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나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0 16.8%
[청주] 복음 선포의 기쁨
조회수 | 132
작성일 | 18.02.02
[청주] 복음 선포의 기쁨

새신부 때에 참으로 즐겁게 시작했던 일이 예비자 교리였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공부를 묵상과 기도를 통해 저의 언어와 방법으로 승화시켜 전하면서 복음이 내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되었고 사제와 복음 선포자로서의 큰 기쁨을 얻게 되었으며 이러한 경험은 기쁘고 즐거운 제 사제 생활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고 병자들을 고쳐주셨으며, 마귀를 쫓아내셨고 새벽에 기도의 시간을 가지셨으며, 쉴 틈도 없이 다른 고장으로 떠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하루일과였으며 복음 선포의 사명과 기쁨이 예수님의 발걸음을 재촉하였습니다. 이렇게 복음 선포의 기쁨을 간직하셨던 예수님의 하루하루가 쌓여 이루셨던 죽음과 부활의 커다란 복음의 기쁨을 오늘날 우리가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던 사도 바오로는 복음 선포의 기쁨으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하여 기쁘게 순교를 맞이할 수 있었고, 그의 복음 선포의 기쁨이 오늘날 2천년 가톨릭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욥이 고백했던 모든 상황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인생은 땅위에서 고역이요, 목숨은 한탄 입김일 뿐이다”라는 욥의 한숨에서 우리는 오늘날 수없이 반복되는 불의와 폭력, 사건과 사고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한편으로 복음을 선포해야하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며, 하느님을 찾는 많은 사람의 목마름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교우들이 복음 선포의 기쁨을 가득 누리시길 바라며 복음 선포의 기쁨이 여러분의 인생을 이끌어 가시기를 빕니다.

“우리가 영성 생활에서 성장하기를 바라면 끊임없이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이들의 선익을 추구하면서 또 그들의 행복을 바라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만이 선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열린 마음이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복음의 기쁨 272항).”

▦ 청주교구 조병환 세례자 요한 신부
450 16.8%
[청주] 인기에 영합하지마라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살리고자 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가운데 은총을 입으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주관이 뚜렷하고, 소신 있는 사람, 그러나 백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리고 그들을 보듬을 수 있는 능력 있는 지도자를 원합니다. 그저 소신을 편다고 백성의 소리는 귓전으로 흘려 버리고 똥 고집을 편다면 모두가 피곤합니다. 그러나 위로 올라가면 자기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해야만 능력이 있는 줄 착각하나 봅니다. 요즘 정부와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자기가 최고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국민이 지칩니다. 우리 신부들도 그렇게 할 때가 있습니다. 본당 신부나 책임자가 되면 그야말로 왕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신자들은 그저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또 신자들이 부추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삶의 방식은 그것과는 분명 다릅니다.

예수님이 외딴 곳으로 가서 한참 기도하고 계실 때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께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마르1,37)하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본당 신부가 마음 먹고 기도 좀 하려는 데 사목위원이 와서 ‘신부님 오늘 생신이신데 자리를 좀 마련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이웃 고을 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마르 1,39). 예수님께서는 세상일은 제쳐두고 하느님의 일을 챙기십니다.

