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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남을 위해 내 몸을 쓰게 하려고
조회수 | 2,214
작성일 | 06.04.22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하기 전 수 주 동안 교황의 `입' 역할을 해온 레오나르도 산드리 대주교는 주님 자비주일 미사에서 교황이 남긴 마지막 기도문을 대독합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기쁜 부활의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말씀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에 사도들 앞에 나타나셔서, 부활하신 뒤에도 남아있을 정도로 고통스런 수난의 표시인 '그 분의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주셨다(요한 20, 20절)'고 강조합니다. 주님께서 8일 후에 이를 믿지 못하는 토마 사도에게 직접 만져보게 하셨던 저 영광스러운 상처들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성자를 주신(요한 3, 16절)'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냅니다.
  
이 '독생성자를 주시기까지'한 사랑의 신비가 오늘 주님 자비주일 예식의 중심입니다.

사랑은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 놓으면 손해가 되고, 속이 쓰리고 아플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결과는 기쁨과 평화입니다. 사람은, 사람은 내어 놓을 때 행복해지게 만들어 졌어요. 왜 그렇게 만들어 놓았느냐고 투덜거려도 소용없지요. 그러니 생겨먹은 대로 살아야 합니다. '남을 위해 자기를 내어 놓는 것' 이것이 전부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어시장 이야기'에서 그랬지요.

하느님이 맡기신 우리들의 임무를 다하여 내 몸을 남을 위해 바쳐 일하면, 저절로 영혼은 꽃처럼 곱게 피어난단다. 남을 위해서 내 몸을 쓰게 하려고, 하느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낸 거야. 보이지 않는 영혼에다가 조기는 조기 모양의 옷을 입히고, 명태는 명태 모양의 옷을 입혀서 말야.

남을 위해 내 몸을 쓰게 하려고, 하느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냈어요. 우리는 모두 남을 위한 존재입니다. 하느님은 주십니다. 우리의 삶을 사람들과 나눌 만큼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나누십시오. 억지로라도 그렇게 하십시오. 그래야만 하느님을 만납니다. 그러나 다 쓰고 남은 찌꺼기는 안 됩니다. 가장 좋은 것을, 최고의 것을 내어 놓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재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도 미쳐야 합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일주일에 한번 성당에 와서는 달랑 '천원'을, 혹은 '몇 천원'을 봉헌이라고 내지 마세요. 그래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농담거리로 만들지 마십시오. 내가 믿고 있는 종교를 희극으로, 연극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지요. 거지에게도 '천원'을 내미는 '간' 큰 사람은 없어요. '만원'은 줘야지 간신히 욕이나 안 얻어먹어요. 그러나 대부분 하느님은 '거지'취급도 받지 못합니다. 아시지요. 겨우 '돈'이야기가 아니라는 거... .

세상에서의 삶을 허락한 이유를 생각합니다. 아직도 주지 못하고 쌓아 놓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몇 번의 상처 때문에, 비난과 험담 정도에 마음을 닫았던 못남이 부끄럽습니다. 아드님을 내어 주시면서 나를 살리셨으니 그분을 위해서 무엇이 아까울까요. 중천에 떠 있는 달처럼 내어줌으로 내 둘레를 환하게 비추고 싶습니다.

김찬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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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안식일 다음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다녀가신 후 마침 그 자리에 없었던 토마스는 동료 제자들의 이야기를 전혀 믿지 못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라고 토마스에게 알려주자, 그는 오히려 동료들을 비웃으며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보고 그 못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했습니다. 여드레 뒤에 이번에는 토마스까지 있을 때에 예수께서는 다시한번 나타나셔서,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제야 토마스는 예수님 앞에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께서는 토마스에게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이 씌여진 당시 사람들은 인간이 죽었다가 다시 육으로 부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1세기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예수께서 동정녀에게 태어나지도 않았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지도 않았다는 이단사상을 퍼뜨리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단사상을 바로 잡기 위해서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께서 육적으로 부활하셨음을 토마스 사도 이야기를 통해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의심 많은 토마스" 이야기에서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즉, 믿음의 반대는 의심이 아니라 무관심한 태도라는 가르침입니다. 흔히들 신앙은 무조건 믿는 것, 덮어놓고 믿는 것, 따지지 말고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토마스처럼 따지고 또 따지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회의에 빠지고 또 빠지고 하면서 이룩된 신앙이야말로 더 값진 신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얻어진 결과보다 뼈를 깍는 아픔을 겪고서 얻어진 결과가 더 아름다운 것처럼, 신앙도 의심과 회의와 갈등을 겪고서 얻어질 때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반대는 의심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이 부활하셨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태도라 하겠습니다. 물론 오늘 복음이 주는 가장 귀중한 교훈은 부활이란 보는 사람들의 차지가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차지요, 보고서 믿는 것도 좋지만 보지 않고서도 믿는 이들이 복되다는 말씀입니다.

유충희 신부
  |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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