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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본래의 아름다움을 지켜라
조회수 | 179
작성일 | 18.02.23
[청주] 본래의 아름다움을 지켜라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시며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물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같은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고 주님께서 주신 아름다움(창세1,27)을 잘 지킬 수 있는 지혜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높은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을 만나 십계판을 받았고, 엘리야도 호렙산에서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들을 부르신 장소도 산이었고, 그들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 곳입니다. 우리도 가끔 산에 올라야 합니다. 몸과 마음의 침묵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변하셨습니다. 그분의 옷은 새하얗게 빛났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에 놀란 베드로는 얼떨결에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마르9,5)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께, 하나는 모세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사실 엘리야나 모세는 하느님의 영을 받아 그 영의 능력을 두드러지게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엘리야는 예언서를 대표하는 인물로 죽은 지 수백 년이 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과 얘기를 나누었다는 것은 바로 구약성경이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은 신약의 예표요, 신약은 구약의 완성입니다. 신약은 구약안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은 신약을 통해 밝게 그 의미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앞길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바알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을 참된 하느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한 엘리야, 하느님의 명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모세가 하느님의 백성을 올바른 길로, 참된 행복의 길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고초를 당했듯이 예수님께서도 만백성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고통을 당할 운명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 하얗게 빛난 옷은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입니다.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오게 될 부활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요한사도가 고백한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1요한 3,2)라고 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변모는 영광의 모습을 기억하며 지금의 시련과 역경을 이겨나가라는 위로입니다.

이제 이 흰 옷은 곧 우리의 옷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허물과 후회 없이 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자신을 깨끗이 하여, 하느님을 경외하며 온전히 거룩”(2코린7,1)하게 되어야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새 하얗게 빛나야 할 차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5,14)하고 선언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초막을 지어 머물고 싶어 한 것을 보면 좋긴 좋았나 봅니다. 좋은 것을 보았으니 그 자리에 머물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9,7)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습니다. 그리고는 주님과 함께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있습니다. 그는 이미 “하느님의 모습”(창세1,27)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의 숨”(창세2,7)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름다움을 엉뚱한 곳에서 찾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것이 참 좋았다”(창세1,31)고 하셨지만 그곳에서 찾지 않고 헛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따라서 새롭게 변화되어 아름다움을 가꾸기도 해야 하지만 먼저 내 자신이 아름다움자체라는 것을 일깨우고 그것을 지키고 가꾸려 노력해야 합니다. 결코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지 말고 내 삶을 그리고 삶의 터를 꽃자리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아름답고 귀한 보석을 보면 욕심을 내고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이 가장 값진 보석이 되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아니 자신이 큰 보석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산에서 내려온 것은 안주하지 않는 삶에로의 초대입니다. ‘초막 셋을 짓겠다’는 제자들을 데리고 함께 산에서 내려온 것은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꿋꿋하게 주님의 삶을 살아야 할 소명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산에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산 아래로 내려 오셨습니다. 세상의 복잡하고 어려운 일, 감당하기 어려운 곳으로 내려오셔서 광야와 같은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때 광야에서 앞길을 인도한 것이 구름기둥, 불기둥이었듯이 오늘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는 것은 구름 속에서 들려온 말씀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결국 아름다움을 지킨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듣는다는 것은 들은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주 하느님의 명대로 구리로 뱀을 만들어 기둥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뱀에 물렸어도 그 구리 뱀을 쳐다본 사람은 죽지 않았습니다(민수21,9). 그리고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데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창세19,26). 주님의 말대로 하면 생명이 주어지고, 하지 않으면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써 본래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잘 지키고 키워가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얼굴에서 광채가 난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사람은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합니다. 얼굴은 마음의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잘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사순절에 회개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는데 회개라는 것도 우리가 큰 죄를 지어서 회개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래 아름다움을 되찾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했던 마음에 소홀함이 있다면 다시금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며 온 삶이 그분 마음에 들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보시고 ‘참 좋다’ 하시길 희망합니다. 한 주간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잘 가꾸시길 바랍니다. '사랑에 사랑을 더하여'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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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변모

우리 사회는 외모 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듯합니다. 요즈음은 남자들의 성형도 유행이라고 합니다. 길거리에 나가 보면 왜 그렇게 다들 예쁘고 멋있는지요. 문제는 외모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정신도 함께 가꾸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흉한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나타날 때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진실한 모습도 다들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거룩한 변모를 하셨습니다. 당신의 참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또한 그 자리에는 구약의 위대한 예언자들인 모세와 엘리야도 함께 나타났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모습에 베드로는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습니다. 아마도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광을 위해서는 수난과 고통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영광과 신성을 드러낸 사건이며, 예수님이 구약의 완성자이며, 아울러 장차 위엄과 영광 가운데 재림하실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고, 많은 반대자들과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의기소침한 제자들에게는 위로와 희망을 불어 넣은 사건입니다.

우리도 마침내 주님처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이미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의 변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전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세상 유혹에 빠져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뜯어 고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 청주교구 김훈일 신부
  |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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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예언서를 대표하는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순 제2주일을 맞는 우리에게 이 놀라운 장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요즘 우리가 많이 듣는 말이 있는데, ‘변화와 쇄신’이란 말입니다. 이런 단어를 들을 때 제 개인적으로는 씁쓸한 심정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토록 변화되기를 바라고 좀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지만 언제나 제자리를 맴도는 모습, 정말 한번 보란 듯이 변화하고 싶지만 생각뿐이요, 다짐뿐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사목 활동 속에서 일반 신자들에게 신앙의 깊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비신자들에게 교리를 하고 신자들을 만나면서 신앙생활에 대한 외적인 모습을 가르치기는 쉬워도 근본적으로 왜 하느님을 찾아야 되는지, 신앙이 가져다주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데에는 참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신앙은 체험하고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면 아무리 외적인 신앙의 모습을 잘 가꾸어 나가더라도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거룩한 모습은 부활에 대한 모습과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체험을 갖게 해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예수님 부활의 표지입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감당하셔야 할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이 어떤 영광을 가져다줄지에 관한 표징이었습니다. 이제 곧 모든 사람을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켜줄 고귀한 희생이 있을 것이고, 이 희생은 단지 희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부활로 이어질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변모는 십자가 죽음의 여정을 시작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예시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광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미래의 영광을 기대하고 지향해 가면서, 삶의 어두운 나날들에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이렇게 영적 눈을 뜨기 위해 노력할 때 우리 영혼이 얻게 될 은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클 것입니다. 지금까지 삶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삶이 변모의 삶이요, 회개의 삶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생활의 어려움이나 여러 문제에 부딪쳤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향은 자연스레 냉담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순을 지내면서 내가 겪어야하는 고통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오는 모든 고통은 새로 태어나기 위한 알을 깨는 고통들입니다. 이 고통을 이겨낼 때 타볼산의 예수님처럼 더 영광스러운 나로 새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생은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변화일 것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아멘.

▦ 청주교구 김재정 사도 요한 신부
  |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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