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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관심과 사랑이 이루는 기적
조회수 | 2,157
작성일 | 06.02.03
얼마 전 본당 교우 형제님들과 소주를 한 잔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에 취미생활에 대한 얘기까지 나왔는데, 어느 형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신부님들이 취미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과연 나는 누구를 만나고 찾고 있었던가? 편안한 사람들, 내가 재미있어 하는 일만을 찾아다니지 않았던가? 내 주위의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나는 부모와 자녀간의 갈등으로 혹은 가족의 병환으로 힘들어하는 가족들, 직장을 잃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얼마나 찾고 관심을 가졌던가? 스스로 풀어야할 일이지 나는 해줄 것이 없다고, 도대체 방법이 없다면서 외면하지는 않았던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제의 모습! 지나가는 한 마디였지만 그 한 마디는 지금 제 머릿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고, 앞으로도 그 한 마디는 제 마음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병으로 고통 받고 있던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시고, 수많은 병자들, 마귀 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을 보시고 치유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치유는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주러 오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권능,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드러내신 사건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병고를 겪는 것은 악령이나 하느님의 저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질병을 겪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버림을 받은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되어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버림을 받고 살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갖가지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만나시며 따뜻한 관심으로 치유해주시고 일으켜주셨습니다. 하느님은 벌주는 분이 아니라 희망과 용기를 주고 일으켜주시는 분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관심과 사랑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지키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 찾아 나섭니다. 지키면서 높은 곳을 바라보고 지향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자신의 삶에 집착하며, 편리하고 즐거운 것만을 찾으려 하고 안주하려할 때, 하느님과 이웃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하느님을 만나고 이웃을 찾아가야 합니다. 살리고 일으키시는 구원자 하느님을 만나야 하고, 지금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이웃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살리고 일으키는 하느님의 권능이 세상에 드러나도록 우리는 가난하고 소외 받은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찾아가야 합니다.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이웃들의 삶이 보일 때 우리들의 관심과 사랑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이 관심과 사랑은 하느님의 권능에 힘입어 이웃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나와 가깝고 편한 사람들, 내가 바라는 것을 채워줄 사람만을 찾기보다, 내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찾아 가봅시다. 가난하고 병들어 신음하고 아파하는 사람들, 소외 받은 이들을 찾아 나서는 우리들의 관심과 사랑은 예수님의 치유기적을 이어지게 할 것입니다. 나보다 약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갖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은 이웃을 살리는 기적으로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안영배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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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마르 1, 31)

오늘날 사람들은 건강에 참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 보건기구(WHO)의 헌장을 살펴보면 건강이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건강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육체적 정신적 질병이나 이상이 없는 신체 상태를 건강하다고 이야기 한다면 오늘날에는 사회적인 건강 상태까지 포함해서 건강의 개념을 더욱더 폭 넓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를 비롯하여 많은 병자를 고치시는 치유의 기적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병에 시달리던 사람들을 한 번에 고쳐주시는 용한 의사와 같은 모습입니다.

의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병 앞에 꼼짝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병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뜻은 단순히 병만 낫게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병을 고치는 기적이나 마귀를 쫓아내는 기적이나 모든 기적은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와 있다는 표징에서부터 출발 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마귀를 쫓아내셨다는 것은 가장 불행한 사람들을 불행에서 건지시고 새로운 앞날을 열어주셨다는 뜻입니다. 이는 오늘날 ‘건강’이라는 개념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우리의 건강은 단순히 신체적 건강이 아닌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건강함, 즉 주님의 보살핌 속에 건강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 중에서는 단순히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사랑의 기적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신체적인 건강함만을 원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도 별반 다름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온갖 불행과 병에서 낫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들 육신의 병을 살펴보면 대부분 모든 병의 원인은 자기 자신 안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늘 우리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 육신의 병과 함께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해주십니다.

