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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부끄러운 고백
조회수 | 2,077
작성일 | 06.02.03
“신부님! 내일 오전까지 원고 보내주세요”  

강론을 써야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복사들과 2박3일의 캠프를 다녀온 1월 25일 저녁, 교구의 홍보전산국으로부터 온 전화입니다. 벌써 마감일이 5일이나 지났고요. 더욱이 내일 오전에는 근처 다른 성당에 미사 봉헌 약속도 있는데. 그제서야 급하게 연중 제5주일의 복음을 읽어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마르1,38-39)”,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그래서 강론의 주제를 ‘복음을 전하자’로 정하고선 강론을 쓰기 시작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고 선물이다. 사도 바오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직무라고 이야기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든 일을 했다. 자! 이제 우리도 세상에 나가서 예수님처럼 그리고 바오로 사도처럼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자주 듣고 자주 하는 말이기에 쉽게 써내려갑니다. 이렇게 강론 원고를 어느 정도 뿌듯하게 마쳤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그러니까 지금 이글을 적고 있는 오늘(1월 26일) 근처 성당의 10시 미사를 봉헌하고서 돌아오는 길에 있었던 일이 위의 강론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차가 없는 뚜벅이 신부인 저는 택시를 불러 성당 마당에서 탔습니다. 택시 기사분이 저에게 묻습니다. “신부님이세요?” 의례적인 인사려니 생각하며 간단히 “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기사분은 계속 이야기합니다. “제가 성당 안다닌지 10년쯤 됩니다.”로 시작한 기사분의 이야기는 집안에 신부님도 계시고 수녀님도 계시기에 어릴 적부터 성당에 다녔고 견진과 결혼도 성당에서 했는데, 언제부턴가 성당에 다니지 않게 되더니 “가야지”하면서도 아직 바로 집 앞에 있는 성당을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80세가 가까이 되신 어머님의 소원은 당신이 다시 성당 다니며 신앙 생활하는 것을 보는 것이라며….

당황스러웠고, 어떻게 대답해야하나 고민합니다. 여러 말을 해봅니다. “그래도 가끔 성당 마당이라도 들러보세요. 일 하러 가기 전이나 일 끝난 후 집에 가시면서, 우리 본당에 잠시 들러서 구경이라도 하고 가세요.”, “시간 되시면 커피라도 한잔….” 그러나 그 후 긴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고, 기사분은 웃으며 “나중에요”라고 대답하고서 결국 도착한 성당의 마당에서 차를 돌려 가셨습니다. ‘이름이라도 물어 볼 껄, 더 이야기 할 껄….’ 지금은 후회만 남습니다. 복음을 전하자고 말해 놓고서는 정작 저는 성당까지 오신 분을 그냥 보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 나라와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심지어는 반대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고, 모든 일을 하셨는데, 신부인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든 일을 했는가? 다시 그분을 만나면 또 이야기할 수 있을까? 복음을 전하자고 쉽게 말한 제가 부끄럽습니다.

이제 이름도 모르는 그분을 위해, 그리고 부족한 나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분이 복음의 기쁨을 다시 느끼기를, 그리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달라고….”

정석현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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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해가 저물어 안식일이 지났을 때 사람들은 병자들과 마귀에 사로잡힌 사람들 그리고 평생을 불구로 살아온 사람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몰려듭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치유의 손길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해방시키셨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기에 그 은총 안에 머무르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몰려든 군중 속에는 분명 기적의 현장을 구경하고 목격하는 놀라움 속에서 영적인 위로와 기쁨을 찾으려는 사람들도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어떠한 이유로 혹은 어떠한 바람과 소망을 갖고 찾아왔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치유해 주시며 소망을 채워주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소망을 이룬 사람들은 이제 그분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누구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도움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심을 깨달음으로 서 믿음을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들 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걸어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며 온 세상에 ‘하느님 사랑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늘 사랑을 갈구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고, 자신이 사랑 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머물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사랑을 찾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언제나 함께 머물고자 아침 일찍부터 예수님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머물며 안주하기보다는 당신께서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찾아 떠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어떤 특정한 사람 혹은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리고 체험하며 그들도 믿음 안에서 사랑을 고백하며 살아가도록 도와주시기 위함입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행복하고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안주하고자 하면 사랑도 타성에 젖어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때문에 진실한 사랑은 끊임없이 새로운 대상을 찾아야 하고 그 안에서 새롭게 사랑할 모습을 찾으며 성장해야만 합니다.

성숙한 사랑, 완전한 사랑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며 그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예외없이 자신의 사랑을 나눠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비록 그 길이 험하고 고통스럽고 지칠지라도 멈추거나 돌아서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내어줄 수 있을 때 사랑은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위해 자신을 찾는 이들을 뒤로하고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 떠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사랑해주는 사람들과만 살아가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며,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원재현 신부
  |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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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예수님과 연대

찬미 예수님! 사랑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어릴적 학교에서 줄다리기 생각이 나십니까? 청백을 나누어서 서로 힘껏 당겨서 이기고, 진 경험들이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연대하는 기본적인 상징 입니다. 연대한다는 것은 서로의 의지를 뭉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대해서 서로 의지하면서 힘을 발휘하고, 이루고자 하는 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아픈 사람은 누구와 연대를 해야 합니까? 의사나 약사와 연대를 해야만 병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들과 연대를 해야만 시험을 잘 볼 수 있습니다. 경영자들은 노동자들과 연대를 해야만 공장이 잘 돌아가고, 수출을 할 수 있습니다. 죄인은 누구와 연대를 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과 연대를 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열병을 앓고 있던 시몬의 장모는 예수님과 연대를 해서 병이 낫게 되었고, 마귀 들린 자들은 예수님과 연대를 해서 마귀를 쫓아낼 수 있었고, 온갖 병든 자들은 예수님과 연대해서 건강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좀 더 생각을 해 보면 줄다리기로 연대할 때 그 의지는 밧줄을 잡고, 힘껏 힘을 주어서 당기듯이, 예수님과 우리와의 연대하는 힘은 바로 믿음에서 발휘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총과 우리의 믿음이 발휘될 때 우리 마음속에 질병을 없앨 수 있고,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것 입니다. 마귀에서 벗어난 사람, 질병에서 건강해진 사람은 참으로 예수님과 함께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연대해서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서 함께 기쁨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 38절에서 예수님은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질병으로 아프고, 지치고, 미친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돈과 연대하고, 권력과 연대하고, 명예와 연대해서 비리와 부정부패, 죄악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면서 정의와 평화, 생명에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고자 오셨습니다. 우리는 누구와 연대할 것입니까?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병들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누구와 연대하겠습니까?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병들고, 멍들고, 시들고, 곪아 터질 때 예수님과 연대할 때 건강해 지고, 건강한 세상을 예수님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과 함께 복음 선포의 삶과 복음의 기쁨을 누리도록 합시다. 아멘

<의정부교구 김학수 비오 신부>
  |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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