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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예수님의 복음화 사명 : 권위있는 가르침
조회수 | 2,177
작성일 | 06.02.03
오늘 복음은 지난 주일의 '권위있는' '새로운 가르침'에 대한 것을 명백하게 밝히는 것 같다. 오늘 복음에서는 시몬의 장모를 치유시켜주시고 마귀 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시면서 당신의 '복음화' 사명에 대해 강조하신다. "이 근방 다음 동네에도 가자. 거기에서도 전도해야 한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38절).

제2독서: 1고린 9,16-19.22-23: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미칠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열정적인 전교활동의 비밀이 무엇인지 말한다. 바오로는 다마스커스로 가는 중에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그가 체험했던 무한한 빛과 구원에 대한 감사로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6절). 그러면서도 바오로 사도의 복음선포는 거창한 말로써 이루어지는 소리로써 보다는 자기의 생활 자체로써 이루어진다. 제1독서는 병으로 인해 육체적 고통을 당한 욥의 체험을 묘사해주고 있으며, 이제 복음에서 예수께서 사랑과 연민으로 다가가 치유해주시는 분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온갖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많은 마귀들을 쫓아내셨다"(마르 1,34).

복음: 마르 1,29-39: 병자들의 치유와 예수님의 전도 사명

오늘 복음은 생동감이 넘치는 세 가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있다. 첫째 이야기는 베드로 장모의 치유 이야기이다. 예수께서는 그 부인이 열병으로 고생한다는 사실을 아시고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잡이 일으켜 열병을 고쳐주신다. 이 모습은 예수께서 생명과 구원을 베푸시는 자연스런 모습으로 구원과 사랑의 표지라고 할 수 있다. 즉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불행에서 건져주시기 위해 사람들 가운데 현존해 계신다는 사실과, 이미 '하느님 나라'의 권능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징표이다.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31절). 이것은 부인이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손님접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시중은 봉사를 통한 따름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여기서 '시중들다'라는 것은 마르코 복음에서나(15,41) 루가 복음에서나(8,3) 자신들의 재산까지도 바치면서 부인들이 예수님을 '따름'을 표현하는 말이다. 즉 베드로의 장모의 행동은 마음 상태의 표현으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게 봉헌된 사랑과 헌신의 행위이다. 참된 기적이란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지 감정적이고 선동적인 것을 추구하는 유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 번째 장면에서 즉시 나타나는데, "예수께서는 온갖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시며 자기 일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마귀들은 예수가 누구신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34절). 이 말씀은 당신이 베푸시는 기적을 통하여 이익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나타났고 선동적인 것을 추구하는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시고, 마귀들에게도 함구령을 내리시는데, 마귀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탄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현세적 메시아로 이끌려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마르코 복음의 '메시아의 비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성은 군중들이 생각하는 그러한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고통, 자아포기,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하느님의 계획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그 비밀을 완전히 이해하기까지는 함구령이 필요했던 것이다. "예수님의 신비는 오직 십자가상에서만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가 가는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그를 이해할 수 있다"(E. Schweizer, Il Vangelo secondo Marco, Brescia 1971, pp. 61-62).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모든 활동의 열쇠가 무엇인지를 제시해주고 있다. 그분은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와 일치하시며 그것으로 힘을 얻으시고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신다. "다음날 새벽 예수께서는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고 계셨다"(35절). 이 기도의 자세는 예수님의 업적을 보고 그 업적을 현세적 정치적으로 이해하려는 데서 위험하고, 또 그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이다. 이 유혹은 공생활 시작에서부터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것이다. 외딴 곳에서 기도하셨다는 것은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당신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힘을 얻고 빛을 구하기 위해서는 오직 성부와 더불어 머무셔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활동 계획을 하느님 아버지 앞에 다시 한번 점검하고 계획하기 위한 머무르심이다. 즉 그 기도는 당신의 활동과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기도이며, 도피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의무를 다하기 위한 기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분을 찾기 때문에 더 머물러 계셔달라고 청하는 시몬과 그 일행에게 예수께서는, "이 근방 다음 동네에도 가자. 거기에서도 전도해야 한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38절). 예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는 곳이 그분에 대한 호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가파르나움에 국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더 큰 희생이 요구된다 할지라도 다른 곳에도 구원의 복음을 선포해야만 한다. 이 모든 것이 예수께서 외딴 곳에서 홀로 바치는 기도를 통해서 당신 자신을 되찾고 성부와 자신을 연결해주는 신비롭고도 유일한 관계 안에서 당신의 사명을 더 깊이 깨달았다. 그래서 그분은 제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사명을 계속 수행해 나가실 수 있었다. 여기서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몰이해가 시작된다.

