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나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1 86.8%
[청주] 복음 선포의 기쁨
조회수 | 98
작성일 | 18.02.02
[청주] 복음 선포의 기쁨

새신부 때에 참으로 즐겁게 시작했던 일이 예비자 교리였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공부를 묵상과 기도를 통해 저의 언어와 방법으로 승화시켜 전하면서 복음이 내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되었고 사제와 복음 선포자로서의 큰 기쁨을 얻게 되었으며 이러한 경험은 기쁘고 즐거운 제 사제 생활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고 병자들을 고쳐주셨으며, 마귀를 쫓아내셨고 새벽에 기도의 시간을 가지셨으며, 쉴 틈도 없이 다른 고장으로 떠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하루일과였으며 복음 선포의 사명과 기쁨이 예수님의 발걸음을 재촉하였습니다. 이렇게 복음 선포의 기쁨을 간직하셨던 예수님의 하루하루가 쌓여 이루셨던 죽음과 부활의 커다란 복음의 기쁨을 오늘날 우리가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던 사도 바오로는 복음 선포의 기쁨으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하여 기쁘게 순교를 맞이할 수 있었고, 그의 복음 선포의 기쁨이 오늘날 2천년 가톨릭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욥이 고백했던 모든 상황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인생은 땅위에서 고역이요, 목숨은 한탄 입김일 뿐이다”라는 욥의 한숨에서 우리는 오늘날 수없이 반복되는 불의와 폭력, 사건과 사고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한편으로 복음을 선포해야하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며, 하느님을 찾는 많은 사람의 목마름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교우들이 복음 선포의 기쁨을 가득 누리시길 바라며 복음 선포의 기쁨이 여러분의 인생을 이끌어 가시기를 빕니다.

“우리가 영성 생활에서 성장하기를 바라면 끊임없이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이들의 선익을 추구하면서 또 그들의 행복을 바라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만이 선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열린 마음이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복음의 기쁨 272항).”

▦ 청주교구 조병환 세례자 요한 신부
451 86.8%
[청주] 인기에 영합하지마라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살리고자 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가운데 은총을 입으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주관이 뚜렷하고, 소신 있는 사람, 그러나 백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리고 그들을 보듬을 수 있는 능력 있는 지도자를 원합니다. 그저 소신을 편다고 백성의 소리는 귓전으로 흘려 버리고 똥 고집을 편다면 모두가 피곤합니다. 그러나 위로 올라가면 자기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해야만 능력이 있는 줄 착각하나 봅니다. 요즘 정부와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자기가 최고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국민이 지칩니다. 우리 신부들도 그렇게 할 때가 있습니다. 본당 신부나 책임자가 되면 그야말로 왕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신자들은 그저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또 신자들이 부추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삶의 방식은 그것과는 분명 다릅니다.

예수님이 외딴 곳으로 가서 한참 기도하고 계실 때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께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마르1,37)하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본당 신부가 마음 먹고 기도 좀 하려는 데 사목위원이 와서 ‘신부님 오늘 생신이신데 자리를 좀 마련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이웃 고을 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마르 1,39). 예수님께서는 세상일은 제쳐두고 하느님의 일을 챙기십니다.

