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나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0 12.4%
[군종]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
조회수 | 141
작성일 | 18.05.05
[군종]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

오늘은 부활 제6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십니다.

저는 지난주 복음을 통해,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지가 되어 신앙인으로서 어렵고 힘든 상황 안에서도 주님께 매달려만 있어보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이어지는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어떠한 열매를 맺어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데 있어 늘 사랑해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내가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얼마나 작은 숫자인지 사뭇 깨닫게 됩니다.

내가 완전하고 잘나서 형제들을 사랑하고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하느님의 사랑받는 부족하고 죄 많은 존재이기 때문에 나의 부족을 채우고 내 죄를 용서받기 위해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을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어떤 누구라도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를종이라 부르시지 않고, 친구라 부르시는 차별대우 없는 평등한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 어렵습니다. 그리고 쉽게 실천이 되지 않습니다.

언젠가 신학교 때, 너무나 미운 사람이 있어 예수님께 줄기차게 매달려 기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너무 미운 사람을 어떻게 사랑합니까? 몇 달의 기도를 통해 깨달은 것은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사랑받으려면 ○○는 하지 않았으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 그리고 이러한 내 마음속 조건들이 더더욱 내 주변을 원수로 만들어가고, 벗이 아닌 불평등하고 나약한 사랑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한 주간, 내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벗이 되어주는 사랑을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내 기준으로 만들어 낸 나만의 사랑이 아닌, 오늘 복음 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모두를 위한 사랑, 그리고 내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그 ‘사랑’을 실천해보았으면 합니다. 아울러, 지금껏 나와 어색했거나 미워했던 그 사랑들에 대해서도 다시금 다가갈 수 있는 용기 있는 한 주간 되시길 기도합니다.

▦ 군종교구 장원석(가브리엘) 신부
450 12.4%
[군종]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 34)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최신 유행가요들을 들어보면 노래는 늘 새로워도 변함없는 것은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다는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장소가 바뀌어도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건 이성에 대해 갖는 감정일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역사상의 위대한 성인들도 용어의 차이가 조금씩은 있을지언정 한결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때의 사랑은 비단 남녀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부모자식간의 사랑, 이웃간의 사랑, 나와 불편한 사람 심지어 원수에 대한 사랑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나가 다 사랑하라고, 사랑하자고 얘기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어딘가 좀 다른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 34)에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에 있습니다. 어느 누가 말하는 사랑과도 다른 사랑.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으로 기억합니다. 토요일 어느 화창한 날, 길가에 피어있는 개나리, 진달래를 보고 만지며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성당문을 열고 들어가니 적막함과 무게감있게 어두운 실내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성수를 찍고 기도한 후 뒤편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데 맞은편 정면에 십자가에 달려계신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예수님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직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되지도 않았지만 문득 예수님께서 2000년전에 바로 나를 위해 저렇게 돌아가셨구나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가슴이 뭉클하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저렇게 돌아가셨다는 것. 내가 예수님을 위해 무언가 잘 해드린게 있는게 아닌데, 내가 예수님을 알기도 훨씬 전에 이미 나를 위해 당신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생각하니까 2000년이라는 세월과 공간을 넘어서 예수님과 하나되는 듯한 신비감마저 들었습니다. 문득 십자가 아래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을 위해 제목은 잘 모르지만 어떤 음악을 연주해 드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습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마음뿐, 특별히 잘 연주하는 악기가 없는 까닭에 상상만 해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오늘도 주님의 그 사랑 안에 머물러봅니다.

▦ 군종교구 박홍준 신부
  | 05.05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부산] 공수래 공수거  [5]
707   [수도회] 자기 해방의 여정  [5] 1969
706   [수원] 안다는 것과 실천하는 것  [5] 2212
705   [대구] 내 깡통  [3] 2113
704   [군종] 부자와 하느님 나라  37
703   [서울]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6] 2137
702   [의정부] 소유와 나눔  [4] 2245
701   [안동] 부족한 것 하나  [2] 1076
700   [마산] 나눔의 훈련을 하자  [4] 1933
699   [인천] 거지는 ‘하느님의 배려’  [5] 2198
698   [전주] 영원한 생명  [2] 2136
697   [광주] 우리의 봉헌은 떳떳한가. 그러면 무엇이 내 것입니까.  [1] 58
696   [춘천] 나눔 + 버림 = 영원한 생명  [4] 2345
695   [원주] 영적법칙  [1] 65
694   [대전] 그 놈의 돈이 뭐길래  [3] 2439
693   [청주] 부족한 한 가지  81
692   (녹) 연중 제28주일 독서와 복음  [4] 1569
691   [수도회] 이혼, 그 뜨거운 감자  [1] 660
690   [원주] 휴가증  69
689   [부산] 창조 사업을 함께 하는 남녀  [5] 2193
688   [인천] 나비는 가비야운 것이 미(美)다.  [6] 2372
687   [서울] 남자의 감격  [6] 4362
686   [대구]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고  [1] 2218
685   [마산] 기도의 보루(堡壘)로 진을 치자  [4] 2270
684   [안동] 사랑의 공동체 가정  [2] 2067
683   [수원] 하느님 안에서의 사랑의 완성  [4] 2464
682   [광주] 혼인은 새로운 탄생  [1] 2173
681   [전주] 하느님께서 창조의 순간에 맺어준 사건, 혼인  [2] 86
680   [대전] 어린애 하나를 더 낳아 나눠 갖게  [2] 2234
679   [군종] 4주간의 탐색기간을 드리겠습니다  1934
678   [춘천] 최고의 기적  [2] 2369
677   [의정부] 둘이 하나가 되는 사랑  [3] 105
676   (녹) 연중 제27주일 독서와 복음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3] 1656
675   [부산] 영원한 생명을 위한 결단  [2] 1821
674   [인천] 함께 나누는 하느님 나라  [3] 1672
673   [수원] “언제까지 속 좁은 신앙생활을 하려합니까?”  [4] 1937
672   [원주] 대범함과 포용력  [3] 1880
671   [서울] 사랑의 의무를 지닌 신앙인  [3] 1944
670   [군종] “내 손과 내 발이 되어버린 죄”  77
669   [광주] 법보다 크신 하느님의 사랑  [1] 1699
1 [2][3][4][5][6][7][8][9][10]..[18]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8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