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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조회수 | 2,163
작성일 | 06.04.21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빼죽이 얼굴을 내민 새싹들을 보면, 작년 사순 때인지 언젠지 해바라기 씨앗을 나누어 주며 각자 집에서 성장 과정을 관찰하라고 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다른 이들은 벌써 싹이 나와 많이 자랐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데, 왠지 아무런 소식이 없는 나의 씨앗을 못 믿어 ‘혹시 거꾸로 심어 잘못되지 않았나’하는 마음에 씨앗을 다시 파 보았지요.

의심한 며칠 후 그 가냘픈 줄기로 무거운 해바라기 껍질까지 업고 흙을 뚫고 싹을 틔워준 그 씨앗에 감탄하고 미안해하며 기다릴 줄 모르는 나의 급한 성격을 반성했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중국에서 함께 지냈던 자매님으로부터 전자메일 한 통을 받았다. 잊고 있었던 작년 사순 시기의 일이 생각났다. 해바라기 씨앗을 심고 부활을 함께 기다리던 시간…. 메일에서 자매님의 부활체험이 흠씬 묻어난다.

중국생활 몇 년이 내게 남긴 것은 어설픈 중국말 몇 마디와 ‘의심’이다. 가끔은 중국에서의 생활이 기억나고 웃음이 난다. 그러나 그 중국생활은 결정적으로 어떤 물건을 보아도, 어떤 사람을 보아도 일단은 믿지 않는 나를 만들었다. 귀국해서도 한동안 입에 붙어있던 말이 “진짜야?”이다. 물론 지금도 즐겨 쓰지만….

오늘 복음에서 만나는 토마스 사도를 보면서 웃음이 난다. 중국생활을 하셨나?

토마스 사도의 확인하려는 몸짓은 ‘열정’에서 나온다. 훗날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셨다고 하니 토마스 사도의 열정은 대단하셨다. 믿음은 열정으로 키우는 것이다. 주님께서 내 마음 안에 허락하신 씨앗을 애써 돌보며 싹이 나서 열매를 맺도록 돌보아야 한다. 내 마음은 축축하고 캄캄한 전형적인 흙을 닮았다. 의심이 넘쳐난다. 이런 내 마음에 주님은 믿음의 씨앗을 허락하셨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된다. ‘불신’을 뚫고 올라오는 그 싹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께 대한 희망과 열정에서 가능하다.

나는 다시 부활에 대한, ‘주님을 만나리라’는 씨앗을 내 마음에 심는다. 스승께서 허락하신다는 진정한 행복을 맛보기 위해…. 기회만 되면 정말로 만져보고 싶고, 만나보고 싶다. 진정한 체험을 하고 싶다. 예수님을 뵙고 기뻐했던 제자들 속에 있고 싶다. 그리하여 모두에게 기뻐 소리치고 싶다.

“주님을 뵈었소”

김종남(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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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주님의 선물: 참된 친교

전통적으로 부활2주일은 사백주일이라 하였다. 부활 때 흰옷을 입고,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팔일 간의 축제를 지낸 후 이 흰옷을 벗는 날이었다. 그래서 오늘까지는 부활의 축제를 지내고, 그 의미를 새기며 부활의 증거자로 살아가기를 결심하였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내용을 보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열매' 또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복음: 요한 20,19-31: 토마의 불신앙

오늘 복음에도 역시 안식일 다음날이라고 한다. 이것 역시 주간 첫날이며, 새로운 창조의 날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날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서시며 그들에게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인사하신다. 그리고는 제자들을 파견하신다. 무엇을 위해서인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사명을 주시어 파견하신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그리스도 즉 구원자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다. 그분이 참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이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내 쉬시며 "성령을 받아라!"고 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처음 창조하실 때에 진흙으로 인간을 빚어 만드시고 그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셔서 생명체가 되게 하셨다. 이제 예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창조물이 되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신다. 이는 새로운 창조를 이루시는 성령이시다. 성령으로 새로이 창조된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죄를 사하는 권한을 받는다. 우리가 행하고 있는 고해성사가 여기에서 온 것이다.

