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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예수님과 손을 잡을 때
조회수 | 2,166
작성일 | 06.02.03
시몬의 장모가 열병을 앓았다. 무엇때문인지 몰라도 엄청나게 열받을 일이 있었나보다. 급기야는 드러눕게 되었는데, 그 일을 생각해보면 그럴만도 하다. 열심히 가족을 위해 일하던 자기 사위가 어느날 갑작스럽게 나타난 예수라는 사람 때문에 자기 딸도 버리고, 가족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말로는 예수라는 사람이 회개하라고 말하면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말하고 다닌다고 하고, 방랑자처럼 떠돌아 다니며 술과 음식을 절제하지 못한다는 소문도 들고, 회당에서 회당에 모인 교인들을 난처하게 만들거나, 안식일에 사람을 고친다고 치유행위까지 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보니 자기 사위가 그런 미친(?) 작자를 추종하며 일등공신으로 따라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열받을 일이 아니겠는가? 시몬의 장모는 자기 사위가 다시 돌아와 어부 일을 하는 것이 자기가 낫는 지름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몬도 떠돌아다니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자기 장모의 이야기를 들고 예수님께 말씀드렸는지도 모르겠다. 장모를 한번 만나달라고 말이다. 자기 혼자 장모를 만났다가는 다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기는커녕 다리몽둥이가 남아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심약한 자이기도 하니깐 말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읽다보면 시몬은 자신의 주장을 쉽게 바꾸기도 하고, 감정에 치우쳐서 말을 하기도 하고, 사도 바오로에게 혼도 나기도 하는 심약한 사람이고 줏대없는 모습을 지닌 사람인 듯 보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시몬의 장모가 사는 집으로 가신다. 시몬의 장모는 예수의 꼴도 보기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어나 보지도 않고 누워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가가셔서 장모의 손을 잡으신다. 그리고 시몬의 장모는 일어나 시중을 든다. 놀라운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 복음서를 읽고 묵상하다보면 시몬의 장모가 보았던 예수님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하다. 나도 보고 싶다. 그리고 그분의 손을 잡고 싶다. 그래서 나도 그분의 시중을 들고 싶다.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보다도 그분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그분과 화해를 했다는 것이고, 그분과 같은 길을 걷겠다는 협상타결이다. 무엇이 시몬의 장모의 마음을 변화시켰을까? 너무나 궁금하다. 그러나 느낌이 온다. 그분을 본 사람들은, 그분을 만난 사람들은, 그분에 대한 열망이 마음 속에 있는 사람들은 그분을 만나면 변화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그분과 손을 잡고 있는가? 그분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일로 열병이 나 있는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세상일에 열병이 나 있다면 그분이 당신을 찾아올 때 그분께 손을 내밀어보자. 그러면 그분이 잡아 주실 것이다.

박요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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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있는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참 하느님이신 분께서, 전 우주 자체이신 분께서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목적을 분명히 알려 주시고 계십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복음서 곳곳에서 전하고 있듯이 예수님께서 지극한 연민으로 많은 병자와 장애인들을 고쳐주시고, 배고파하는 군중을 위해 빵의 기적을 보여주시어 주린 배를 채워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적을 행하는 것은 예수님의 일차적 활동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마귀들을 쫓아내시고 악의 세력을 철저히 파괴하신 것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중요하기는 하여도 이것은 부차적인 일일 뿐입니다. 예수님께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단 하나,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입니다. 물론 치유의 기적이나 마귀를 쫓아내신 구마 역시 인류에게 주는 구원의 표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니면 몇 대 조상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께로부터 저주를 받고 벌을 받은 것이라고 여겨지던 사람들, 병자와 장애인과 악령 들린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을 모두 치유해 주셨습니다. 가만히 바라보면 나와, 이 자리에 있는 우리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구원에서 배제되었다고, 하느님께 얻어맞고 저주를 받았다고 여겨지던 사람들이 이제는 예수님 덕분에 복된 자로 격상되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내 옆에 있는 사람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적들은 모두 한 사람이라도 더 복음을 믿어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한 예수님의 사랑이고, 연민임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이 세상에는 기적을 일으킨다면서 사람들을 현혹하여 인기몰이와 돈벌이를 하는 악한 세력이 너무도 많습니다. 또 거기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해 철저히 망가지는 이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구원은 기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옵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면 복을 받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죗값을 치를 수밖에 도리가 없는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진리는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값은 너무도 비쌌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값은 하느님의 목숨, 곧 예수님의 생명이었습니다. 나 하나를 살리고자 하느님께서 당신을 십자가의 속죄 제물로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우리가 내는 대가는 너무나도 쌉니다.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외치신 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됩니다. 정말 놀라운 사랑이고, 이것이 바로 구원의 은총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숨과 맞바꾼, 세상에 둘도 없는 정말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매일 넘치도록 가득 주시는 구원의 은총을 불신과 죄악으로 걷어차 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아멘!”

조승현 신부
  |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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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예수님의 자비(misericondia)와 측은지심(compassionevole)의 마음

생로병사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완성된다. 산업화에 따른 환경문제, 바이러스 등으로 인해 인간은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질병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이 질병들은 고통을 수반하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고통은 강렬한 체험이며, 경험인 동시에 병고를 겪은 인간 안에 잔류하고 내재되어있다. 치통으로 고통을 당한 경험, 심한 감기, 몸살을 앓았던 경험, 좀 더 나아가서 항암치료를 받았을 때의 고통, 수술 후 수술 부위가 아물기까지의 고통……. 이런 고통은 시간이 지나도 우리 안에 잔류한다. 누군가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쳐지게 하는 것이 질병의 고통이다. 그만큼 강렬했기에 고통은 시간이 지나도 희미하게나마 우리 안에 잔류하고 있으며 고스란히 남아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마르 1, 21) 열병을 앓고 있는 시몬의 장모를 치유해 주시고, 저녁때가 되어서도 병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치유해 주셨다. 한낮에는 움직이지 않던 사람들이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 몰려왔다. 더 이상 해가 비치고 있지 않기에 안식일이 지났다고 안심하고 병을 치유받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육체의 고통은 자신의 존재성을 가장 처절하게 깨닫게 하는 강렬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육체의 고통은 정신적인 고통, 영적인 고통으로까지 이어져서 자신의 삶과 가족들의 삶을 힘겹게 만든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경계를, 밤과 낮의 경계를 무너뜨리셨다. 질병의 고통을 잘 알고 계셨기에 인간에게 당신의 자비(misericondia)와 측은지심(compassionevole)의 마음으로 그들을 치유해 주신 것이다.

그럼 우리가 앓고 있던 병이 씻은 듯이 치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이 우리 안에 잔류하고 있는 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가? 단순히 강렬한 체험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의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것은 안식일의 경계를 넘어선 예수님의 자비(misericondia)와 측은지심(compassionevole)의 마음이 우리 안에 고통의 체험과 더불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이 우리 안에 잔류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 주위에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돌보라는, 함께 하라는 사명인 동시에 예수님의 자비(misericondia)와 측은지심(compassionevole)의 마음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병자들을 고쳐주라’ (루카 9, 2; 10, 9)고 당부하신 것처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에 동참하기를 바라고 계신다. 예수님 자신이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한 것처럼…….

<인천교구 김규엽 아우구스틴 신부>
  |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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