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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사랑의 순수한 초대에 동의하는 삶
조회수 | 2,015
작성일 | 05.12.10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오늘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제정한 제22회 자선주일입니다. 자선은 복음적 삶, 즉 회개하는 삶의 핵심적인 모습이며 이웃 사랑의 핵심입니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루가 3,11) 그리스도 최후의 심판의 절대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삶의 본질

그러므로 자선이란 그리스도인 삶의 본질이고 복음화의 절정이며, 본당 사목과 교구 사목의 핵심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자선이란 그리스도인에게 부수적이고 특수한 삶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실천을 소홀히 하고 있다면, 개개인이나 집단 이기주의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로의 초대

자선은 초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라는 숭고한 초대입니다. 기도와 전례 안에서 하느님 사랑에 길들여지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게 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이웃 사랑에 투신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넘쳐흘러 자연스럽게 이웃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기도하는 이는 진정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진정한 신비가는 진정한 활동가가 됩니다.

훈련

이웃과의 관계는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매일의 실천을 통해 성숙되어 가는 것입니다. 자선을 행하면서도 우리 안에는 동기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자선은 어쩌다 한 번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에게 시간과 노력과 가진 바를 지속적으로 나누는 것이 자선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순수한 동기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게 됩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마태 6,3) 예수님의 이 말씀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숨으라는 것일까요? 아마도 남에게 인정받고 싶고, 좀 더 편안하고 싶고, 자신의 힘을 더 과시하고 싶은 과도한 욕망으로부터 숨으라는 가르침으로 들려집니다. 보다 순수한 동기로 자선을 행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2차 헌금

특히, 오늘 자선주일에 우리들의 사랑과 정성이 모아지면 마산 교구가 좀 더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어렵고 소외된 이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보다 열린 마음으로 보다 순수한 동기로 2차 헌금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청준 F.하비에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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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은 회개의 증거이다.

묵상길잡이: 2005년도 저물어가고 있다. 한해를 주님 앞에 되돌아보며 정리할 때이다. 우리의 몫을 다하지 못한 죄스러움이 많다. 인간은 늘 회개하며 새로워져 가야 한다. 진정한 회개는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자선과 희사로 나타나야 한다.

1. 누가 메시아인가?

이스라엘 역사는 타민족에게서 볼 수 없는 특성이 많다. 그 중 하나가 메시아 대망(待望)의 사상이다. 주 하느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주셔서 "억눌린 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찢긴 마음을 싸매 주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리고, 옥에 갇힌 이들에게 자유를 선포할"(제1독서) 것을 믿고 있었다. 그들은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희랍, 로마 등 역사를 주름잡던 대 제국들의 세력다툼에서 메시아에 대한 희망으로 역사의 소용돌이를 이겨냈던 것이다. 예수님이 오실 당시에도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으며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은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누가 그 메시아인가?"를 알아보는 일이었다. 이때 이스라엘에는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 꿀을 먹으며 살아온"(마태3,4) 한 예언자가 나타났다. 세례자 요한 이었다. 그는 "회개하여라.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마태3,2.8)고 외쳤다. 백성들은 이 사람이 "오시기로 되어있는 그 분", 메시아가 아닌가 하였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대사제들과 레위지파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그 예언자요?"하고 묻게 하였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고 "주님의(오실) 길을 곧게 할" 사명을 띠고 와서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회개의 세례"를 베풀 따름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당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는 몸"이라고 말한다.

2. 주님의 길을 곧게 하는 것은 회개뿐이다

대림 시기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를 기다렸듯이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기이다. 오늘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여라.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고 외쳤다. "주님의 길을 곧게 하는 것"이 바로 회개라는 말씀 이다.

