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나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1 47.6%
[광주] '항상 기뻐하십시오'
조회수 | 129
작성일 | 17.12.14
[광주] '항상 기뻐하십시오'

오늘 성서의 주제는 '기쁨'입니다.

해마다 교회는 사순절과 대림절이라는 전례시기 안에서 회개를 선포하며 백성들로 하여금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만이 주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요 또한 그 길만이 주님의 부활을 자신의 부활로 체험하는 올바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교회가 통회 속에서 항상 울고만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사순 제 4주일과 대림 제 3주일은 오히려 기쁨을 묵상하며 대축일을 준비하게 합니다.

“야훼를 생각하면 나의 마음은 기쁘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고달픈 처지에서도 주님을 생각하면 온 몸에 힘이 생기고 기쁨이 솟구칩니다. 1독서에서 외치는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줄 메시아가 오시니 하느님께 감사와 기쁨의 찬미가를 드리는 것입니다. 고달픈 이들에게 주님보다 더 기쁨을 줄 자가 세상 천지에 누가 있겠습니까?

특히 믿음을 가진 우리들은 누구보다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용기를 잃어서는 안되며 혹 자기 죄로 인생이 크게 실패했다 해도 생명이 살아 있다면 그는 주님 안에서 희망이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하느님 사랑의 한복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 한 분이 당신들 가운데 서 계십니다."하고 외쳤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주님은 늘 우리 가운데 분명히 서 계십니다. 따뜻한 아버지로서 사랑과 자비를 가지고 서 계시며, 강한 주님으로서 지혜와 힘을 가지고 서 계십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믿는 사람하고 믿지 않는 사람하고는 은총의 차이가 다르게 됩니다.

같은 업종에서 서로 장사를 하는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아주 대조적이었습니다. 한쪽은 식구도 많고 병자도 있으며 늙으신 부모도 모시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바람 잘 날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항상 싱글벙글이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좋으냐?"하고 물으면 그는 늘 같은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니 좋지요." 저는 그 친구의 기쁨을 바라보면서 제 자신을 반성할 때가 많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식구도 적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늘 짜증이요 불평과 불만이 많았습니다. 장사가 잘 되는데도 부부간에 화목하지가 않으며 술만 마셨다 하면 집안에 난리가 납니다. “도대체 무엇이 불만이냐?"하고 물으면 그 친구도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세상이 뜻대로 안됩니다." 맞는 말입니다. 주님이 함께 동행하심을 모르니 세상이 뜻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삭막하고 고달픕니다. 평생 슬프게 방황하게 됩니다.

오늘 둘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항상 기뻐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보여 주시는 뜻이라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기쁘게 살지 못 하느냐? 그리고 왜 많은 사람들이 감사를 드리지 못하고 불평 속에 서 사느냐?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없는 인생은 사막에 오아시스가 없는 인생입니다. 하느님께 자기를 열고 대화하지 않는 인생은 뜨거운 여름에 겨울옷 입고 땀을 흘리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기도가 없으면 세상을 거꾸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특히 '자선주일'입니다.

참 사랑은 받는 것보다 베푸는 데에 있습니다. 세상에 남에게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 받지 않아도 될 완전한 부자도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 안에서는 그렇습니다. 베푸는 사람은 늘 채워지게 되고 자기 것이라고 늘 움켜 만 쥐는 사람은 항상 부족하여 불안하게 됩니다. 나누지 못하는 사람, 이 사람들은 재물이라는 감옥에 갇힌 자들입니다. 억만 금을 가지고 있어도 그는 묶여진 존재입니다.

참 기쁨은 베푸는 데 있습니다. 남을 기쁘게 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비로소 기쁠 것입니다. 없는 자들에게 나눠주고 불쌍한 사람들을 찾아보십시오. 참 기쁨이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특히 기도를 해 보십시오. 하느님을 통해서 느끼는 기쁨과 그리고 무한한 감사가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해 줄 것입니다. “나의 하느님 생각만 하면 가슴이 뛴다."

