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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예수의 메시아적 사제 직분이 드러나는 나병 치유
조회수 | 2,216
작성일 | 06.02.10
제1독서

정(淨), 부정(不淨)을 구약의 제관에게 판결 받아야하는 정결례에 관한 규정이다. 인간의 질병과 죽음을 의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종교적 관점에서 해석했던 구약의 규정들이 오늘날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본디 야훼와의 계약 공동체로 출발했던 이스라엘이 점차 민족(혈연)공동체로 변화되면서 야훼신앙이 희박해 진다. 야훼신앙을 굳건히 지킬 필요성에서 성(聖)과 속(俗)을 엄밀히 구분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정결례 규정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현대인도 참 행복, 평화, 자유를 누리기 위해 종교적 신앙적 태도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제2독서

바울은 참 자유의 객관적 기준을 하느님과 이웃 안에서 제시한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의 이익"을 위해서 할 때, 예수께서 값을 치루고 찾아 주신 참 생명의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음과 공동체의 갈등도 극복할 수 있음을 가르친다. 이 자유의 축복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나누어주기 위해 그리스도처럼 '종'이 된 자신을 본받으라 권고한다. 고통 받는 이웃을 잊은 채 자기만의 기준과 풍요속에서 생을 즐기는 현대인들이 참 자유인인가를 성찰케 한다.

복음

예수께서 `측은지심`으로 나환자를 고쳐주신다. 일그러진 나환자의 모습에서 장차 다가 올 자신의 운명(고난 받는 야훼의 종)을 읽어 내신다. "스승님은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이 하실 수 있습니다" 나환자는 모든 것을 예수님 뜻에 맡긴 신뢰의 사람이다. 이것이 신앙인, 기도인의 자세요 모형이다. "내가 하고자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는 말씀의 능력으로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며 그분의 메시아적 사제직분(구원자이심)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나환자는 소외돈 사람의 총체이다. 인간에겐 자력으로 하느님 나라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는 나환자와 같은 비참함이 있다. 한편 우리 존재의 한 끝엔 하느님을 닮은 생명이 있다. 복음의 나환자 같은 청조한 `믿음의 눈`이 있을 때 하느님의 생명을 느낄 것이다.

나기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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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기적에로 초대합니다.

처음 나병환자와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나누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분들의 손은 거의 없거나 뭉그러져 있고 발가락도 거의 없습니다. 코와 귀가 뭉그러진 분도 많습니다. 그렇게 신체의 일부가 뭉그러지고 없어지는 동안 그 육신의 통증과 인간적인 멸시를 견뎌 내야하는 마음의 아픔을 생각하면 신체가 온전한 우리는 주님 앞에서 많은 것을 반성하고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나병환자들은 철저하게 멸시당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수천년 전 감염을 피하기 위해 이기적인 우리 인간이 세워 놓은 유대인들의 율법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참된 믿음으로 간구하는 나병환자를 치유하시는 기적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진리를 가르쳐주십니다.

첫째 예수님 만이 육신의 병과 마음의병 두 가지 모두의 참된 치유자심을 드러내십니다. 또한 멸시받고 천대받던 사람이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위대한 일을 하는 증거자로 변모됨을 가르치십니다.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선포하기 시작한 것은 육신적인 나병을 고쳐 주신 것 때문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엾게 여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랑을 통해 멸시받던 마음의 병까지도 치유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아직도 세상에는 몹쓸 악성 질병이 너무 많습니다. 또한 현대에는 마음의 상처와 병이 더 무서운 것이 되었습니다. 주원인이‘스트레스’에서 기인한 몹쓸 병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봉사적 돌봄과 간절한 기도를 통해 육신적 병의 치유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와 마음의 병 까지 치유되는 기적도 베풀어 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셋째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우리는 미래의 환자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위해 나에게 힘이 남아있을 때 병자를 간호하는 봉사의 시간을 가지라고 초대하십니다. 요즘 삶의 보람을 찾고 참 행복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나의 몸이 조금이라도 성할 때 시간을 쪼개어 가까운 병원 원목실 혹은 요양원에 찾아가 환자를 위한 자원봉사를 하시길 권합니다. 봉사를 위한 특별한 기술이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 기술이 없어도 좋습니다. 부족함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해드릴 수도, 머리를 감겨드릴 수도, 굳은 몸을 풀어 드릴수도, 이야기를 들어 줄 수도, 좋은 책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선교지를 전해드릴수도, 휠체어를 밀어 드릴수도, 심부름을 해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보람과 기적을 체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아멘

정운광 마태오 신부
  |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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