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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형제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
조회수 | 2,410
작성일 | 06.05.19
오늘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나타나야 하는 형제적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것은 신약성서의 가장 깊은 관심을 나타내는 그 근거를 요한에 의한 서간에서 제시하고 있다.

제1독서: 사도 10,25-26.34-35.44-48: 성령의 은혜가 이방인들에게까지...

하느님의 성령은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들어오는 데 있어서 어떤 차별을 두시지 않는다는 것을 제시해 주신다(44-46절): "나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34-35절).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대우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도 사람을 차별대우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 앞에는 선악이 무제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랑이다. 비록 살인자라 하더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제2독서: 1요한 4,7-10: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리고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닮았으므로 사랑의 모상이다. 이 사랑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니, 우리가 사랑한다면 우리는 삼위일체적 삶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하느님께로부터 태어나게 된다(7절). 바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나 "하느님의 본성을 나누어 받게 되어"(2베드 1,4) 사랑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랑을 표현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본 모습이다. 이 사랑의 계명은 주님의 "명령"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인의 "지침"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생활을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즉, 사랑이신(8절) 하느님께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다.

복음: 요한 15,9-17: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오늘의 복음은 지난 주일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 즉 그리스도께 대한 결속과 공동체적 차원에서 그리스도께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들이 서로 만나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들로 만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에 대해 당신의 깊은 사고를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9절). 이것은 사랑의 의무에 대한 완벽한 표현이다. 이 사랑의 의무가 삼위일체적 사랑의 관계 안에서 제시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신 사랑으로,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신다. 이 같은 사랑을 우리도 형제들에게로 향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12절). 이것은 외적으로만 머물러 있게 되면 사랑의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 위에 죽으셨듯이 우리의 사랑도 구체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계명이라고 하신 것은 우리를 '당신의 사랑스러운 자녀'로, '친구'로 삼아주셨다는 사실을 늘 새롭게 의식하려는 삶 속에서 성립된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벗이라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14절)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그분의 친구라면, 우리도 그분과 같은 사랑을 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할 사랑의 모델로서 보여주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16절) 하셨다. 우리는 주님의 이런 사랑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드러내야 한다. 참된 사랑이란 다른 사람의 칭송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심 없이 주고 또 아무런 대가도 없이 베풀 줄 아는 것이다. 이 사랑은 그저 베푸는 사랑이다. 주님께 선택받은 자들로서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15,5)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그분과 일치하여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의 능력을 갖추어 그분 안에 남아있게 될 것이다.

주님의 사랑과 같이 사심 없이 베푸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은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우리의 사랑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변화시켜 그들도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그리스도적인 사랑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화로 이끄는 사랑이다. 오늘 복음은 '전교'에 관한 말씀으로 마치고 있다.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16절).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모든 사람들 가운데 선포되고 널리 퍼져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끼리 주고받는 사랑으로는 족하지 않다. 우리의 사랑이 보편적인 표지가 되어, 마침내 모든 사람이 말로만이 아니라 매일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형제적 공동체를 이룰 수 있게끔 하여야 한다.

참으로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 남아 있어 하느님 아버지와 깊이 일치되고, 주님을 통하여 그분의 사랑과 은총을 받으며,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에게 열려진 신앙인으로 썩지 않을 열매를 맺는 삶이 되도록 주님의 은총을 구하면서 이 미사를 봉헌하자.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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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그 말씀의 요지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이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 사랑에 머무를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사랑의 계명’을 지킴으로 가능하다. 예수님은 당신도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물러 계신 것처럼, 우리들 역시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 당신 사랑 안에 머물러 있길 원하신다.

그렇게 하면 뭐가 좋은가? 바로 기쁨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의 기쁨이 내 안에 있으면, 그로인해 나 역시 기쁨으로 충만하게 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쁨으로 가득찬 내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셨다.