하여간에 예수님의 사명은 무엇보다도 복음선포이다. 구원이란 것은 하느님의 복음을 신앙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시작된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의 '복음화 사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렇게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찾아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며 마귀를 쫓아내셨다"(39절).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어떤 활동보다도 '복음화'가 우선적이어야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이 때문에 교황 바오로 6세께서도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계약이 성취된 기쁜 소식을 도시마다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두루 선포하는 것, 바로 이것이 예수께서 성부께로부터 파견된 자임을 분명히 드러내주는 사명입니다"(현대의 복음선교 6항).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예수께서 당신의 공생활 중 그렇게 많은 업적과 말씀으로 사람들을 가르쳤어도 항상 기도로써 하느님 아버지와 일치하시며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가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칫 행동주의에 잡혀서 기도를 게을리 하며 자신의 모든 활동이 기도라고 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기도가 동반하지 않는 활동은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없어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중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활동에 있어서 예수님과 같이 기도로써 시작하고 기도로써 마칠 수 있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고 도우심을 구하여야 한다.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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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오늘 예수님께서는 열병으로 누운 시몬의 장모를 비롯하여 갖가지 질병을 앓는 사람을 고쳐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치유의 기적은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이들에게 다가가 직접 손을 잡아서 일으켜 세우신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에게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고통 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 모두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환자를 만나다보니 인간이신 예수님은 몸과 마음이 지치셨으며, 휴식이 필요하셨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을 직접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친 몸을 이끌고 외딴 곳으로 가셔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치신 후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며 복음 선포의 의지를 불태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기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일치했고, 기도 중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힘을 얻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휴식을 취하여 힘을 얻기 위해 좋은 음식점을 찾아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거나, 좋은 온천이나 찜질방을 가기도 하고, 아니면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서 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주일미사를 거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성당에 나와서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만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곳인 ‘외딴 곳’으로 가셔서 기도를 하셨듯이, 우리가 정말로 쉬어갈 수 있는 곳은 성당이며, 하느님 품입니다.

미사를 봉헌하러 성당에 오는 나의 발걸음이 무거울 수 있습니다. 미사를 봉헌하면서 온갖 분심에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파견강복을 받고 성당을 나서는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주님 품에서 편안히 쉬어가며 복된 한 주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정훈(요셉) 신부
  |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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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복음을 선포하는 참된 목자

오늘 복음 말씀을 가만히 묵상하다 보면 절로 떠오르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십니다. 한국에 다녀가신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세계 각지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다니시는 그분의 모습이 연일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필리핀을 방문하셨고 곧이어 아프리카 방문을 계획하고 계신다니 참으로 그 열정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이웃이면서 세계의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향한 교황님의 눈길을 뒤따르다 보면 앞으로 그분의 행보가 어찌 이어질지 사뭇 기대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관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교황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됩니다. 우리는 교황님의 말씀을 곱씹고 되새기며 삶의 지표로 삼고 실천에 옮기려 애를 씁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교황님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기 때문입니다.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며 가르치시는 모습, 병들고 아파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치유하시며 사악한 마귀들을 쫓아내시는 모습, 이른 새벽 홀로 일어나 기도하시는 모습, 제자들과 함께 다른 이웃 고을을 찾아 나서시는 모습, 오늘 복음은 목자이신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시는 방법을 이 네 가지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정확히 이 네 가지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확실히 교황님은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그런데 더더욱 존경스러운 것은 교황님의 연세가 올해 팔순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팔순이면 이미 은퇴해서 남은 생을 조용히 정리하며 보낼 나이입니다. 긴 일정의 해외여행도 아주 부담스러워집니다. 그런데 교황님은 젊은 사람도 소화해내기 힘든 일정을 기꺼이 견뎌내고 계십니다. 어찌 힘들지 않으시겠습니까?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열정과 힘이 나오시는 것일까요?

아마도 세상을 향한 연민과 사랑이 남다르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이와 건강을 이유로 가만히 머물러 있기에는 세상의 아픔이 너무나도 절절하게 다가오기에 찾아 나서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황님의 그 마음과 열정이 너무나도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저 자신의 옹졸하고 게으른 모습을 스스로 질책하며 뉘우쳐 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온전히 제 마음으로 삼도록 다시 일깨워주시는 교황님께 새삼 감사를 드립니다.

<수원교구 이근덕 헨리코 신부>
  |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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