 말해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고 앞으로의 축복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주님께 드리는 헌금은 어떠한 마음과 정성으로 봉헌하고 있습니까?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에게 바치는 것이니 사랑이 깃든 기꺼운 마음으로 정성껏 봉헌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금을 내는 심정으로, 아니면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처럼 깎으려는 심정으로, 또는 팁을 내는 심정으로 봉헌하고 있는지 우리 삶을 돌이켜 보도록 합시다.

대구대교구 이수승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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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구원에 이르는 결산

산자연중학교의 가을은 풍성합니다. 그리고 바쁩니다. 자연이 결산을 해야 할 때이기에 그렇습니다. 자연히 자연의 결산에 동참하고 있는 산자연중학교 식구들도 풍성하고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붉어진 감을 따고, 고구마와 땅콩을 캐고, 콩을 수확해서 두드리고, 은행도 털고, 빨갛게 물든 사과도 땁니다. 자연의 섭리는 모든 것을 내어 놓고 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살찌웠던 것을 내놓습니다. 다 내놓습니다. 주저함도 없습니다. 그냥 다 내놓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처럼 말입니다.

우리도 결산을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교회달력으로 한해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죽음을 묵상하는 위령 성월도 보내고 있습니다. 결산의 날이 다가오면 우리도 많이 바쁩니다. 자연은 다 내어주는 결산을 하기 위해서 바쁜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바쁜가요? 무엇을 정리해야할까요? 어떻게 결산을 해야 할까요?

오래 전에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님께서 신부들에게 감자탕 교회에 대해서 소개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는 한해를 살고나면 통장잔고를 100만 원 이하로 남긴답니다. 돈을 모아놓지 않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서 다 쓴답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답니다. 놀랐습니다. 그런 용기와 확신이 어디서 났을까? 다 지출해도 다음 해를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 말입니다.

다 지출하는 것은 바보짓처럼 보입니다. ‘다음 해를 살려면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다 쓰고 나면 어쩌라고. 그런 무계획적인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그런 무대책인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생한다고.’

하지만 한해의 결산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오늘 성경 말씀은 당황스럽게도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다 내놓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다 내어주는 것이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다 내놓는 것은 십자가의 어리석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 어리석은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된 사람들입니다. 1독서의 사렙타 과부와 복음의 가난한 과부의 행동은 구원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 즉 구원을 생각할 때 비로소 이해가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은 다 내놓을 수는 없어도 언젠가는 다 내놔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새로운 생명이,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연습이 필요합니다. 내 놓는 연습 말입니다.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다 내어주는 자연의 섭리를 보면서 연습해 봅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2015년 11월 8일>

▥ 대구대교구 이영동 치릴로 신부
  |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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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자랑

어느 조그마한 음식점에서 일손이 부족하여 도우미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을 구하는데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었습니다. A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정해진 일을 하였지만, 그 외의 일은 본인의 일이 아니라 생각하여 그냥 시간을 보내는 유형입니다. B는 시간과 하는 일은 A와 같았지만 손님이 없을 때, 식당 내부의 눈에 거슬리는 것과 주방의 일도 도우고 주인이 시키지 않은 일까지 하곤 하였습니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에게 임금은 똑같이 주지만 둘 중 어떤 사람이 가게에 남아서 자기 일을 도와주기를 원하겠습니까? 혹 다른 사람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누구를 보내고 누구와 함께 일하고 싶겠습니까? 요즘 시대에 B와 같은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겠으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자기에게 향하는 사랑을 자기가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살면서 만남도 있고 헤어짐도 있습니다. 생각해 볼 문제는 헤어졌을 때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오히려 떠난 것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경우는 떠난 사람의 모습, 인성, 배려 등 타인에 대한 생각이 많고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경우는 타인에게 불편함만 주었기에 떠남이 고맙게 느껴지리라 생각됩니다. 결국 내 모습 속에 내가 사랑 받을 수 있도록 행동하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낼 때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물질주의, 개인주의 등 자기중심적인 세상이 되다보니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과연 올바른 모습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를 두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그 모습이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게 됨을 가르쳐 주십니다. 타인을 인정해 주어야 나 자신도 인정받는 모습이 될 터인데, ‘나만을 위해’, ‘내 것을 위해’라는 식의 모습은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모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갈 터인데 말입니다.

평신도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즐겨 부르는 성가 중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보내셨는데 사랑받을 수 있도록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힘듦이 나를 영광스럽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한번 살아 봅시다

▦ 대구대교구 한재상 요한 신부 : 2018년 11월 11일
  |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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