그런데 저는 ‘생일은 무슨 생일’ 하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그것을 즐깁니다. 기도는 뒤로하고 소주 한잔 걸치는 것을 우선 선택합니다. 그러고는 주님을 위해 큰 일을 한양 어깨에 힘을 줍니다. 신자들이 식사대접을 하겠다고 한다든지 술 한잔 하지고 하면 인정받고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고 있다고 제자들이 한 말에는 한편으로 유명해지라는 생각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인기가 좋으니 인기관리 하라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찾기보다 오히려 야망을 부추기는 그들의 생각을 거부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명성이 아니라 자신이 이루어야 할 하느님 아버지의 계획, 즉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캄캄할 때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신 까닭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심으로써 당신을 챙기지 않고 당신 백성을 보듬을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늘 간직하셨습니다. 기도함으로써 하느님과 하나가 되셨고 따라서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뜻에 맞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항상 일깨우셨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삶이 곧 우리의 삶이기를 기도해야 하고 또 행함으로써 그분과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기에 영합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뜻을 행했듯이 우리도 이런 저런 일에 휘둘리지 말고 주님의 뜻을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적도 방향도 없이 방황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한곳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때를 알고 일어서서 모두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늘 일치해야 가능함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위를 걸어가신 기적을 보여 주시기 전에도 산 위에 올라가 기도하셨고(마르6,46), 수난을 앞두고 게쎄마니에서 공포와 번민에 싸여서 간절히 기도하며 아버지의 뜻을 찾으셨습니다(마르14,32-39). 그리고 제자들을 불러 사도로 삼을 때에도 먼저 산에 들어가 밤을 새워 하느님께 기도하셨습니다(루가6,12).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한적한 곳을 찾아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1코린 9,16. 19.22). 그야말로 바오로는 예수님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해 다른 고을을 찾으셨듯이 바오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스스로 종이 되고, 약한 사람이 되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이 또한 기도하며 자신의 소명을 확인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기도하시며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찾으신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가운데 앞 길을 예수님의 길로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당신이 걸으신 길을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자꾸 멈칫거리고 있습니다. 하오니 이끌어 주십시오. 저희들의 앞길을 비추어 주십시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언젠가 드렸던 말씀입니다. 스승님이 평생 아끼던 책 한 권이 있었습니다. 스승님은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방문을 꼭 걸어 잠근 채 그 책을 읽곤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책의 내용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스승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제일 먼저 그 책을 꺼내 봤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책엔 이렇게 단 한 줄만 씌어 있었습니다.

“껍데기와 알맹이를 구별하라”

주님 앞에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껍데기인지 알맹이인지 살펴봐야겠습니다. 알맹이를 만드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 02.02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수도회] 영원한 생명의 향기  [1]
!   [부산] 나는 밥이 되고 싶습니다.  [2]
694   [군종] 첫 영성체 하던 날  52
693   [의정부] 주여! 영원한 생명을 주소서  [3] 2156
692   [춘천] '생명의 빵'먹고 '세상의 생명'되자  [3] 2478
691   [전주] 참 지혜란 무엇인가?  [1] 1844
690   [원주] 감사로 함께하는 잔치  56
689   [안동] 예수 그리스도와 깨어 있지 않으면  [3] 2196
688   [수원] 성체성사의 신비  [4] 2151
687   [서울]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3] 2478
686   [마산] 희망생활의 본질  [4] 1966
685   [대구] 저는 하느님의 사랑을 확신해요  [2] 1906
684   [광주] 생명을 주는 빵, 살아 있는 빵  76
683   [인천] 하느님의 거룩한 밥상  [4] 2353
682   (녹) 연중 제20주일 독서와 복음 [내 살은 참된 양식, 내 피는 참된 음료]  [3] 1457
681   [수도회] 매일 마지막 미사처럼  2059
680   [수원] 신앙으로만 알 수 있는 성체성사의 신비  [1] 2414
679   [대전] 서로에게 살아 있는 빵이 되자  [1] 1099
678   [군종]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2] 2068
677   [서울] 주님의 거룩한 생명의 신비  [2] 2179
676   [인천] 예수님 안에서 나눔은 생명이고, 구원입니다.  [3] 2205
675   [의정부] 나의 삶이 예수님의 삶이 되도록  [3] 2409
674   [전주] 삶(신앙)의 열정  87
673   [부산]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4] 2418
672   [춘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난 무얼 했나”  [2] 2262
671   [안동] 생명을 주는 빵  [3] 2276
670   [마산] 성체, 이 세상에서 체험하는 하느님  [3] 2169
669   [대구] 성체는 생명과 사랑의 음식  [2] 1748
668   [광주] 펠리칸(Pelican : 혹은 사다새)이란 새  [1] 117
667   [원주] 오병이어 - 생명의 빵  [1] 2412
666   (녹) 연중 제19주일 독서와 복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  [4] 1524
665   [청주] 영성체를 갈망하라  43
664   [광주]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참 먹을거리(성체)이신 예수님  1701
663   [부산] 생명의 빵  [7] 2350
662   [대전] 우유 한 사발 얻어먹던 시절 이야기  [2] 1914
661   [의정부] 손이 아니라 달을...  [3] 1668
660   [군종] 주님께 눈과 귀를 기울여야  51
659   [서울] 당신은 왜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4] 2164
658   [대구] "내가 생명의 빵이다"  [4] 1938
657   [수원] “예수님 = 생명의 양식” 깨닫고 있는가?  [5] 1891
1 [2][3][4][5][6][7][8][9][10]..[18]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8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