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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조회수 | 2,486
작성일 | 06.05.19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생명 안에 살 수 없고, 또 그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들려줍니다.

1.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계명을 지켰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여라.” 입니다. 이 계명은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이기도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듯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라고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스스로 목숨을 바쳐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할 이유는 계명을 지키지 않고서는 우리의 행복도, 참 기쁨도 맛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세속에서 말하는 계율이나 법규 같은 것이 아니라, 참 생명에 참여하는 길임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2. 사랑은 나누는 것

“산이 많아 눈도 많고 추위도 대단한 스위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지독스레 추운 겨울 어느 날 후미진 산을 넘어가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한참을 가다가 길에 쓰러져 있는, 그대로 두면 죽게 될,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힘들게 산을 넘고 있었기 때문에 힘이 빠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 중 하나는 자신만을 생각하여 혼자서 먼저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은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어 그 사람을 등에 업고 갔습니다. 한참 후 혼자 갔던 그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지독한 추위에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죽어가던 사람과 그를 업고 가던 사람은 서로에게 열을 나누어 주었기에 추위를 이기고 무사히 산을 넘어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베푸는 것(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사랑은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는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이 사랑을 함께 하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곧 생명을 나누어 주시기 위해 아드님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다고 들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것을 나누려는 마음으로 사랑하며 생활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찬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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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밖엔 난 몰라

강론에 이런 글 써도 되나하고 잠시나마 망설였습니다. 왜냐하면 “강론은 무게가 있어야지”라는 저만의 고정관념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떨쳐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의 강론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강론제목 어디선가 들어 본적 있으시죠? 그렇습니다. 가수 심수봉의 대표적인 히트곡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가수 중 한 사람이 바로 심수봉입니다. 익히 아시는 것처럼 심수봉 노래의 특성은 독특한 음색, 한이 서린 음성,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진솔한 가사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밖엔 난 몰라” 이 곡 역시 심수봉의 특성, 끼를 마음껏 펼친 곡이라 생각됩니다. 가사 중 1절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 할꺼야. 얼굴도 아니 멋도 아니 아니 부드러운 사랑만이 필요 했어요. 지나간 세월 모두 잊어버리게 당신 없이 아무 것도 이젠 할 수 없어 사랑밖엔 난 몰라.

오늘 제2독서에서 요한은 목 놓아 외치는 듯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말입니다.

오늘 복음11절에서도 요한은 주의 메시지를 마찬가지 심정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 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 하여라.” 오늘 말씀의 중심 내용은 사랑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저는 이같이 응답하렵니다. 사랑밖엔 난 몰라. 몰라. 몰라......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냐? 그것은 바로 사랑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두 글자는 참으로 위대한 글자입니다. 인간에게 내려주신 하느님의 선물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인간에게서 사랑을 제거하면 공(空)과 무(無)와 허(虛)로 돌아 갈 것입니다. 우리가 왜 허무주의에 빠지는가? 사랑의 대상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이 넓은 세상에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는 이가 없고 또 아무도 내가 사랑할 대상이 없을 때 우리는 허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 인생에 살맛이 있고, 사는 기쁨이 있고, 사는 보람이 있고, 사는 가치가 있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오늘 강론을 마치면서 이 노래가 들리는 듯합니다.
사랑밖엔 난 몰라. 몰라. 몰라......

정삼덕 베네딕토 신부
  |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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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관계가 깊어서 사랑하는 것일까요? 사랑해서 관계가 깊어지는 것일까요?’예 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를 통해 그 답을 알려주셨습니다. “사랑할 이웃이 누구인지 찾기보다 사랑의 실천을 통해 이웃이 되어주어라.” 또한 오늘복음 말씀처럼 당신 친히 우리를 친구로 뽑으시어 먼저 목숨 바쳐 사랑하셨고, 당신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도 알려주십니다. “서로 사랑하여라.”하지만 우리는 가까이 있는 이들조차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정 문제와 급우 관계 문제로 2년간 어려움을 겪다가 고3이 된 한 학생이 올해 초에 어머니의 병 진단 소식을 듣고 저에게 한 말입니다. “지금 사랑해야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도 벅찬데, 관계없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해야합니까?”

요즘 도서 검색을 통해 신간 책들이나 베스트셀러들을 보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신경 끄기의 기술’, ‘자존감 수업’ 등 자기존중에 대한 여러 주제의 책들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짐작건대, 많은 이들이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교우 여러분, 기쁨이 넘치도록 사랑하고 계십니까? 오늘 제2독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저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완전한 사랑은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도움과 은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고, 그 도움과 은총을 간절히 청하게 했습니다. 사랑이 힘든 이유는 불완전한 우리가 완전한 사랑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 그 자체이신 분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신앙은 사랑할 때 알게 됩니다.“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 대구대교구 박창영 레오 신부 -- 2018년 5월 6일
  |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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