"모든 종교와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신(神)과 인간의 일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느님과의 일치' 이것이 신앙의 궁극 목표라면 이간이 어떻게 하느님과 하나될 수 있을까? 참기름 병에다 물을 붓고, 병을 한참 흔들면 물과 기름이 잘 섞여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있으면 곧 물은 물대로 기름은 기름대로 따로 따로 갈라진다. 물과 기름이 하나가 될 수 없듯이 죄(罪)와 하느님은 하나될 수 없다. 그런데 원죄로 인해 상처 입은 인간성은 "선을 결심하면서도 끊임없이 악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면할 길이 없다. 이렇게 인간은 누구나 하루도 죄와 무관할 수 없다.

하느님은 죄(罪)와 하나될 수 없고, 인간은 죄(罪)와 무관할 수 없다면, 인간이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하느님 앞에 죄를 뉘우치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죄를 떠날 수 없는 인간이 구원되는 길은 회개하는 길밖에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회개 없이 구원 없다"는 말은 참으로 명심해야 되 말이다.

3. 자선은 회개와 속죄의 길이다

오늘은 교회가 정한 '자선 주일'이다. 년 말이 가까워지고 있다. 거리에는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시기이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기도'와 '단식(고행)'과 '자선(慈善)'이 속죄의 대표적인 길이라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이 셋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자신을 하느님 앞에 비춰보는 기도의 시간 없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의 속죄를 결심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죄를 참으로 깨달았으면 그 죄를 기워 갚을 속죄 행위를 하게 마련이다. 이것이 단식과 고행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고행과 단식'은 단순히 인내심의 시험이나 고행 그 자체로 끝나서는 안된다. 단식과 희생으로 마련한 것들을 통해 불우한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자선'에로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기도'와 '고행(단식)'과 '자선'은 하나의 회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한해를 주님 앞에 되돌아보면서 주님께서 한없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리자. 그리고 그 감사의 마음에 우리의 부족한 모든 행실에 대한 속죄의 마음을 담아 우리의 가진 바를 이웃과 나누어야 한다. 우리의 크고 작은 희생과 사랑의 정성이 모이면 세상을 비추는 큰 불기둥이 될 것이다. 자선을 통해 우리 안에 주님이 태어나실 작은 구유를 마련하자.

유영봉 몬시뇰
  |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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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은 하느님의 사랑에 함께 하는 것!

대림 시기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강생신비를 묵상하며, 이 세상을 완성하기 위해 다시 오실 구세주의 재림을 합당하게 맞이하기 위하여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며 준비하는 은혜로운 시기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대림 3주일인 오늘을 자선 주일로 정했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선의 실천이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임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자선 활동은 이웃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활동입니다. 예수님의 아낌없는 사랑을 체험하고 간직하고 있는 교회는 사랑 실천을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실천은 교회가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도 되는 일종의 복지 활동이 아니라 교회 본질의 한 부분이며, 교회의 존재 자체를 드러내는 데에 필수적인 표현입니다(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회칙『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25항).”

그리스도교 사회복지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시작되며,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외아드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고,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시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시어 당신자신을 우리에게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자신을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는 받았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세주의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고 희망을 노래하면서 구원된 세상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선행위와 이웃사랑이 주님의 길을 곧게 내고 주님의 빛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자선주일입니다.

오늘 봉헌되는 2차 헌금은 교구와 본당 내 우리의 이웃 중에 어려운 분들을 위해 조직적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오늘 봉헌하게 되는 2차 헌금은 우리의 형제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그리스도께 드리는 예물이 될 것입니다.

곽준석 신부
  |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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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세례자 요한처럼

요즘에는 많은 사람이 자신을 드러내는삶을 살아갑니다. 그에 비하여 세례자 요한은 철저하게 빛을 증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실 어느 삶이 더 올바르다고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자신을 드러내고 알리는 일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분수를 제대로 알고 거기에 맞추어 살아가는 일 역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자 요한의 삶이 빛나는 이유는 겸손한 마음으로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끝까지 수행해 가는 불굴의 의지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1984년부터 대림 제3주일을 자선 주일로 정하고, 가난한 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해 오고 있습니다. 자선은 어쩌면 세례자 요한을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세례자 요한이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것처럼 자선 역시 스스로 자유로운 마음으로 실천해야만 합니다.

