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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조회수 | 2,310
작성일 | 06.03.10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에 관한 기사입니다. 오늘 복음이 알려주듯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라고 마르코 복음은 전합니다.

그런데 비단 모습만이 변하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모세와 엘리야는 율법과 예언자를 상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따라서 마르코 복음 사가는 변모 기사를 통해 구약과 신약이 함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것임을 알려줍니다.

사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예수님 부활의 표지입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감당하셔야 할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이 어떤 영광을 가져다줄지에 관한 표징인 것입니다. 이제 곧 모든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켜줄 고귀한 희생이 있을 것이고, 이 희생은 단지 희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부활로 이어질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중반부에는 다음과 같은 증언도 실려 있습니다.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소리가 났다.”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것도 아버지의 뜻이었고, 수난과 죽음이라는 참혹한 현실을 감수하신 것도 오직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주시려는 가르침만을 전하셨습니다.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이다”(요한 12,50).

예수님은 필립보에게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요한 14,11)라고 가르치시며,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라고 확언하십니다. 아울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요한 14,13)라고 단언하십니다. 결국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죄 없으신 분이 온갖 모욕과 조롱, 수난과 죽음을 몸소 감수하시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영광과 존귀의 관”(히브 2,9)을 씌우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예수님의 모범을 본받는다면, 그 영광도 함께 받을 것임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로마 8,17)라는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형제자매 여러분, 혹시 한순간에 사라질 헛된 영광을 쫓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된 영광,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주시려고 마련하신 영광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수많은 장애물들이 우리의 눈앞에서 참된 영광을 가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로마 8,18).

하느님의 자녀들은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영원한 삶을 초대받았고, 살 수 있으며, 마지막 날 부활의 영광에 함께 하는 것을 희망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부활의 영광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현실 안에서 예수님처럼 주어진 십자가를 묵묵히 짊어짐으로써 마침내 부활의 영광의 문을 활짝 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활짝 웃는 얼굴로 영광의 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이상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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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받는 우리는 사랑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가려낸 제자들만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십니다. 그 곳에서 눈부시게 모습이 변하시고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십니다. 높은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며, 새하얗게 빛나는 모습은 하느님의 영광을 뜻합니다. 인간이 신 모습에 가리어져 있던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이 감격하였고 또 두려웠습니다. 두려우면서도 그대로 머물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아들이니 그 말을 들으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들려왔고, 그들은 산을 내려왔습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세 번 예고하시는데, 이 일은 첫 번째 수난예고 다음에 있었던 일입니다. 인간의 나약함까지 선택하여 사신 예수님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회의와 번뇌를 겪으시며 깨달음과 결단으로 당신의 소명을 선택해야 하셨는데, 마르코 복음은 그 과정을 잘 묘사해 줍니다.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사십일을 광야에서 유혹을 겪으셨고, 세례를 통해 아들로서의 부르심을 받으셨다면, 오늘의 복음을 통해서는 당신의 소명을 완성하기 위해 겪어야 할 수난과 죽음을 포함한 마지막 결단을 시작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이는 게쎄마니의 기도와 십자가 죽음으로 완성이 됩니다.

예수님의 소명은 하느님이 인간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는지를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당신 목숨을 내어 놓을 때 완성이 됩니다. 하느님은 외아드님을 내어주시고, 외아드님은 죽기까지 순종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누구신지를 깨달음으로써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달으신 것처럼, 우리도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만 그에 맞게, 귀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주장합니다. 인간이란 천박하고 이기적인 존재여서, 자기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일생동안 끝없는 경쟁 속에서 각박하게 허덕여야하고, 경쟁에서 밀려나면 아무 쓸모없는 낙오자가 될 뿐이라고. 그러나 복음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우리는 이미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며, 서로 사랑하고, 감사하고, 용서하고, 나눔으로써 영원한 삶을 얻도록 초대받은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똑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이는 증오와 다툼에 자기 일생을 소비하고, 어떤 이는 그 삶을 값지게 나눌 줄 압니다.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 사람만이 사랑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리고 돌아가신 추기경님이 삶과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는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귀한 존재입니다. 행복합시다. 감사합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합시다.

변승식 요한 보스코 신부
  |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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