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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첫 만남의 결실
조회수 | 2,138
작성일 | 06.02.11
“그 치유 받은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기뻤던 것일까? 오늘 복음을 읽고 저에게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질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불치병을 앓던 사람을 치료하시는 기적을 들려주십니다.

물론 그 사람은 자신의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불치병을 치료하는데 좋다고 이야기만 하면 무엇이든 했을 것입 니다. 그러던 중에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은 당연히 있었겠지만 ‘그래도’라는 희망과 믿음이 더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쫓아 다녔고 마침내 예수님께 자신의 상처를 보여드릴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의 예상과 믿음대로 예수님의 손이 그의 상처를 건드리자, 그의 불치병은 곧 치유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기적을 세상에 알리지 말것을 당부하셨지만, 치유의 기쁨은 예수님의 이러한 당부를 아무런 소용없게 만듭니다. 그 사람은 너무나 기뻤기 때문에 자신의 병이 예수님을 통해서 치유되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오늘 복음 속에 불치병을 치유 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세례를 받을 때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그리고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신 기쁨이 이런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당이라는 곳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그리고 성당 안에 걸려있는 십자가와 성체를 모시는 감실을 보고는 모두가 낯선 것들이어서 두려움과 낯선 느낌이 컸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 나의 나약함을 채워줄 어떤 신비로운 분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고 나서는 ‘이제 정말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뿌듯함과 평화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고, 나아가 신앙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살자.’는 결심도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신기하게도 예수님을 2000년 전에 만났던 불치병을 앓던 그 사람이 가졌던 ‘첫 인상’과 2000년 후에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수님께 대한 ‘첫 인상’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공통된 첫 인상은 기쁨, 희망이며 이런 기쁨과 희망에는 항상 새로운 결심이 뒤따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쁨과 희망을 준 예수님과 첫 만남, 우리 삶에서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신 우리와 예수님의 첫 만남의 결실은 어떠합니까?

오늘 복음에서 불치병을 치료받은 그 환자가 어떻게 살아갔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가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갔는지 아니면 오늘 복음 이야기를 끝으로 예수님과 인연이 끝났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은 바로 오늘 복음의 이야기 다음 장을 써내려가는 과정에 놓여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장의 이야기는 다양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기쁨으로 채워 나갈 수도 있고 또 시련과 눈물로 채워진 장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고 그래서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 모두가 예수님과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면 삶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와 기쁨 그리고 평화를 겸손하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추성훈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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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함은 결과를 만들어준다!

1980년대 노사분규가 극심할 때 어느 대기업에서 노사분규를 겪을 때의 일입니다.
전 회사 임원 고위 간부들이 나서서 노사합의 타결을 이루려고 노력하였지만, 타결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회장이 나서서 타결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때 회사 사장이 회장에게 묻습니다.

“회장님, 회사 임원인 우리들도 최선을 다했지만 타결을 이루질 못했는데 어찌하여 회장님이 나서니 타결이 됩니까?” 하고 물으니 회장은 대답하기를
 
“그것은 절실함의 차이입니다. 사장님, 당신은 이 회사 외에 다른 회사로 떠나갈 수도 있지만, 나는 갈 곳도 없고 이 회사가 전부이기에 해결 해야만 하는 절박함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말씀과 제1독서를 보면 나병(한센병) 환자가 주님께 치유의 은총을 입는 장면을 만납니다.

제1독서에서 보면 나병환자, 피부병 환자들은 스스로가 환자임을 알리고 가족과 이웃, 사회를 떠나야 했고, 철저하게 소외된, 버려진 사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병으로 고통 받는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인데, 가장 가까운 가족, 이웃으로부터의 소외 내지 배척은 참아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나병 환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고 인격체인데, 얼마나 가족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싶었는지 쉽게 짐작이 갑니다.

게다가, 스스로 건강해 질수 없다는 절망감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은 정말 큰 희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 자체이신 분이셨으니 그토록 절실하게 당신의 은총을 갈망하는 나병환자를 외면하실 수 없었고, 나아가 나병을 치유해 주시고, 잃었던 건강뿐 아니라 잃었던 가족, 이웃 생활터전 까지 되돌려 주십니다.

바로 나병환자의 절실함이 주님을 찾게 만들었고, 그 주님을 찾음은 치유의 은총과 나아가 새 삶을 가져왔습니다.