그 혹독한 죽음의 길은 곧 희생의 길이고, 사랑의 길이며, 기쁨의 길이다. 이 죽음과 기쁨은 가를 수가 없으며 그 근본은 사랑이다. 사랑을 실천할 때 살펴보자. 사랑의 실천에는 거의 대부분 희생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희생 없이 사랑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희생이 예수님의 죽음에 조금이나마 동참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면, 그 길을 감으로 인해 기쁨이 충만할 것이며, 기쁨이 충만해 사랑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강론 준비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어느 신부님은 그것을 짐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과연 그 말씀이 옳다. 나 혼자 하는 고민도 아니고, 나의 동기 신부님들이 다 같이 하는 고민이며, 모든 신부님들이 하시는 고민이라고 여겨진다. 이것을 기쁨으로 여긴다면, 이 역시 사랑의 실천이 되리라고 믿는다.

예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여라!”이다. 이 계명을 지킬 때, 나 역시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될 것이다. 예수님도 분명 아버지로부터 계명을 받으셨다. 그리고 그 계명을 지킴으로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문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계명은 무엇이겠는가? “그들을 사랑하여라!”일 것이다. 성자께서 성부로부터 파견되시면서 받은 이 계명을 예수님은 자신의 삶 안에서 지켜나가신다.

사랑은 바리사이들을 향해 질책과 비난을 하기도 하고, 사랑은 배고픈 오천 명을 먹이듯 나의 것을 나누며, 사랑은 시몬의 장모의 열을 내린 것처럼 아픈 병자들을 찾아간다. 사랑은 죽은 사람을 살린 것처럼 죽어가는 사람의 마음을 살릴 수 있으며, 사랑은 제자들을 위해 친히 식탁에서 내려와 그들의 발을 닦아줄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은 십자가의 길을 간다. 이것이 실천이다. 이 사랑의 계명을 내 삶 안에서 지키고, 또 지켜나가려고 노력한다면 우리 역시 그분 사랑 안에 머물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윤석희(미카엘) 신부
  |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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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사랑은 개뿔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홀로 존재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동료라는 이름으로 누군가가 곁에 있지만 그들 가운데 내 마음을 온전히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고독합니다. 문득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면 누군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하지만 정작 외로울 때는 마땅히 부를 사람도 없습니다. 그 누군가 역시 나처럼 외로울 터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달을 보고 그렇게 하염없이 외로움을 달래는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주님이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주님을 친구로 삼기에는 우리의 믿음이 아직은 너무나도 인간적입니다. 그냥 푸념하듯이 주님 이름을 불러보지만 그런다고 뼛속깊이 시려오는 외로움이 가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나마 주님이름이라도 불러보면 좀 나을까 싶어서 성당마당을 서성이지만 그마저도 행여나 누구에게 들킬까 눈치 보며 돌아서기 일쑤입니다. 유독 성당 벽면에 새겨진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서로 사랑하여라.’ “쳇! 사랑은 개뿔…”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부분은 친하다는 이유로 혹은, 잘 안다는 이유로 나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합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에 벽을 두게 됩니다. 분명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소중하게 여기시고 은총으로 감싸주신다고 들었는데 성당에 와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하느님은 잘난 사람들만 소중하게 여기시고 은총으로 감싸주시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목소리가 크거나….

주일을 잘 지키고, 교무금이나 헌금 잘 내고, 판공성사 빠지지 않고 보면 아주 훌륭한 신자입니다. 게다가 봉사활동까지 하면 일등 신자입니다. 기도? 사랑? 그것은 각자 알아서 할 일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한 번도 성당에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야단맞은 기억이 없습니다. 주일미사 궐하고 교무금 안낸다고 야단맞은 적은 많아도 말입니다. 잘 몰라서 어리둥절할 때 자상한 배려와 환대를 받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규칙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고 면박을 당한 적은 많아도 말입니다. 그러면서 맨 날 입으로는 사랑타령입니다.“쳇! 사랑은 개뿔…. 너나 잘하세요.”

<수원교구 이근덕 헨리코 신부>
  |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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