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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조연으로서의 겸손함
조회수 | 1,846
작성일 | 05.12.10
언젠가 한 그룹의 신자들과 마주앉아 차를 한 잔 같이 하게 됐습니다. 어느 정도 대화가 무르익자 자신들이 소속된 본당 신부님들께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습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경쟁하다시피 칭찬들을 하시는데, 제가 샘이 다 날 지경이었습니다.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는 것 같아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신자들이 겪는 고초를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함께 눈물 흘리는 사제, 겸손하게도 신자들에 앞서 먼저 인사하는 사제, 본당 재정 적자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홀로 식사를 해결하는 사제, 미사 시작 1시간 전에 가장 먼저 성체 앞에 앉아 기도하는 사제,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사제,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푼도 쓰지 않는 사제, 신자들에게 민폐 끼치기 싫다며 죽기 살기로 축일 행사를 마다하는 사제, 전철 잘 운행되는데 자가용은 무슨 자가용이냐며 언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제, 인사이동 때면 모든 것 그냥 두고 모든 것 나눠주고 손가방 두 개만 챙겨서 바람처럼 떠나는 사제, 세례자 요한과 같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그 어떤 환상에도 빠지지 않는 사제….
 
오늘 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세례자 요한에게 보내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세례자 요한은 지체없이 대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오."

세례자 요한이 선구자로서 적격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요, 단지 그리스도에 앞서 파견된 존재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가장 큰 예언자로 불리는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그 어떤 환상에도 빠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당신은 누구요?"란 사람들 질문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습니다. 자신은 조연에 불과하고 주인공은 자기 뒤에 서 계시는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단호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오시는 예수님이 더욱 높이 올라가도록, 더욱 빛을 발하도록 자신을 최대한 낮춥니다.

세례자 요한이 조금이라도 덕을 덜 닦은 사람이었더라면, 선구자로서 삶의 준비가 부족한 사람이었더라면 백성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당시 올라갈 때까지 올라갔던 자신에 대한 높은 지지율을 바라보며 착각에 빠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파견된 자로서 자신의 소명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개인적 야욕이 스며드는 것을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파견하신 이유를 상기하면서 겸손의 덕을 청합니다.

이토록 겸손했던 세례자 요한의 삶, 그 배경에 무엇이 있었을까요? 세례자 요한은 오랜 기간 광야에서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강도 높은 피정과 자기 쇄신 작업을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잘 다스렸습니다. 고독과 침묵 속의 광야 생활에 충실했기에 세례자 요한은 지속적으로 하느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때 잘 나가던 세례자 요한을 사람들이 그냥 뒀을 것 같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저녁 한번 사겠다', '차 한 대 빼드리겠다'고 괴롭혔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부인들은 메뚜기와 들꿀로 연명하는 세례자 요한을 보며 "저런 저런"하면서 음식보따리를 싸들고 따라다녔겠지요.

그럴수록 세례자 요한은 더욱 더 깊은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더욱 더 깊은 고독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더욱 더 청빈한 삶, 더 정직하고 깨끗한 삶을 추구했습니다. 이런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겸손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한평생 예수님 선구자로서의 삶, 구도자로서의 삶에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의 연륜이 쌓여 가면 갈수록 우리에게 주어지는 과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세례자 요한이 우리에게 보여준 모범입니다. '예수님이 주인공인 연극에서 조연으로서의 겸손함.'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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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앓이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요한 1장 6-8절, 19-28절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공부해본 적이 있었는데, 세례자 요한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의 인물 됨됨이와 겸손함, 그의 강직함과 충실함에 완전히 매료되어 한동안 ‘세례자 요한 앓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유다 지방의 명문 사제 가문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늦둥이 아들로 태어납니다. 명가에서 태어난 외아들, 우여곡절과 큰 기대 끝에 태어난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그에 대한 교육적 투자가 컸을 것입니다. 오랜 세월 제대로 공부하였고, 큰 깨우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하신 선구자로서의 사명을 파악하게 된 그는 더 큰 뜻을 품고, 더 큰 깨달음을 위해 인간 세상을 떠나 깊숙한 광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복음사가들이 증언하는 것처럼 세상의 시류와는 완전 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다른 거짓 예언자들처럼 감언이설이 아니라 직설적 화법으로, 호의호식이 아니라 메뚜기와 들꿀을 주식으로 삼으며 낙타털옷을 걸치는 극단적 청빈생활로,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인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과 온전히 합일하는 집중적인 기도로...

호화찬란한 도심의 불빛을 떠나 깊고 어두운 광야, 춥고 배고픈 광야로 들어간 세례자 요한은 거기서 자신을 더욱 연마시키고 내공에 내공을 거듭 쌓아나갑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예언자로서의 사명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뿐만 아니라 초롱초롱한 눈, 명료한 의식으로 깨어 있다가 자기 뒤에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신속정확하게 알아보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이렇게 세례자 요한은 혀끝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구체적인 생활을 통해서, 온 몸으로 설교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자 요르단 강에서 자신의 모습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며 죄인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명 설교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물로 세례를 베풀기 시작합니다. 그의 설교가 얼마나 감동적이고 날카롭던지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의 권고에 따라 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런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수많은 제자들이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제자단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어떤 몰지각한 사람은 세례자 요한의 추종자들을 규합해서 정치세력화 했으면 하는 꿈까지 꿀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단 시일 내 세례자 요한은 자신도 모르게 전 국민적으로 선풍적 인기몰이를 하게 되어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란 한 인물의 등장을 계기로 형성된 특별한 신드롬에 놀란 유다 최고 의회는 사람들을 그에게 보내 도대체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게 합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세례자 요한의 대답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습니다. 거침없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당시 신발 끈을 풀고 매는 일은 노예 가운데에서도 가장 하급 노예나 하는 일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세례자 요한의 겸손을,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정확한 자각을.

세례자 요한은 정녕 충실했던 대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아무런 준비 없이 자신의 예언자 직에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보다 합당한 선구자이자 하느님의 종으로 스스로를 준비시키기 위해 깊은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극단적 금욕생활과 열렬한 기도생활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찾았으며, 다른 무엇에 앞서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기 위해 끝도 없는 고행을 계속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목숨을 건 준비 작업으로 인해, 그가 너무나도 잘 닦아놓은 길 위로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는 안전하게 잘 착륙하실 수 있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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