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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주님, 당신을 사랑하러 왔습니다.
조회수 | 131
작성일 | 18.05.05
[의정부] 주님, 당신을 사랑하러 왔습니다.

한국을 떠나 벌써 이곳(일본)에서 부활대축일을 3번째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의정부교구에 계시는 여러분들은 일본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도 때로는 미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역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하여 접할 때면 한국인으로서 저도 모르게 속에서 열불이 끌어오르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교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주교님을 비롯해 사제들, 수도자들, 신자들을 바라보면 그런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디로 갔는지 한국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이 그리스도의 형제, 자매로서의 따뜻한 마음을 접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나라는 다른곳일지 모르지만 우리들은 모두 공통된 하느님 나라의 국적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스런 자녀들이랍니다.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다를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본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말씀을 보면 ‘사랑(愛)’이라는 단어가 20번 넘게 나옵니다.(일본어) 같이 사시는 일본신부님의 해석이지만 ‘愛’라는 한자는 가운데에 마음 心을(으로) 받아들이는 것(受)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사랑은 베푸는 것, 나누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저에게는 신선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사랑은 마음으로,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 복음 선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의 이웃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이끄심과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복음선교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8) 사랑의 선교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고통받고 있는 이웃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과 한탄에 마음을 열고 귀를 세우고 들어주고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한국, 일본, 세계의 국경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의 나눔과 실천에 국경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복음과 증거의 선포에 국경이 어디 있습니까?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부활의 능력을 믿으려하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장벽이고 국경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고 따르는 것, 서로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의 지상명령이자, 유언이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왜 일본으로 선교를 떠났냐고,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곳에 주님을 사랑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사랑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의정부 교구민 여러분! 지금도 어디에선가 우리들을 당신의 종이 아니라, 친구로 초대해 주시고 계시는 부활하신 주님께 찬미를 드리며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 부활의 증거자로 살아가도록 기도드립니다.

▦ 의정부교구 이정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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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어떻게 갚사오리 내 영혼이

부활의 신비는 생명의 신비이며 사랑의 신비입니다. 지난주일 복음서에서 우리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서의 핵심은 이 비유를 사랑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마치 죽은 나무와 다름없음을 깨닫는 가운데 사랑안에 머무를 때에만 신앙의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충직한 개가 물에 빠진 주인을 구했다는 옛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떠돌이 개가 있었습니다. 우연히 그 개를 알게 되어 돌보아주기로 마음먹고 ‘은총이’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신설본당에서 외로움을 2년 정도 함께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은총이’하고 지내면서 배운 것은 마음에 상처를 입은 개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보살피고 산책을 같이하면서 오랜 시간 기다림 속에 어느 날 자기가 사랑받는 존재임을 ‘은총이’ 개 스스로 본능적으로 느꼈을 때, 그 개는 마음이 안정이 되고 그때서야 짖기 시작하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이 동물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알고 주인을 대합니다. 하물며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자는 그 사랑을 기워 갚기 위해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우리를 위한 그 크신 사랑을 위해 수많은 성인성녀를 비롯 아우슈비츠에서의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 수녀가 보여주신 사랑의 실천이 이를 증명합니다.

요한1서 말씀은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나 하느님을 안다고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전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도 서로 사랑하라고 그리고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종이 아닌 친구로 불러주십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들려주던 유언이기도 합니다. 유언은 마지막 말로 오늘날 살아있는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값진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그중에 우리는 친구로 사귀어 그를 위해 목숨을 내던질 정도의 사람이 몇이 있는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역으로 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이 삶으로 직접 보여주신 것처럼 다른 이들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목숨까지 내놓는 것입니다.

삶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숙제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사랑은 늘 한계를 지니고 흔들림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으로부터 시작한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랑은 참으로 그리스도인의 혼이며 생명입니다. 사랑은 결코 관념이 아닙니다. 사랑은 구체적인 실천과 행동을 요구합니다.

▦ 의정부교구 노연호 마티아 신부
  |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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