지금 우리 자신과 교회, 사회 모두는 복음속에 나오는 나병환자와 같은 환자들 일지 모릅니다.

얼마나 이기심과 자만, 무관심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이고, 교회이고, 사회입니까?

언제 우리가 절박하게 주님의 은총을 갈망했는지 자문해 봐야 하겠고 왜 요즘 교회가 사회에 희망을 주지 못하는지도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교회 문턱 넘기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유를 물어봐야 할 때이고 나로 인해 상처받고 소외되어 가는 이웃들이 없는지도 살펴 보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주님은 임마누엘(함께 하시는 주님)로 우리 안에, 교회 안에, 이 세상으로 오셨고, 우리 안에서 함께 하시면서 희망과 새 삶을 열어 주시는 분이 십니다.

복음속에 나오는 나병환자처럼 절실함을 가지고, 주님을 찾고 주님 은총을 우리들의 것으로 얻어 누려 가도록 합시다.

이응욱 사도요한 신부
  |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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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의 마음

나는 죄인이다.
나는 천벌을 받은 죄인이다.
천벌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없다.
천벌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고 무시하고 피한다.
천벌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혼자서 살아야 한다.

외롭다. 늘 혼자이다.
아무도, 어느 누구도 나에게 다가오질 않고 말조차 걸어주질 않는다.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살아본 게 언제였던가?
혼자 사는 게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외롭다.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

그분은 나를 도와주실 수 있으실 텐데.
그분은 나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 주실 수 있으실 텐데.
그러나 두려워서 그분께 다가서기가 힘들다.
숨어서 엿들은 말로는 오늘 그분이 이 근처로 오신다고 하는데, 너무나도 두려워서 그분께 다가서기가 힘들다.

그분이 저기 오신다.
다가가야 한다.
저분께 다가가야 한다.
저분만이 나를 원래대로 되돌려 주실 수 있고, 나를 다시 가족에게 돌려보내 주실 수 있다.
저분께 다가가야 한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죽을 용기를 내서 그분께 다가갔다.
그분 앞에 서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분께서 내게 손을 대시고 나를 고쳐주셨다.
그동안 아무도, 어느 누구도 나에게 말조차도 건네지 않았는데, 그분은 나에게 손을 대시고 나를 고쳐주셨다.
그분께서 내게 손을 대시고 말씀하시자 그동안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이제 깨끗하다.
나는 이제 다시 사람들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죄인이었던 나병 환자를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고 다시 사람들 속으로 되돌려 보내주셨습니다. 그를 품에 안고 받아들이는 것은 이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서준영 요한 신부
  |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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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나의 못난 모습을 주님께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사람은 개인으로든 집단으로든 남의 티끌은보아도,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않으려는 습성을 갖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야 하는 각박하고 치열하게 돌아가는 지금에서 자신의 못난 모습을 인정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 독서와 복음에 나오는 한센병 환자는자신을 “부정한 사람”으로 외쳐야했고, 더구나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하는 힘든 삶을살고 있음에도 예수님께 드리는 그의 용기와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라는 이 말 한마디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고통스러운 삶의 절박한 상황을 탈피하고 싶은 병자의 간절한 소망과 주님의 자비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김을 담고 있습니다. 한편, 그를 만난 예수님의 마음은 “측은한 마음”, 버려지고 소외된 인간에 대한 연민과 고통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 대한 그의 신뢰와 신앙의 자세는 치유라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렇게 해주겠다. 깨끗하게 되어라.”하시며 따뜻한 손길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아버지의 뜻을 예수께서는 행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병자는 자신의 모습을 진실로 보여 드렸고, 맡겨 드림으로써 긴긴 고통에서의 해방을 맛보았으며, 그는 그 기쁨을 예수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의일을 널리 선전하며 퍼트림으로써 드러냅니다.형 제자매 여러분, 우리 자신 역시 못난 모습을 갖고 있고,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오늘복음에서 만난 한센 병자의 자세와 태도를 가져봅시다. 그러면 주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기쁜 삶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요,복음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올 한해 우리도 주변에서 소외 받는 이들이 없는지 살펴보고,따뜻한 배려로 함께 기쁜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대구대교구 시성복 바오로 신부>
  |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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