둘째, 세례자 요한이 겸손한 마음으로 살았던 것처럼 자선 역시 스스로 겸손한 마음이 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셋째, 세례자 요한이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수행했던 것처럼 자선 역시 스스로 낮추어 행하지 않으면 아
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넷째, 세례자 요한이 불굴의 의지를 가졌던 것처럼 자선 역시 불굴의 의지를 지니지 않으면 단순히 일회성행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례자 요한과 자선은 닮아 있습니다. 대림 3주, 주님을 열렬히 기다려온 세례자 요한처럼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자선을 행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만큼 아기 예수님께서 오시는 그 기쁨은 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천하는 만큼 은총 역시커지는 삶을 살아가시길 기도드립니다.

<마산교구 박철현 미카엘 신부
  |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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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나를 나누는 것은 나를 더하는 것입니다”

그 날은 어찌 그리 찬바람이 불었을까? 허나, 햇살이 비치고 바람이 멈춘다 한들 심장 속을 파고드는 가난의 찬바람은 어찌할까나?! 열아홉 피 끓는 청춘 ‘노화욱’은 막막한 가난에 한 숨 쉴 힘조차 없어 발길 닿는 데로 걷고 또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낯선 건물 하나가 눈앞에 드러났다. “천주교 마산교구청” 근방에서는 보기 드문 5층짜리 높은 콘크리트 빌딩이었다.

‘…이곳은… 그래 천주교… 천주교라! 이곳에 내 살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3 학생 ‘노화욱’은 무작정 교구청 안으로 들어가서 제일 높은 분을 찾았다. 드디어 만난 높으신 분. ‘장병화 요셉’ 주교님. 자그마한 몸집이지만, 사람을 꿰뚫듯 눈빛이 밝았다. 두려움에 더듬거리며 ‘칠천 원’을 꾸어달라고 말씀드렸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의 손에는 ‘만 원’이 쥐어져 있었다.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주교님의 부드러운 음성과 따뜻한 눈길이 떠나지 않았다. 천 길 낭떠러지 같은 가난에서 갈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하루하루 열심히, 참 열심히 살았다.

2006년 이른 여름, 교구청 사무실에 깔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신사가 들어섰다. 충청북도 정무부지사 ‘노화욱’이었다. 19세 피 끓는 청년이 34년 만에 지난날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나타난 것이다. 그는 너무나 어렵던 시절 작지만 큰 도움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고, 오늘의 자신을 만들 수 있었다고 고백하며 ‘일억’을 “임마누엘 장학회”에 장학금으로 선뜻 내어놓았다. 자신이 받은 은혜에 비하면 너무나 작아서 미안하다며…

가만히 되짚어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과 재물, 기도조차도 우리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의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시간을 나누어 봉사하여야 하고, 재물을 나누어 기부하여야 하며, 기도를 나누어 더욱 맑아져야 합니다.

자선 주일입니다. 나누어야 더 커지는 은총과 기쁨에 관한 이야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돌아가신 ‘박주선 안토니오’ 신부님께서 여러 은인의 도움으로 설립한 “임마누엘 장학회”에 도움 주시기를 청합니다. 미래의 하느님 일꾼인 학생들에게 나누는 기도와 재물은, 미래의 교회와 세상에 대한 봉사입니다. 도움 주실 분은 사무처 “임마누엘 장학회” 담당자 구미정 미카엘라<055)249-7015>에게 연락 주시거나 “국민은행 651-01-0800-750 (재)마산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으로 도움 주시기 바랍니다. 나를 나누는 것은 나를 더 하는 것입니다.

▥ 마산교구 백남해 요한 보스코 신부 : 2017년 12월 17일
  |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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