그런데 저는 ‘생일은 무슨 생일’ 하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그것을 즐깁니다. 기도는 뒤로하고 소주 한잔 걸치는 것을 우선 선택합니다. 그러고는 주님을 위해 큰 일을 한양 어깨에 힘을 줍니다. 신자들이 식사대접을 하겠다고 한다든지 술 한잔 하지고 하면 인정받고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고 있다고 제자들이 한 말에는 한편으로 유명해지라는 생각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인기가 좋으니 인기관리 하라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찾기보다 오히려 야망을 부추기는 그들의 생각을 거부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명성이 아니라 자신이 이루어야 할 하느님 아버지의 계획, 즉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캄캄할 때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신 까닭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심으로써 당신을 챙기지 않고 당신 백성을 보듬을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늘 간직하셨습니다. 기도함으로써 하느님과 하나가 되셨고 따라서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뜻에 맞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항상 일깨우셨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삶이 곧 우리의 삶이기를 기도해야 하고 또 행함으로써 그분과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기에 영합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뜻을 행했듯이 우리도 이런 저런 일에 휘둘리지 말고 주님의 뜻을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적도 방향도 없이 방황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한곳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때를 알고 일어서서 모두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늘 일치해야 가능함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위를 걸어가신 기적을 보여 주시기 전에도 산 위에 올라가 기도하셨고(마르6,46), 수난을 앞두고 게쎄마니에서 공포와 번민에 싸여서 간절히 기도하며 아버지의 뜻을 찾으셨습니다(마르14,32-39). 그리고 제자들을 불러 사도로 삼을 때에도 먼저 산에 들어가 밤을 새워 하느님께 기도하셨습니다(루가6,12).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한적한 곳을 찾아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1코린 9,16. 19.22). 그야말로 바오로는 예수님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해 다른 고을을 찾으셨듯이 바오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스스로 종이 되고, 약한 사람이 되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이 또한 기도하며 자신의 소명을 확인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기도하시며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찾으신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가운데 앞 길을 예수님의 길로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당신이 걸으신 길을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자꾸 멈칫거리고 있습니다. 하오니 이끌어 주십시오. 저희들의 앞길을 비추어 주십시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언젠가 드렸던 말씀입니다. 스승님이 평생 아끼던 책 한 권이 있었습니다. 스승님은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방문을 꼭 걸어 잠근 채 그 책을 읽곤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책의 내용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스승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제일 먼저 그 책을 꺼내 봤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책엔 이렇게 단 한 줄만 씌어 있었습니다.

“껍데기와 알맹이를 구별하라”

주님 앞에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껍데기인지 알맹이인지 살펴봐야겠습니다. 알맹이를 만드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 02.02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수도회] 매일 새로운 얼굴, 새로운 마음으로  [3]
!   [수원] 변모의 기쁨과 빛을 향하고 있는 사순 시기  [3]
!   [인천] 주님을 따라 ‘산으로’ 올라갑시다  [6]
!   [서울] 수난을 앞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4]
!   [대구] 아브라함의 시련  [2]
!   [마산]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3]
!   [안동] 길 떠남  [3]
!   [부산] 예수님은 군림하지 않고 섬기는 분이었습니다.  [5]
698   [전주] 높은 산에 오르다 : 십자가를 향하여  [1] 2115
697   [광주] 받으려는 마음과 주려는 마음  39
696   [의정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1] 2264
695   [원주] 수주대토(守株待兎)  37
694   [군종] 내 얼굴은?  [1] 36
693   [대전]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3] 2139
692   [청주] 본래의 아름다움을 지켜라  [2] 48
691   (자) 사순 제2주일 독서와 복음  [2] 1528
690   [수도회]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3] 1970
689   [수원] 예수님의 전도행적과 메시아의 비밀  [3] 2084
688   [인천] 예수님의 선택 기준  [3] 2039
687   [서울]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나병 환자와 같은 깊은 믿음과 용기이다  [4] 2337
686   [마산]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3] 2247
685   [안동] 깨끗하게 되어라  [4] 2336
684   [부산] 하느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모른다.  [4] 2110
683   [대구] 첫 만남의 결실  [3] 2048
682   [광주] 나병환자의 용기와 믿음  [1] 41
681   [전주] 치유를 청하고자 예수님께 다가온 나병 환자의 용기와 믿음입니다.  [3] 2312
680   [청주] 나병환자를 치유하신 예수님  [1] 18
679   [대전] 예수의 메시아적 사제 직분이 드러나는 나병 치유  [1] 2133
678   [군종] 나병환자의 용기와 믿음  [1] 17
677   [춘천] 동감(同感)·공감(共感)  17
676   [원주] 아! 아름다운 만남이여  18
675   [의정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 2184
674   (녹) 연중 제6주일 독서와 복음  [1] 1634
673   [수도회] 또 다시 길을 떠나며  [3] 2115
672   [춘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2] 2261
671   [전주] 기도와 삶 : “왜 걱정하세요? 기도할 수 있는데”  [2] 2281
670   [안동] 관심과 사랑이 이루는 기적  [3] 2157
669   [대구] 기적  [3] 1844
668   [서울] 기도 안에서 병자를 치유하시는 예수님  [3] 2348
667   [수원] 예수님의 복음화 사명 : 권위있는 가르침  [2] 2177
1 [2][3][4][5][6][7][8][9][10]..[18]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8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