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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소통과 신뢰의 촉진자인 교회
조회수 | 80
작성일 | 18.02.02
[원주] 소통과 신뢰의 촉진자인 교회

많은 이들의 한숨 소리가 깊어가고 있습니다. '사는 게 고역이요 고통의 밤을 새며 날품팔이 같은 나날' 을 지내야 하는 삶들이 늘어갑니다. 경기지수가 사상 최악이며 장기화된다고 합니다. 경제 대통령, 광우병 파동, 촛불, 미네르바의 구속에 이어 터진 용산 철거민의 참사 사건. 많은 사람들이 소통과 신뢰의 부재를 지적합니다. 소통의 길이 막히고 불신의 장벽이 높습니다. 이 불신과 불통은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중병이라 하겠습니다.

끼리끼리의 소통과 신뢰는 어디든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와 가난한 자, 힘 있는 자와 없는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사이에 소통은 없습니다. 장벽이 너무 높습니다. 같은 사회 안에서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같은 말을 사용하지만 그 말의 의미가 서로 다르게 쓰이고 다르게 알아듣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소통은 더 힘들고 불신은 쌓여 가는 듯 합니다. 소통이 막히면 소통하고자 하는 몸짓은 더 격렬해집니다. 그것은 병을 치유하고자 하는 몸의 당연한 일입니다.

약한 자는 할말이 많은데 들어 주는 사람, 듣고자 하는 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고픈 말이 왜곡되고 억압당합니다. 말을 통제하고 억누르면 참말은 사라지고 꼬이고 뒤틀린 말, 빈말만 난무합니다. 불통과 불신의 병은 더 깊어집니다. 소통과 신뢰는 관계의 문제이고 쌍방의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고 작은 병을 앓아 본 경험이 있습니다. 병을 앓게 되면 활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일상생활에 많은 제약을 받습니다. 사회에서도 활동과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지속되면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병중에 있는 사람은 사람들과 만남에도 제약을 받아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단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병이 치유되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자리와 역할과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치유의 중요한 면일 것입니다.

복음에서 치유자이신 예수님이 열병으로 앓아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어'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병이 나은 베드로의 장모는 예수님과 일행들을 위해 시중을 들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병이 치유되었다는 것은 그 가족 안에서 그녀의 자리가 회복되었고 그 자리에서 그녀의 역할을 되찾고 그 역할을 계속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치유 받아야 할 우리! 치유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어 우리가 앓고 있는 불신과 불통의 병을 치유해 주셔서 교회인 우리가 본래의 자리에서 본래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우리가 불신과 불통의 세상에서 소통과 신뢰의 촉진자로서 봉사하는 교회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 원주교구 김하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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