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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물질적인 자선보다 정신적인 자선을
조회수 | 110
작성일 | 17.12.14
[대전] 물질적인 자선보다 정신적인 자선을

저는 지난 금요일(2011. 12. 9) 저녁, ‘다문화를 사랑하는 모임‘에서 주관한 ‘서산 다문화가족과 함께하는 어울림 자선공연’에 출연하여 만돌린을 연주했습니다. 충남웨딩홀에서 있었는데 행사는 오후 5시부터 제1부 바자회(저녁식사를 돈 내고 사먹는 것)를 시작으로 서산시장, 변웅전 국회의원 등 많은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개회식을 했고 제2부 가수 하이런, 가수 추가열 등이 출연하는 가운데 저도 만돌린을 연주했습니다. 이주 여성들의 부채춤도 있었고 프로야구 원년 김인식 감독과 윤동균 선수의 사인볼 증정식도 있었습니다. 저는 엘콘도르파사, 필리핀 대나무댄스, 서부영화주제가 메들리, 그리고 끝으로 스크린으로 가사를 비추게 해서 다같이 노래를 부기로 동요 여러 곡을 메들리로 연주하였습니다. 모두 다 함께 노래 불러주어 흐뭇했습니다.

식사 인원은 거의 1000여명 정도 되었습니다. 다문화가정이란 한국인이 외국인과 결혼해서 사는 가정을 말합니다. 대부분 월남, 필리핀 등 동남아 쪽이라고 합니다. 서산에 700여 명이 있다고 하네요. 이주 여성들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아보였습니다. 11개국 나라 여성들의 민속 의상 패션쇼가 끝나고 사회자가 어느 여성에게 “한국 어떠냐?”고 물으니까 “한국 살기 좋아요. 너무너무 감사해요.”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와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되었으니 우리 가족으로 품어주었으면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 사람들을 무시하고 구박하고 천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자선 주일을 기해 그런 생각을 바꾸었으면 합니다. 물질적인 자선보다 정신적인 자선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1984년, 해마다 대림 제3주일을 '자선 주일'로 지내기로 정하였습니다. 자선은 사랑을 실천하는 한 가지 방법이며,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내주신 성체성사의 나눔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베푼 물 한 잔도 당신께 베푼 것으로 여기십니다(마태 25,38-40 참조). 자선을 베풀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 대전교구 방윤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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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내비게이션 같은 사람

“내비게이션”이라고 하는 장치가 있습니다. 운전을 할 때,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알려주는 기기입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빠른 길을 알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미끄럼 지역이나 사고 다발 지역과 같은 위험한 곳을 미리미리 알려주어서 운전자가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신속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편리한 기계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에서도 내비게이션과 같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세례자 요한이지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셨을 때에, 예수님께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지내면서(마태 3,4) 사람들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마르 1,4)를 선포하였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을 말과 행동으로써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대림시기를 보내면서 교회는 통회와 보속의 삶을 살아가라고 권고합니다. 우리는 요한의 세례를 통해 통회라는 가르침을 배우고, 요한의 금욕적인 삶을 통해 보속하라는 가르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금욕적인 삶을 살면서 생기는 재화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림3주일이자 “자선주일”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세례자 요한의 가르침은 참으로 시기적절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의 삶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덕목이 있는데 바로 “겸손”입니다. 사람들은 요한의 모습을 보고, 그가 그리스도라고 오해하여 물었습니다.“당신은 누구요?”(요한 1,19) 하지만 요한의 관심사는 오직 예수님께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대답도“나는 요한이다.”라고 하지 않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한 1,23)라고 말하며,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까지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그는 겸손하게, 오직 예수님을 전하는 데에만 전력을 쏟는 사람이었습니다.

대림시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대림 3주일입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세례자 요한의 “안내”를 잘 따라갔으면 좋겠습니다. 내비게이션이 빠르고 안전한 길을 알려주는 것처럼,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께로 가는 빠르고 안전한 길을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 대전교구 김진철 베드로 신부
  |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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