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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성서 주간)]독서와 복음
조회수 | 845
작성일 | 12.11.24
▥ 미할리 문가치의 <빌라도 앞에 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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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이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3-14

13 내가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께서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셨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5ㄱㄷ-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5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 6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7 보십시오,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고,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33ㄴ-37

그때에 빌라도는 예수님께 33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물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 하고 되물으셨다.
35 “나야 유다인이 아니잖소?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긴 것이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 하고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36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37 빌라도가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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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인 1970년대, 많은 이들이 ‘금관의 예수’라는 노래를 좋아하며 불렀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 중 일부는 이렇습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텅 빈 얼굴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 우리와 함께하소서.

이 노래는 예수님의 모습을 왜곡한 기득권층을 비판한 노래입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사셨던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을 복원시키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금관을 쓰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와 예루살렘의 기득권층으로 말미암아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만일 가난한 사람들의 굶주림을 외면하고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들의 외침에 귀를 막는다면 예수님께 금관을 씌워 드리는 것입니다. 부귀와 명예를 추구하며 권력에 기대어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한 몸을 던지신 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분을 우리의 임금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임금은 가난하게 사신 임금, 남을 섬기신 임금,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임금이십니다.

매일미사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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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는 권력과 힘을 가지려던 수많은 왕과 권력가들이 이룬 흥망성쇠의 역사로 채워져 있습니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몫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수단과 방법이 불의해도 역사를 주도한 인물들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해석되고 평가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 결과 권력의 희생양이 된 민초들의 삶과 억울하게 당한 소수의 역사는 왜곡되고 억압되며 멸시당해 왔습니다. 교회 역사의 어두운 시기에도 교회의 권력에 희생된 이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지구촌에는 여전히 권력의 희생양이 되는 이들이 많지만, 오늘날 민주주의를 꽃피운 나라들에서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인권 의식이 성장하고 있고, 권력의 횡포에 대한 제재와 감독은 물론 공직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시민 의식도 커 가고 있습니다. 정경 유착과 적폐 청산이라는 시대적 소명에 목마른 시민들이 이룬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도 세계사적으로 주목을 받지만, 여전히 권력의 시녀로 살아오며 잘못된 이념 논쟁의 희생양이 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교회 전례력의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선포하는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속의 역사에서는 실패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2천 년이 지난 오늘 그분의 진리의 가르침과 십자가의 구원의 의미를 깨달은 신자들의 순교와 영웅적 신앙 고백을 통하여 승리하신 왕이 되셨습니다. 권능의 상징으로 구름을 타고 오시며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시는 선언은, 세상이 완성되는 날까지 교회가 간직해야 할 중요한 복음입니다. 섬김을 받지 않고 섬기러 오신 그리스도왕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이 믿음을 잃지 않도록 서로 격려하며 살아갑시다.

▦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매일미사 2018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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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찾아와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마태 1,2) 하고 묻자 헤로데는 다른 임금이 태어난 줄 알고 두려워합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유다인들은 “우리 임금은 황제뿐이오.”(요한 19,15) 하고 말하면서, 황제에 맞서 자기가 임금이라고 자처하는 자를 풀어 주면 그는 황제의 친구가 아니라고 하면서 빌라도를 윽박지릅니다(요한 19,12 참조).

그 결과 주님께서는 ‘예수 나자렛 사람 유다인의 왕’이라는 조소 섞인 죄명과 함께 십자가에 처형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고백하는 ‘그리스도 왕’은 세상이 두려워하는 위엄과 권력을 쥐신 권세의 왕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신 연약한 평화의 임금, 자비와 사랑과 봉사의 임금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인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축으로 하여 종말, 곧 완성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음을 고백하고 묵시록의 말씀대로 “처음과 마지막”이신 그분의 왕권을 전례 안에서 고백합니다. 1980년대 초반 보좌 신부 시절, 어느 자매님이 저에게 편지와 함께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산문시를 보내 주셨습니다. 어느 분의 글인지 밝힐 수가 없어 안타깝습니다만, 그대로 인용하면서 오늘의 묵상 글로 대신하겠습니다.

“예수는 가난 속에서 살다가 죽었다. 그에게는 자기 소유의 집도, 보험 증서도, 사회 보장 제도 카드도, 은퇴 계획도 없었다. 그의 재산은 무엇인가? 그는 간단한 옷만 남겼다. 그리고 십자가 밑에서 군인들은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제비를 뽑았다. 그러므로 그는 새로운 상처들을 제외하고는 빈손으로 죽었다. 재산과 후계자는 남기지 않았다.

예수는 결혼하지 않았다. 그는 일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그래서 그는 아내 또는 자녀의 격려도 없이 짧으면서도 긴 세월을 보냈다. 우리는 자녀를 보물처럼 소중히 다루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아들 또는 딸의 아빠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쓸쓸히 죽었다. 자녀 없이…….

그러나 예수는 그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죽도록 사랑했다. 그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죽도록 신뢰했다. 그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죽도록 봉사했다. 예수에게는 하느님이 모든 것, 전부였다. 그런데 나는 어떠한가?”

▦ 매일미사 2015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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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당신 나라가 이 세상 것이 아니라면, ‘세상의 개념’으로 그분을 생각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러므로 왕이신 예수님은 ‘주인이신 예수님’으로 고쳐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의 주인이신지요?

시간과 운명의 주인이십니다. 시간은 어디로 흐르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주인이신 그분만이 아십니다. 우리의 운명도 어디로 향하는지 모릅니다. 주님만이 아실 일입니다. 그러기에 기도하며 맡겨야 합니다. 교회 달력으로 한 해를 마감하는 오늘, 우리는 공적으로 이 믿음을 드러냅니다. 그분을 시간과 운명의 주인으로 다시 고백합니다. 오늘은 그런 날입니다.

사람들은 불안을 느낍니다. 고통스러운 날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시련을 누군가 막아 준다면 아무라도 그를 의지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부적을 지니고 굿을 하며 용하다는 사람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불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이러한 ‘방황’에 대한 교회의 ‘공적인 답변’입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희로애락’을 주재하신다는 가르침입니다. 주님께서 미래를 책임지고 계심을 잊고 있었다면, 오늘은 믿는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운명을 지켜 주고 계심을 느끼지 못했다면, 오늘은 느낄 수 있게 해 주시라고 청해야 합니다.

▦ 매일미사 2009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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