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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조회수 | 2,179
작성일 | 06.03.10
오늘은 사순 2주일이다. 오늘 성서말씀의 주제는 앞으로 일어날 일, 곧 부활의 영광을 앞당겨 보여 주고 있다. 사순절은 예수께서 걸어간 고행의 길을 매년 전례를 통해 반복하면서 우리도 그 길을 함께 가는 연습을 하는 때이다. 고행의 첫 걸음과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오늘의 전례는 고행과 수난의 결실로서만 주어질 부활의 영광을 앞당겨 체험하게 함으로 중도에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지치고 힘들더라도 끝까지 항구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제자들은 3년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그분의 인간적인 면을 보아왔다. 우리들처럼 배고파하시고, 피곤해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슬퍼하시고 분노하시는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아왔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눈부시게 변한 그분의 모습을 보고 사도 베드로는 너무 황홀하여 그곳에서 영원히 머물 궁리를 하였다. "주님, 우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여기에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을 모시고, 하나는 모세를, 하나는 엘리야를 모셨으면 합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그때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복음은 전한다.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 어린들에게 흔히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하고 당부한다. 부모님의 속을 썩혀 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예수님처럼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며 나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내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그리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그분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을 하는데 예수님을 위하여, 그분을 슬프게 해드리지 않기 위하여, 혹은 그분의 속을 썩여 드리지 않기 위하여 꾹 참고 있는가? 반대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어도 예수께서 싫어하시기 때문에 포기하는 일이 있는가? 그분이 내 삶의 중심에 있는지? 아니면 내 머리속에, 기억 속에 계시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내 삶의 중심까지는 들어와 계시지 못하는 그런 분은 아닌지? 나의 삶이 그분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분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신앙인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그분이 말을 들지 않는 신앙인은 속이 빈 강정과도 같은 껍데기 종교인이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분을 욕되게 하는 사람임을 명심하자. 신앙생활은 취미생활이 아니라 나의 인생을 뒤바꾸는 새로운 삶임을 잊지 말자.

우희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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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된 신앙의 가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선종 이후 많은 이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추기경님의 따뜻하고 소박한 삶이 그들의 마음에 다시금 신앙의 불을 지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일반 신자들에게 신앙의 깊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예비자 교리를 가르치면서도, 신자들을 만나면서도 신앙 생활에 대한 외적인 모습을 가르쳐주기는 쉬워도 근본적으로 왜 하느님을 찾아야 되는지, 신앙이 가져다주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데에는 참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러한 과정이 없다면 생활의 어려움이나 여러 문제에 봉착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향은 자연스레 냉담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성당 안에서 주일학교 교사로서 활동을 열심히 했던 여러 젊은이들이 주일학교 교사를 그만 두면서 성당까지 그만 두는 경우도 봉사만 했지 그 안에서 신앙적으로 그 봉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깨닫지 못해서 성당까지 쉬게 되는 것이다.

즉 신앙은 체험되지 않으면,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면 아무리 외적인 신앙의 모습을
잘 가꾸어 나가더라도 그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모습은 부활에 대한 모습과 죽음이 끝이 아니다라는 체험된 믿음을 갖게 해주시기 위해서 당신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있다.

세상 안에서 아무리 깨끗하게 만들어도 그렇게 만들 수 없는 깨끗함을 지니신 예수
님의 모습,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가장 훌륭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만나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평소에 하셨던 죽음의 의미와 하느님 나라의 의미를 내면화 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사순시기를 살아가면서 외적인 신앙생활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 체험된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타볼산의 예수님의 모습을 마음 속에 품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희망을 두고 보속과 회개의 시기를 의미있게 보냈으면 좋겠다.

정윤식 고르넬리오 신부
  |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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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사도는 타볼산에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예수님의 변모된 모습,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거룩한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그때 구약의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고 성부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모세는 구약시대 율법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엘리야는 모든 예언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리하여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다는 것은 예수님에게서 구약의 율법과 그 동안의 모든 예언의 말씀들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거룩하신 예수님의 본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럼 왜 이렇게 거룩한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일까? 예수님은 자신이 장차 수난과 죽음을 당하실 것을 미리 아시고 연약하고 흔들리는 제자들에게 어떤 확신을 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러한 예수님의 의도와는 달리 특유의 급하고 경솔한 행동을 보인다. 베드로는 겁에 질려서 엉겁결에 예수님께 말한다. “여기에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예수님을 하나는 모세를 하나는 엘리야를 모셨으면 합니다.”하고 말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변모된 모습이 너무나 황홀하기도하고 두렵기도 해서 자신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야기한 것이다. 베드로의 이 말에는 이 황홀하고 행복한 순간에 안주하고 싶은 욕구가 숨겨져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앞두고 계신다. 예수님은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 전에 반드시 고난의 길을 걸어 가셔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지금의 이 영광에 그냥 머물고 싶었으며 예수님이 가실 수난의 길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베드로의 이런 심정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고통과 인내의 시간보다는 영광의 시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학생이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에서 성공하고 부자가 되길 원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허리띠를 졸라 매고 최선을 다해서 일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꺼려하면서도 영광의 시간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부활은 반드시 수난과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영광은 반드시 고통의 쓴잔을 마신 사람에게 돌아온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죽음의 길로 들어가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달콤하고도 황홀한 위로이다. 믿음이 부족한 우리에게도 그런 위로를 달라고 청해보면 어떨까?

김명현 미카엘 신부
  |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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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우리의 목적지는 희망입니다.

우리가 어떤 곳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목적과 방향이 정확하지 않다면 우리는 가고자 하는 곳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건 우리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우리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사순 제2주일을 맞이하면서 듣게 되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은 우리에게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유대 묵시문학의 관점에서 볼 때, 흰옷은 세상의 끝에서 천상의 존재들이 입는 옷입니다. 곧 종말론적 세상에서 완성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그 모습은 그것을 목격한 제자들과 또한 지금 여기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우리가 다다라야 할 부활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곧, 사순시기를 보내며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인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부활의 모습을 미리 목격했다는 것, 이는 우리 신앙에 있어서 희망의 확신이 됩니다. 인간은 희망 없이 결코 살수 없습니다. 우리 구원의 희망에 대한 확신이 바로 이 부활이고, 이 변모 사건으로 인해 우리의 희망은 그것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확신시켜 줍니다. 희망은 인간을 하느님 앞으로 더욱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고, 희망을 통해 인간은 구원됩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갖게 되는 희망은 이 세상이 주는 희망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소피의 세계’로 유명한 저자인 요슈타인 가아더가 쓴 다른 책 ‘오렌지 소녀’를 보면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아들이 철이 들 무렵 읽을 수 있도록 편지를 준비하고, 그 편지를 통해 아들에게 여러 가지 것들을 가르쳐줍니다. 그 안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있을리 없는 것들을 부르는 고유한 이름이 있는데, 그것의 이름은 바로 희망이다.” 물론 이는 세상을 비관적으로 가르치는 말이 아닙니다. 있을 리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더 소중하고, 그래서 더욱더 그것을 찾아가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이 세상 안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희망의 모습입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희망을 우리는 신앙 안에서 갖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사도들은 산에 올라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그 모습을 목격하였습니다. 우리역시도 지금 사순이라는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이 사순이라는 산의 정상에 바로 우리의 궁극적인 희망인 부활이, 그리고 그러한 부활을 보여주시는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회개와 은총의 시기라는 이 사순시기를 보내면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의 삶이라는 바다 안에서 등대가 되고 등불이 됨을 기억하시면서 이번 한 주간 기쁘게 생활하실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아멘

<대전교구 양웅석 필립보 신부>
  |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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