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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느님의 대안
조회수 | 2,146
작성일 | 05.12.10
오늘은 자선 주일입니다. '자선(慈善)'은 '사랑할 자'와 '착할 선'으로 이루어진 참 좋은 단어입니다. '사랑스럽고 착한 일'이라는 말이겠죠. 사전적인 의미로의 '자선'은 '불쌍한 사람을 도와 줌'으로 설명됩니다. 불쌍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을 도와주는 것은 정말로 사랑스럽고 착한 일이라는 뜻이 됩니다.

쉽게 생각하면, 불쌍한 사람들이 보이면 측은하게 생각되고 그러면 얼른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그게 뭐 그렇게 사랑스럽고 착한 일일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모양입니다.

사실 자선은 참 힘든 일입니다. 왜냐하면 생각해 보세요. 내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기까지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런 생각하면, 그렇게 고생고생하며 모은 돈을 선뜻 다른 사람에게 내어 준다는 것이 정말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게 얼마나 어려웠으면 예수님도 '자선'에 대해서 많이 강조하셨고, 초대교회 때부터도 자선을 중요한 신앙인의 덕목으로 또한 회개의 표지로까지 강조하였을까요?

요즘 우리 사회는 과거의 어느 순간보다도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가난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여러 사회지표들은 그들이 겪는 가난의 모습이 단순히 상대적 빈곤만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 사회의 풍요로움이 모두의 풍요로움인지, 아니면 빈익빈 부익부의 결과로 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은 아닌지 자문해 봅니다.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과 왜곡 속에 오늘도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러한 모든 현실은 누구 탓입니까? 하느님 탓입니까? 아닙니다. 그건 바로 우리들 탓입니다.
어떤 사람이 마더 데레사 수녀님을 찾아와 물었습니다. "하느님이 계시는 데 왜 세상에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수녀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나누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가난을 어떻게 하면 해결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까?" 수녀님께서 조용히 대답하셨습니다. "당신을 포함해 우리 모두가 서로 조금씩 나누면 됩니다."

그렇다고 그냥 단순히 적선하는 마음으로 던져지는 한 뭉큼의 돈만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남는 것을 내게 주지 마십시오. 나는 여러분 양심의 진정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이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받고 싶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과 가난을 함께 나눌 의지를 가지고 주기를 바랍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사회적 가난과 고통, 불평등과 불의 앞에서 하느님께서는 과연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내어놓으신 최선의 해결책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단지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불의를 막을 수 있는 제도나 법규를 만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품고 착한 마음을 품은 우리들을 일으켜 세우십니다.

오시는 아기 예수님께서 주실 세상의 평화와 기쁨이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고루 전해질 수 있는 길은 우리 모두가 이웃사랑의 마음을 가슴 깊이 간직하여 진정으로 가진 것을 내어놓고 사랑과 정의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느님께서 손수 준비하신 대안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아멘.

황재모 안셀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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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삶을 실천합시다.”

찬미예수님!
우리는 살면서 높은 곳만을 바라보고, 높은 곳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나보다 더 잘 사는 사람, 나보다 더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 나보다 더 좋은 차를 타는 사람,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사람 등을 바라보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는 대림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대림시기는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성탄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강생구속(降生救贖)의 신비입니다. ‘강생구속의 신비’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구유에서 태어나신 분입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분입니다.

오늘날 사회의 가장 큰 이슈중의 하나는 ‘나눔’입니다. 1986년 미국 최대 석유 회사를 경영했던 록펠러는 5억 달러를 사회에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많은 갑부들인 빌게이츠, 헨리 포드, 워렌 버핏 등도 기부를 실천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몇몇 사람들이 이렇게 기부를 합니다. 기부천사로 잘 알려진 가수 김장훈을 비롯하여 많은 연예인들, 스포츠 선수들, 그리고 최근에는 안철수 교수도 기부를 하여 이슈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진정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눔은 내게 필요 없거나 남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눌 때 행복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까지도 우리에게 나누어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나눔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선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2차 헌금에 천 원짜리 한 장 더 넣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며,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언하는 것이 됩니다.

오늘은 대림 제3주일이자 자선(慈善)주일이고, 지난주는 인권(人權)주일이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어렵게 지내는 이들이 많습니다. 난방이 잘 되지 않는 집에서 추위에 떨면서 힘겹게 겨울을 맞고 있는 독거노인들과 소년소녀가장들 그리고 인간적인 대우를 호소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찾아보고 도움을 충분히 줄 수 있고, 우리도 뿌듯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세 번째 초를 밝히며, 내 마음의 초도 점점 더 밝아지고 있는지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잘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오늘 복음에서의 세례자 요한처럼 빛이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증거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야겠습니다.

