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나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2 29.6%
[원주] 소통과 신뢰의 촉진자인 교회
조회수 | 97
작성일 | 18.02.02
[원주] 소통과 신뢰의 촉진자인 교회

많은 이들의 한숨 소리가 깊어가고 있습니다. '사는 게 고역이요 고통의 밤을 새며 날품팔이 같은 나날' 을 지내야 하는 삶들이 늘어갑니다. 경기지수가 사상 최악이며 장기화된다고 합니다. 경제 대통령, 광우병 파동, 촛불, 미네르바의 구속에 이어 터진 용산 철거민의 참사 사건. 많은 사람들이 소통과 신뢰의 부재를 지적합니다. 소통의 길이 막히고 불신의 장벽이 높습니다. 이 불신과 불통은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중병이라 하겠습니다.

끼리끼리의 소통과 신뢰는 어디든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와 가난한 자, 힘 있는 자와 없는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사이에 소통은 없습니다. 장벽이 너무 높습니다. 같은 사회 안에서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같은 말을 사용하지만 그 말의 의미가 서로 다르게 쓰이고 다르게 알아듣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소통은 더 힘들고 불신은 쌓여 가는 듯 합니다. 소통이 막히면 소통하고자 하는 몸짓은 더 격렬해집니다. 그것은 병을 치유하고자 하는 몸의 당연한 일입니다.

약한 자는 할말이 많은데 들어 주는 사람, 듣고자 하는 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고픈 말이 왜곡되고 억압당합니다. 말을 통제하고 억누르면 참말은 사라지고 꼬이고 뒤틀린 말, 빈말만 난무합니다. 불통과 불신의 병은 더 깊어집니다. 소통과 신뢰는 관계의 문제이고 쌍방의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고 작은 병을 앓아 본 경험이 있습니다. 병을 앓게 되면 활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일상생활에 많은 제약을 받습니다. 사회에서도 활동과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지속되면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병중에 있는 사람은 사람들과 만남에도 제약을 받아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단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병이 치유되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자리와 역할과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치유의 중요한 면일 것입니다.

복음에서 치유자이신 예수님이 열병으로 앓아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어'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병이 나은 베드로의 장모는 예수님과 일행들을 위해 시중을 들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병이 치유되었다는 것은 그 가족 안에서 그녀의 자리가 회복되었고 그 자리에서 그녀의 역할을 되찾고 그 역할을 계속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치유 받아야 할 우리! 치유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어 우리가 앓고 있는 불신과 불통의 병을 치유해 주셔서 교회인 우리가 본래의 자리에서 본래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우리가 불신과 불통의 세상에서 소통과 신뢰의 촉진자로서 봉사하는 교회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 원주교구 김하수 신부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1]
!   [수도회] 사랑의 실체  [2]
!   [전주] 사랑은 우리 삶의 본질  [3]
!   [수원] 형제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  [2]
708   [대전] 나도 너희를 사랑했다  1207
707   [청주] 묵상 : 꽃이 진다고  52
706   [마산] 주님의 사랑 안에서......  [3] 1894
705   [부산] 예수님은 하느님이 어떤 사랑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5] 2443
704   [안동] 벗(친구)이라 부르겠다  [3] 2454
703   [대구]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2] 2400
702   [인천] 짝사랑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누가…?  [6] 2266
701   [서울]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12)  [5] 2502
700   [의정부] 주님, 당신을 사랑하러 왔습니다.  [1] 54
699   [춘천] 서로 사랑하여라  [3] 2580
698   [군종]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  [1] 63
697   [원주]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 58
696   (백) 부활 제6주일 독서와 복음  [3] 1804
695   [수도회] 주님과 제2의 인생을  [3] 2113
694   [전주] 더 큰 불행은 보고도 믿지 않는 것  [2] 2063
693   [청주] 토마의 불신앙  [1] 1992
692   [대전] 증거의 삶  [1] 1746
691   [의정부] 당신이 기뻐하시니 우리도 기뻐요.  [1] 1965
690   [수원]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 2164
689   [인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3] 2232
688   [서울]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2] 2296
687   [대구]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1] 2017
686   [부산] 교회에는 높은 사람도 없고 낮은 사람도 없습니다.  [6] 2176
685   [마산] 부활신앙은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한다.  [3] 2163
684   [안동] 의심과 평화  [2] 2101
683   [춘천] 차선 지키기  [2] 100
682   [원주] 남을 위해 내 몸을 쓰게 하려고  [1] 2230
681   [군종] 보이는 것에 대한 더한 믿음  [1] 66
680   자비주일과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님(상본)  [2] 2285
679   (백)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2] 1687
678   [수도회] 매일 새로운 얼굴, 새로운 마음으로  [3] 2035
677   [수원] 변모의 기쁨과 빛을 향하고 있는 사순 시기  [3] 2236
676   [인천] 주님을 따라 ‘산으로’ 올라갑시다  [6] 2095
675   [서울] 수난을 앞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4] 2512
674   [대구] 아브라함의 시련  [2] 2271
673   [마산]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3] 2649
1 [2][3][4][5][6][7][8][9][10]..[18]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8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