▥ 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451 47.6%
[광주]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말하며 예수님과 자신의 관계를 알려줍니다. 또한 오늘 복음의 초반부에서 요한 복음사가는 세례자 요한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여기서 세례자 요한이 누구인지 드러납니다. 빛은 아니지만, 빛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례자 요한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빛은 아니지만 빛을 증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림 3주일인 오늘은 자선 주일입니다. 교회는 그동안 절약과 근신의 결과물을 이웃과 나누도록 촉구하며 대림 3주일을 자선 주일로 지냅니다. 왜 교회는 자선 주일을 지낼까요? 먼저 자선 慈善이란 말의 뜻은 남을 불쌍히 여겨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비슷한 말로 적선 積善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선기금, 자선냄비, 자선단체, 자선병원, 자선사업이라는 말은 사용하지만, 적선기금, 적선냄비, 적선단체, 적선병원, 적선사업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자선과 적선은 비슷하지만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전을 보면 자선(慈善)의 ‘자 慈’는 ‘사랑’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또한 ‘어머니’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한편 불교에서는 ‘자기가 받는 즐거움을 다른 이들도 받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기에 자선은 ‘남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저 착한 일만 한다고 해서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자선은 흔히 생각하듯 물질적인 재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말을 들어주거나 손을 잡아주는 것이, 또 때로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자선입니다. 물론 물질적 여유가 있다면 그 재화를 어려운 이들, 필요한 이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내 삶을 통해 그분의 사랑을 전하며, 그 사랑을 드러내어 이웃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랑을 충실하게 삶으로 선포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자신의 영성생활에 충실하면서 사랑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 광주대교구 변찬석 안셀모 신부
  | 12.14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대전] 크리스찬 생활의 리듬  [1]
!   [대구] 이 시대의 희망, 사목자들  [1]
!   [군종] 생명수 
!   [원주] 쉼 보다 더 소중한 것 
!   [수도회] 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착한 목자  [4]
!   [전주] “하느님 사랑 안에서 참된 휴식을” | 열심히 일한 사람들  [1]
!   [춘천] 살아온 모든 날이 은총입니다.  [2]
!   [부산] 예수님에게 하느님은 인간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3]
!   [인천] “야훼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3]
!   [의정부] 우리는 교회의 몸짓입니다.  [2]
!   [안동] 한적한 곳을 찾으신 예수님  [2]
!   [수원] 惻隱之心 (측은지심)  [4]
!   [마산] 쉴 줄 모르는 사람은 비 복음적이다. (휴가자를 위한 강론)  [2]
!   [서울] 주님과의 일치  [3]
!   [대전] 물병 하나와 바랑 하나면 되지.  [1]
671   (녹) 연중 제16주일 독서와 복음 [쉬어라--목자없는 양같이]  [2] 1529
670   [전주] 파견  [4] 1985
669   [원주] 그래서 하느님은 농부를 만드셨다  61
668   [광주] 복음 선포를 잘하고 있는가?  [1] 1498
667   [수도회] 겸손하고 소박한 영혼들  1814
666   [수원] 복음선포의 사명  [3] 2114
665   [부산]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  [7] 2434
664   [인천] 예수님을 잊지말자  [5] 2271
663   [군종] 바다와 트로트  [1] 1973
662   [서울]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5] 2245
661   [의정부] 무얼 그리 재십니까?  [4] 2233
660   [춘천] 소명의 삶 살 때 은총 커진다  [2] 1813
659   [안동]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  [1] 1926
658   [마산] ‘소유’와 ‘무소유’  [2] 1880
657   [대구] 복음선포자의 자세  [3] 2533
656   (녹) 연중 제15주일 독서와 복음 [열두 제자를 파견]  [2] 1515
655   [춘천] 지금 내가 어떻게  1576
654   [군종] 그리고 다시 12년이 지나면  1513
653   [수원] 약한 자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권능  [1] 1771
652   [의정부]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  1743
651   [대전] 교회의 자랑스러운 약점  1410
650   [부산] 하느님에 대한 선입견도 있습니다.(?)  [1] 1702
649   [전주]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균형잡힌 마음을 : 불편심(不偏心)  [1] 2142
648   [수도회]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짝사랑  [1] 1439
647   [서울]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  [2] 1879
1 [2][3][4][5][6][7][8][9][10]..[18]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8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