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나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47 38.4%
[광주] 마지막 어두움 마지막 새벽
조회수 | 142
작성일 | 18.10.25
[광주] 마지막 어두움 마지막 새벽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술래가 해질 녘 공기를 가르며 고래고래 외치기 시작합니다. 친구들이 숨을 때까지 여러 번 더욱큰 소리로 외치며 신호를 줍니다. 술래를 혼란시키려고 여기저기서 “아직 아니다!"를 서로 외쳐주며 들키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술래가 도저히 찾기 어려운 곳으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볏단이 쌓여진 곳의 빈구석에 기어들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친구, 외양간에 들어가 혹여나 소가 인기척에 놀라 울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가슴 졸이는 친구들이 새삼 떠오릅니다. 숨 쉬는 소리마저 들길까 호흡을 고르며 혼자 숨어있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술래의 발자국은 가까이 조여오고, 그 때 슬쩍 눈을 들어 바라보았던 밤하늘의 별들은 촘촘히 빛났습니다. 순간의 아찔함과 흥미로움은 그때 뿐, 잠시 후 술래는 친구들이 숨어 있는 곳을 알아내어 친구들을 찾아내고야맙니다.

이 짜릿한 숨바꼭질의 묘미는 무엇입니까? 못 찾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숨기가 아니라 ‘찾기’ 입니다. 회개는 숨겨진 자신의 부끄러움,어둠,부조리,뻔뻔함,약함을 찾고 발견하여 궁극에는 ‘자기인식’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자꾸만 무엇을 재어보고, 따져보고, 머뭇거리며 체면 때문에 주위를 살피기만 하는 우리에게 예수는 바르티매오처럼 해야 한다고 외치십니다. 자기인식이 되어 있기에 바르티매오는 자선의 ‘어둠을 볼 줄 아는 밝은 사람’이었 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르티매오가 살았던 시대는 자신의 어둠을 볼 줄 아는 영혼조차 철저히 억압했던 시절이라는 사실입니다.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 (Giorgio Agamben)은 ‘동시대인이란 자신의 시대에 시선을 고정함으로 빛이 아니라 어둠을 자각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빛에 눈이 멀지 않고 그 속에서  그림자의 몫, 그 내밀한 어둠을 식별하는 사람만이 동시대인입니다. 그러나 예수 시대의 기득권층은 바르티매오와 동(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숨기는 것을 목표로,들키지 않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만 사실은 아주 손쉽게 들키는 구조입니다. 들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처럼. 우리의 어둠,부끄러움,부조리를 우아하게 읽어 줄 근사한 품격 있는 술래들을 만났으면 합니다. 주님께 우리의 숨겨져 있는 어둠을 들 키고 싶습니다. 내가 들킬 어둠은 얼마나 많을 지 궁금합니다. 술래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부끄러운 듯 웃으면서 문득 놓여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술래와 어깨동무를 하고 다정하게 집으로 가고 싶습니다. 눈을 뜬 바르티매오가 주님을 따라나선 것처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는 술래의 노랫가락이 아련한 가을 밤입 니다.

▦ 광주대교구 윤창신 루치아노 신부 : 2018년 10월 28일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725   [청주] 감사의 생활  [1] 2574
724   [대전] 권력보다 사랑을 택한 그리스도  [1] 982
723   [수원] 그리스도의 왕권은 어디로부터?  [2] 2104
722   [수도회]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4] 1939
721   [의정부] 주님! 왕입니다요!  [1] 2010
720   [안동] 그리스도 우리의 왕, 우리의 주님!  [1] 2020
719   [춘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앙  [2] 2115
718   [전주] ‘갑질 신부님, 주교님께 이를 거예요!’  [1] 215
717   [원주] 우리 삶의 왕이신 주님과의 만남  154
716   [서울] 예수님, 그분은 과연 누구이신가?  [2] 2602
715   [마산] 우리도 그리스도의 왕직을 계승해야 한다.  [3] 1977
714   [대구] 구유에서 십자가까지  [1] 1927
713   [군종] 왕입니다요.  110
712   [광주] 이 세상 왕이 아니다  [1] 2038
711   [인천] 고백하자! 누가 왕인가?  [2] 2045
710   (백)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성서 주간)]독서와 복음  [4] 843
709   [수도회] 하루 하루를 꽃밭으로  [4] 2578
708   [대전] 환난 이후 종말의 희망이  [2] 1080
707   [부산] 이 순간 최선을 다하자  [5] 2277
706   [수원] 시간에 대한 영원의 승리  [5] 2702
705   [원주] 역사의 완성인 종말은 분명 있다는 사실  [2] 2645
704   [대구] 빛과 소금의 삶  [2] 2090
703   [청주] 낼까 말까? 얼마 넣을까?  151
702   [광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139
701   [서울] 악한 세상을 이기는 지혜  [8] 2735
700   [인천] “미쳤어. 저렇게 왜 살까?”  [4] 2412
699   [전주] 종말론적 교회  [1] 2525
698   [의정부]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일  [3] 2181
697   [춘천]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4] 2922
696   [안동] 그 날과 그 시간에 대한 표징  182
695   [군종] “끝에서 만나는 은혜로운 시작”  162
694   [마산] 내 삶의 마지막을 기억하며  208
693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 세계가난한이의날  [5] 1931
692   [수도회]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봉헌  [4] 2712
691   [수원] 사랑은 작은 법이 없다  [4] 2693
690   [군종] 컵에 우유가 반밖에? 반씩이나?  [1] 2349
689   [부산] 참된 봉헌  [5] 2499
688   [안동] 나눔은 변화된 삶!  [2] 2562
687   [춘천] 정성어린 이 제물  [4] 2756
686   [의정부] 하느님과 공동체를 위한 카리스마  [4] 2426
1 [2][3][4][5][6][7][8][9][10]..[19]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