예수께서 나타나신 자리에 토마가 없었다. 토마라는 뜻은 본래, "하느님은 완전하시다"라는 뜻이다. 완전한 것만 좋아하는지 토마 사도는 쉽게 믿으려하지 않는다. 보아야 믿겠다고 하다가 결국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고백한다.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다.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며,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게 된 신앙인들의 고백이라고 보아야 한다. 오늘의 요한복음에서도 "보고 믿는다"라는 형태가 나온다. 그들은 믿음의 제1세대로서 우리에게 확실히 증언하기 위하여 보아야 했고, 증언을 하여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증언을 듣고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앙은 단지 믿으면서도 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선물은 부활이 예수님께 새 생명과 권능을 충만케 해주어 새로운 현존형태와 활동방법을 부여하였다. 이 같이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동일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모습의 당신 자신을 보여주심은 주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또한 그들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이라고 본다.

제1독서: 사도 4,32-35: 한 마음 한 뜻

부활을 체험한 초기 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신도들이 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32절) 자기의 재산을 모두 공동으로 사용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나타난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34절)고 전하고 있다. 완전한 나눔이 그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믿음'의 결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 믿음은 주님의 부활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또 성장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일치함으로써 모든 형제들과 친교를 이루게 되고, 또한 자신 안에서 새로운 생명과 같은 힘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빈곤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돕고자 하는 자유로운 마음가짐이다.

제2독서: 1요한 5,1-6: 하느님의 자녀는 누구나 다 세상을 이겨냅니다

이제 제2독서에서는 1독서의 주제를 다른 형태로 다루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제 구체적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할 의무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근본적인 요구로 제시하고 있다. 즉 믿음을 통해 우리와 그리스도 사이에 이루어지는 '친교'에는 우리와 우리 형제들 사이의 관계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자녀를 사랑합니다"(1절). 이것은 의미가 깊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하느님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을 같은 것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2독서를 맺는 구절은 우리를 부활의 충만한 분위기로 이끌어주고 있다.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수난의 피를 흘리신"(6절) 그리스도께 대한 이야기는 로마 군인의 창으로 열려진(요한 19,34)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왔으며, 지금 이 순간에는 부활로써 새로운 생명을 얻으신 그리스도의 결실로서의 세례성사(물)와 성체성사(피)를 통해 구원을 이루어주는 물과 피에 대해 암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오늘 우리는 부활팔부 축일을 지내고 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선물'과 '결실'로서 주님의 공동체 안에서 진정으로 하나 되어 친교를 그분 안에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믿음이라는 선물이 진정한 사랑의 나눔으로 드러나야 하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나온 당신의 신부인 교회 안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성령 안에서 믿음을 고백하며, 구체적인 삶으로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은총을 구하면서 이 미사를 봉헌하자.

조욱현 신부
  |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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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시기를 잘 보내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어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시는 이 시기에, 우리는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 삶의 중심에 무엇을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듣습니다.

독서에서 우리는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삶을 엿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매일 한마음으로 성전에 모였고, 이집 저집에서 빵을 나누었으며, 음식을 함께 나누는 가운데 하느님을 찬미했습니다. 바로 하느님을 중심에 모시고 이웃들과 한마음으로 나눔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오늘 복음에서 전해주듯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시어 평화를 빌어 주시며 그들에게 굳은 믿음을 심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아직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은 골방에서 숨죽여 지냅니다. 그들의 몸과 마음은 이미 모든 것들로부터 닫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닫히고, 막혀 있는 그들 마음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겪으셨던 고통과 십자가 상처를 부끄럼 없이 제자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처를 통해 당신 자신이 그들에게 믿음의 대상이 되고 싶어 하십니다. 또한 그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십니다. 제자들에게 있어 설령 당신을 따르는 길이 박해와 시련의 연속일지라도, 그들 안에 당신이 늘 함께 계심을 잊지 않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토마스를 위해 다시 한 번 나타나시어 먼저 그를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그를 믿음에로 이끌어주십니다. 이에 토마스는 기쁨에 찬 목소리로 고백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의 부활로, 당신의 평화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 삶의 중심에 당신이 자리하기를 바라십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예수님이 계시기는 한 거야?”하는 의심을 할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의심은 삶의 시련과 함께 옵니다. 그 순간 우리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잠근 제자들의 모습과 같이 모든 마음의 문을 걸어 잠급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닫힌 모든 문을 활짝 여시고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그분은 의심 많은 우리에게 오히려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 모두 신앙인으로서 우리 삶의 중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해 봅시다. 그리하여 돈, 명예, 성공이 아닌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중심에 두어, 제2독서의 말씀과 같이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와 축복을 받는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아갑시다.

이성호(스테파노) 신부
  |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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