어떤 책에 예수님이 거리를 거닐면서 당신께서 치유시켜 주셨던 여러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처음에 술에 취한 젊은이를 만났는데 “저는 1년 전에 당신이 문둥병을 고쳐 주셔서 한동안 편하게 잘 살았는데 문둥병자일 때 술을 맘대로 못 먹어서 그동안 먹지 못했던 술만 퍼먹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쓸쓸히 돌아섰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가시다가 울고 있는 늙은이에게 왜 우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시 죽을까봐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또다시 쓸쓸히 돌아섰습니다. 하느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보여주는 풍자적인 이야기입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병에서 회복된 선물을 예수님과 이웃을 위하여 봉사하는 곳에 썼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 하느님의 선물을 받았을 때 어떻게 써야 하는지 보여 주는 자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진정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을 자부하고 내세우며 뽐내지 않습니다. 건강한 이는 주님께 겸손하며 늘 자신의 건강함에 감사하고 하느님의 사랑에 모든 것을 맡기며 이웃에게 봉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주간에도 육신의 병과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모든 분들 역시 하느님께 아픈 상처를 드러내 보이고 그분의 자비를 간구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윤정엽 신부
  |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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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우리는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일꾼들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연중 제5주일 복음 말씀은 시몬의 장모를 고치신 일과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신 일 그리고 기도하면서 전도하시는 예수님의 가파르나움에서의 하루 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일하시고, 새벽녘에는 조용한 곳으로 가셔서 홀로 기도하신 후 갈릴래아 지역을 두루 다니며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구원받아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이러한 오늘 복음 말씀을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만, 기쁜 소식 즉 복음의 기쁨을 전하며 많은 사람들을 구원에로 이끄시는 예수님의 일상생활 중에서 우리가 배울 점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교구는 작년도에 “가서, 두려워하지 말고 선포하십시오!”라는 구호를 외치며 선교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대부분의 본당들이 제단 중앙 혹은 측면에 이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걸고 매일 미사 때마다 그 사명을 되새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결과도 참 좋았습니다. 선교 열의가 높아지고 새영세자들도 예년에 비해 많이 탄생했습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일이었습니다. 2015년 올해 역시 작년에 이어 선교에 총력을 다 하기로 하였습니다. 하여 우리 교구 사목국은 “2015년 선교의 해 사목활동 지침”을 제작하여 전 본당에 배부했고, 아마 우리 교구민들은 그 유인물을 한 장씩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교회의 선교 사명을 인식하고, 선교를 지향하는 사목적 구조를 만들고, 주님과 함께 지치지 않고 기쁘게 선교하며 열린 교회의 모습으로 봉사하며 선교하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교는 우리 주님의 명령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우리 신자들의 사명이자 의무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선교란 복음의 기쁨을 전하여 세상 사람들이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해방되고 구원되어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기쁨이란 예수그리스도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으로써 오는 기쁨을 말합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요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너무나도 좋겠지요. 이 기쁨이 바로 복음의 기쁨인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3년 11월 24일 신앙의 해를 마감하면서 발표하신 사도적 권고인 “복음의 기쁨”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와 슬픔, 심적인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이 끊임없이 새롭게 생겨납니다.”(복음의 기쁨 제1항)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우리 주님은 불철주야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다니시면서 복음의 기쁨을 전하며 “하늘 아빠”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하느님을 믿고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바로 주님이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사람이고 선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의 냄새가 나는, 주님의 향기가 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는 주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항상 기도하신 주님처럼 기도하며 선교하는 신자들이 되기로 다짐하는 연중 제5주일이 되도록 합시다.

<안동교구 김영필 바오로 신부>
  |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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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느님 마음

이곳 시골 본당에 와서 16개월 만에 처음으로 새 집 축복식을 하고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귀촌을 해서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 마당 한 편에 집을 짓고 살기로 한 50대 부부의 새로운 보금자리였습니다. 많은 교우들이 함께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미사 후 점심을 함께 들며 교우들과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농사 이야기가 화제가 됐습니다. 신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특수 작물을 재배하거나 농토를 변경해 축사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돈은 많이 못 벌더라도 자녀들과 후손들을 위해 벼농사를 지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이야기 끝에 결국은 대의명분을 선택했습니다. 신자들은 “이 나이에 돈을 벌면 얼마나 더 번다고 가장 중요한 벼농사를 포기하고 농부의 자존심을 버리겠느냐”며 벼농사를 택했습니다. 신자들이 결심을 밝힌 순간 저는 힘찬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돈이라는 ‘우상’ 앞에서 갈등하는 이들이 많은 세상에서 유혹에 굴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농사)을 선택한 우리 교우들이 얼마나 멋있습니까! 어르신들은 도시에 사는 자녀들에게 효도를 받으며 편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유혹을 뿌리치고 생명을 가꾸고 모두가 행복하길 기도하며 사는 형제ㆍ자매님들 마음이 아마도 하느님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난하지만 하느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오늘 화답송(시편)은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주님은 가난한 이를 일으키시고 악인을 땅바닥까지 낮추시네.” 얼마나 신명나는 노래입니까? 만약에 시편의 내용과 반대의 경우라면 이 세상이 얼마나 험악할지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이러한 주님의 선택은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주시고 마귀를 쫓아내시는 내용이 담긴 복음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실현됩니다. 그러면 복음에서 말하는 병자는 누구일까요? 실제로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여러 이유로 가난한 상태에 있는 이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이방인,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 과부, 고아 등입니다. 자신이 누려야 할 자유와 평화,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이들도 포함됩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진정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비록 우리와 같은 신앙을 고백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고 어려운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배려를 선택해 우리에게 참다운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보려 합니다.

요즘 기도를 바치며 시진핑 중국 주석을 자주 기억합니다. 그는 2013년 3월, 10년 임기의 중화인민공화국 제7대 주석으로 선출됐습니다. 최우선 정책은 부정부패 척결이었습니다. 또 빈부격차 해소, 산아제한(1자녀) 정책 폐기, 1%의 국영기업이 국가 경제의 4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변혁을 약속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지금 부정부패 추방에 앞장서며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그와 비슷한 약속을 했었지만 대부분 ‘말 잔치’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은 공약을 지금까지 기적처럼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의 약속이 지속적으로 지켜지길 기도합니다.

지난 1월 21일 상하의원들 앞에서 국정 연설을 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여러 번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힘찬 목소리로 미국의 미래를 이야기했습니다.

중점 내용은 중산층과 저소득층 지원 정책이었습니다. 상위 1% 부유층과 거대 금융기관에게 세금을 더 징수해 서민 자녀 보육과 교육에 사용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4300만여 명의 근로자가 누리지 못하고 있는 유급 병가와 유급 출산 휴가를 보장하겠다고 했습니다.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연 수입 1만 5000달러(약 1600만 원)로 살아 보라!”고 외치며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를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연설 내용이 얼마나 실현될지는 의문이지만 그의 시각이 정말 좋았습니다.

많은 병자를 치유해주시고 가난한 이들을 일으키시고 마음이 부서진 이를 고쳐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삶의 중심을 잡아봅니다. “감사!” “감사!”

<안동교구 박재식 신부>
  |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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