이태균 스테파노 신부
  |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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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우리의 기쁨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대림 제3주일입니다. 그리고 자선주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의 시간, 여러분들의 일상에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세례자 요한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세례자 요한과 유다인들이 보낸 사제들과 레위인들의 대화를 듣게 됩니다. 그들이 왜 요한의 신원을 궁금해 하였는지는 접어두고, 우리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요한 스스로가 자신의 신원과 사명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리스도도, 예언자도, 엘리야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23)

요한은 스스로를 한껏 낮추며, 자신은 그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요한은 자신의 소명과 위치를 일단락 짓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주님 앞에서 자신의 소명을 다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대림시기를 보내는 이즈음 우리의 위치와 소명을 다시금 기억해 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는 나에게 주어진 소명은 무엇이고, 나는 지금 어디서 그 소명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 쁨

대림시기는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것이 기다리는 이에게 각자의 기대에 걸맞은 기쁨을 안겨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 예수님 기다림 속에서 막연하거나 혹은 분명하게 바라는 기쁨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정의가 이뤄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비가 이 땅에서 실현되는 기쁨일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이 이 땅에 강물처럼 넘쳐나기를 바라며, 그것을 참 기쁨으로 여기며 살고자 세례 받은 사람들입니다.

다시금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뜻을 기억하면서, 우리 각자의 소명을 돌아봐야겠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는 하느님의 기쁨 넘치는 세상, 정의와 사랑과 자비가 넘쳐나는 세상을 바라며, 하느님의 뜻에 함께 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오시는 예수님을 더욱더 기쁘게 맞이하고, 또한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이사 61,10)

<안동교구 김기현 모이세 신부>
  |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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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나는 누구를 어떻게 증언하기에 신명나하는가?

오늘은 대림 제3주일로 ‘기뻐하다.’, ‘즐거워하다.’라는 뜻을 지닌 ‘가우다떼’(Gaudate)주일입니다. 같은 의미의 ‘레따레’(Laetare)주일(사순 제4주일)과 함께 장미주일이라 불리고 장미색 제의를 입었고, 입당송에서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으니,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라.”(필립 4,4-5참조), 그리고 화답송에서는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루가 1,46-47) 등에서 ‘기쁨’을 주제로 전개되고, 그 동기는 ‘구원’, 즉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기다림이 너무 오래되면 지쳐서 포기하거나, 무엇을 기다리는지 잘 모르게 되거나, 기다리는 마음가짐이 느슨해지기가 쉽습니다. 하여 우리의 기다림으로 주어질 결과에 대해서 미리 조금 보여줌으로, 지쳐 중단하거나 느슨해지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주일입니다. 미리 앞당겨 그 기쁨을 맛보게 함으로 희망으로 기다림을 지속하여 구세주의 탄생을 맘껏 기뻐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갈수록 주인공을 하고 싶어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듭니다. 요한은 자신의 역할, 즉 보조역을 진실하고 성실하며, 겸허하게 수행하여 성탄을 맞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오히려 주인공과 보조역의 구분을 명확하게 지을 수 없도록 합니다.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 기쁜 성탄을 맞는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한의 사명은 예언적 사명입니다. 빛, 즉 예수를 증언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증언이란 직접적인 인식과 체험 그리고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손으로 만짐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자기 확신이고 믿음입니다. 결국 증언이란 진실과 거짓, 빛과 어두움, 신앙과 불신 등을 이미 체험했음을 전제로 합니다. 과연 나는 내가 고백하는 신앙에 확신이 있습니까?

요한은 자기에게 온 사람들에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요한 1,20), 엘리야도 아니다. 예언자도 아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서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23)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말의 소리는 그 말의 내용을 전달하고 그 일을 마칠 때 사라집니다. 그래서 그는(말은) 더욱 커져야 하고 나는(소리는) 작아져야 한다며 자기 임무를 마치고 나면 “이것으로 나는 기쁨에 넘친다.”라고 하며 사라져 버립니다.(성무일도 대림3주일 둘째 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 참조)

우리에게도 요한처럼 진실하고도 성실하며 겸허한 자세가 있어야만 성탄의 신비를 통해 우리 가운데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만나 뵐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토록 거룩한 분을 소개하고 증언할 수 있다는 것은 그분께 영광이기보다 내게 기쁨을 넘어선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 안동교구 이준건 콜베 신부 : 2017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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