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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권력보다 사랑을 택한 그리스도
조회수 | 1,003
작성일 | 12.11.24
교회 달력의 마지막 주일이며,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다. 오늘 복음에서 빌라도는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하고 묻는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여준 메시아로서 왕과, 군중과 바리사이 그리고 빌라도가 바라보는 왕으로서의 메시아는 매우 다르다. 빌라도가 말하는 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린 정치와 사회, 더 나아가 국가의 해방자 메시아를 뜻한다.
 
#세상이 바라는 권력의 왕

빌라도는 백성이 로마의 통치에 권태를 느끼고 경멸하는 것에 부담이 있었다. 로마제국 정치의 본토인 로마에 진출하려는 목표 때문이다. 변방 팔레스타인에서 생기는 문제가 출세의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빌라도는 예수님과 백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세상의 힘을 향해 가는 빌라도의 심정은 불안한 아이와 같다. 일본 가톨릭 작가 엔도 슈샤쿠가 쓴 소설 「사해부근에서」에 빌라도와 예수님 대화가 나온다.
 
빌라도는 침묵 속에서 사나이(예수)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로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네." 빌라도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네. 그대를 따라다니던 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 사나이는 계속 빌라도를 바라보기만 했다. "민중이란 그런 거지. 그런데 왜 돌아왔나? 왜 나를 말려들게 하나? 나는 편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리아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나는 한 사람의 인생을 스쳐간다고 말했습니다."(예수)
"그렇다면 내 인생도 스쳐갈 셈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내 인생에도 그대의 흔적을 남길 셈인가?"
 
세이아누스의 저택에서 마룻바닥을 닦고 있는 꿈속의 어머니, 그것이 또 망상처럼 떠올랐다(빌라도는 하층계급 출신으로 유다 총독까지 됐지만, 신분 유지를 위해 어머니를 모른 체했다. 어머니는 세이아누스 저택의 청소부로 살다 죽었다).
 
"나는 그대를 잊을 걸세." 그는 사나이에게가 아니라 마음속에 떠오른 어머니 얼굴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사나이 몸이 조금 움직였다. 그리고 나직하지만 강한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내가 한 번 그 인생을 스쳐가면 그 사람은 나를 잊지 못하게 됩니다." "왜지?" "내가 그 사람을 언제까지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창밖에서 바라빠를 살리고 예수를 죽이라는 군중의 고함이 합창처럼 들려왔다.
 
#종으로 사신 사랑의 왕

주님은 자신의 왕국이 이 세상의 가치를 뛰어넘는 천상적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나라는 하느님 나라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진리를 증거하고자 태어나셨고 세상에 오셨다(요한1,1-18). 그 왕국은 진리가 영원히 실현되는, 예수님이 성령 안에서 십자가 위에서 피와 물을 쏟으며 진실되게 증거하는 나라다.

결정적으로 주님이 보여주신 메시아의 모습은 겸손한 왕이다. 왕이지만 종으로 살아가신 메시아인 것이다. 오늘의 교회는 종으로서 사신 주님의 왕직을 증거하는가,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는 어떤가 돌아봐야 한다.

십자가 위의 선한 도둑의 모습을 기억하자.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 42). 진심으로 참회하는 사람은 주님의 낙원에 초대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교회는 사랑보다는 빌라도처럼 권력이나 힘에 치우치는 것은 아닐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느님이 되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지배하기가 더 쉬울지 모른다.

선한 도둑의 믿음과 희망은 예수께서 부활이고 생명이요, 오직 주님만이 그것을 실현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님의 나라는 십자가로 지배되는 왕국이다. 그 왕국이 바로 여기 십자가에 있다.

대전교구 곽승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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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편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시입니다. 미사 때나 전례 거행에서 자주 불리는 성가 50번에서 54번까지의 성가도 이 시편을 가지고 작곡된 것입니다. 서구에서는 종종 축하연에서 이 시편이 낭송되었다고도 합니다.

한번은 당대 최고의 배우가 미국 뉴욕 카네기 홀에서 공연할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공연이 끝난 뒤 한 노신사가 배우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당신의 그 멋진 목소리를 시편 23편을 한 번 들려줄 수 없습니까?” 배우는 곧 시편 23편을 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였습니다. 배우가 낭송을 마치자 우레와 같은 큰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잠시 후 배우는 노신사에게 똑같이 시편 23편을 낭송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노신사는 지그시 눈을 감고 천천히 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 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 노신사가 낭송을 마치자 이번에는 극장에 침묵이 흘렀습니다. 알고 보니 사람들이 저마다 눈물을 닦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윽고 그 침묵을 깨며 배우가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시편 23편을 알았지만, 저분은 시편 23편의 목자를 알고 계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착한 목자를 알고 계십니까? 누가 여러분의 인생을 이끌고 있습니까? 우리들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축일’을 지내며 주님을 임금으로 그리고 우리의 주님이며 목자로 고백하였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스스로 당신을 ‘착한 목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요한 10,11). 우리는 이러한 주님을 항상 우리와 함께 현존하시며 우리의 삶을 이끌어 주시는 목자로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서를 머리로만 또는 입으로만 읽지 말고 마음으로 읽어, 성서의 말씀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음성으로 알아듣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때만이 우리가 읽은 성서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이끄는 힘 있는 말씀으로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일 것입니다.

한 주간 마음으로 성서를 읽어 참된 목자로서 우리에게 빛을 주시며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을 체험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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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교구 민병섭 신부 : 2018년 11월 25일
  |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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