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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여백을 하느님으로 채울 때
조회수 | 2,192
작성일 | 06.07.29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군중을 먹이신 표징이야기입니다. 요한 복음 6장은 믿는 이들에게 예수님을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빵으로 소개합니다. 그래서 광주리에 남은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빵 조각들이었나 봅니다.

오늘 우리는 그에 대한 서론으로써 빵의 표징을 듣습니다. 요한 복음은 기적 대신에 표징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복음은 빵의 기적이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써 인간의 체험영역에 속하지만 이것을 (숨겨져 있는)영원한 생명을 주는 예수님에 대한 표징으로 제시합니다. 따라서 이 표징은 감출 수 없는 우리 믿는 이들의 삶입니다. 우리 삶의 여러 순간 그리고 사건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 듣고 보고 이야기 됨으로써 오늘 복음이 이야기하는 또 다른 빵의 표징으로 초대됩니다.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군중을 배불리 먹게 합니다. 필립보의 말 대로 이백 데나리온어치의 빵이라도 충분하지 않을 터인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모릅니다. 여러 가지로 유쾌하게 상상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천 명이 넘는 군중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고 풍성히 남았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어떻게 먹이셨는지 그 명백한 과정 혹은 정황을 우리는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에 의해서 분명하게 이루어지고 그 자세한 내막을 모르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 삶의 여러 사건은 빵의 기적처럼 표징이 될 것입니다.

지금 모든 본당은 주일학교 행사로 상당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행사는 이미 지나갔고 또 그것을 치르면서 다음 계획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필립보가 말한 대로 그 행사를 위해서 이백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준비를 합니다. 이백 데나리온! 우리의 계획과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 정도는 있어야 하고, 이 정도의 물적이고 인적인 지원과 이 정도의 인간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것에 대한 상징으로써의 이백 데나리온! 넉넉한 본당이든 넉넉하지 않은 본당이든 간에 늘 이백 데나리온에 미치지 못한 여러 가지 것에 대한 불만과 불평을 많이 하곤 합니다. 아마도 이백 데나리온 이상의 것이 있다 하더라도! 여하간 넉넉함과 부족함이라는 우리의 생각 속에서 일은 하나 하나 진행되어 갑니다. 어쩌면 이것은 결국 그것이 필요한 것이지만 인간 계획의 모든 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뜻합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외적인 요소의 그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우리는 예수님이 감사기도 외에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지만 당신은 확실히 이백 데나리온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넘치도록 풍성히 이루심을 봅니다. 예수님의 감사기도는 확실히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을 무엇으로 채울지를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깨달을 수 없지만 그 여백을 하느님으로 채우는 거기에 빵의 표징이 이루어 짐을 볼 것입니다. 공관복음은 제자들이 군중에게 빵을 나누어 주지만 요한 복음만은 예수님이 직접 나누어 주십니다. 제자들은 아무 것도 기여하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하는 것은 남은 빵을 거둬들이면서 예수님이 하신 일의 풍성한 결과를 마치 추수하듯이 기쁨으로 거두고 만끽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시기에 자만하지 않을 수 있고 실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며 추구하는 인간적인 영역(이백 데나리온)보다 실은 주님이 하시는 그 여백의 영역(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이 우리 삶에 훨씬 크고 결정적인 것임을 인정하고 체험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께 대한 표징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군중은 빵의 기적을 체험하지만­굶주림의 해결사로서 예수님을 찾는 것은 대단하지만……결국은 떠나간다­그것이 빵의 표징으로는 나아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이미 하였고, 지금 하고 있고 또 앞으로 하는 모든 것이 빵의 표징이 되도록 초대 하십니다.

의정부 김도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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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것보다는 더 나누는 것에

과일 한 봉지, 음료수 몇 병, 때로는 1~2 만원. 노동자들이 상담소에 오면서 들고 오는 것들입니다. 때로는 고맙기 때문에, 때로는 찾아오는 노동자들과 나누기 위해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많을 때는 백여 명이 일요일 하루에 상담소를 찾기에 충분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렵게 일해서 번 돈으로 고향에 송금도하고 자신도 생활하면서 이렇게 나눈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가 어려운 가운데 나누는 것이기에 소중하고, 우리 모두가 충만해집니다.

1독서와 복음은 의미의 맥락에서 같습니다. 엘리야가 사람들에게 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이도록 시종에게 요청하지만 대답은 충분치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종이 나누어주니 모든 사람이 먹고 남았습니다. 복음에서도 사람은 턱없이 많은데 먹을 것은 적었으나, 상식적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럼에도 나누어주니 충분히 먹고도 남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몇 가지 다른 점은 예수님이 받아서 감사드리고 나누어주었다는 것과, 남은 빵조각이 12광주리를 채웠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12라는 숫자는 이스라엘 지파, 예수님의 제자, 그리고 더 확장되어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아무도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님의 기적을 표징이라고 언급합니다.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의미들을 전달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빵이 많아진 표징은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의미, 즉 생명이 나누어지는 것을 말하며, 그 생명에는 누구도 제외되지 않고 충만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회이고 교회이고 제외되는 이들이 줄어들고, 나누는 이들이 늘어야 하느님 나라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시대는 있는 이들이 풀어야 없는 이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고 하면서, 있는 자들에게 더 혜택이 돌아가고 없는 이들에게서 더 가져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어나는 것은 사회의 안전망으로부터 점점 더 벗어나는 이들입니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관점을 떠나서 복음적인 관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남겨주신 열 두 광주리에 초대되고 또한 그 남겨진 열 두 광주리를 함께 나누도록 말입니다. 그것은 더 많아지는 것보다는 더 나누는 것에 관심을 갖도록 초대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남거나 모자라지 않는 것으로 표징을 끝내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았다는 것은 사랑이 그렇게 충만하기에 그런 것이고 모두가 이 사랑을 이어가도록 초대되는 것입니다.

조해인 바오로 신부
  |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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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제가 신학생 때 있었던 일입니다. 방학 중이었는 데 주일에 주임 신부님과 점심 식사를 같이 하게 되 었습니다. 교중 미사가 끝나고 사제관 식당으로 갔 습니다. 주임 신부님께서 식복사 자매님에게 식사를 같이 하실 분이 한 분 더 계시다고 말씀하시자, 식복 사 자매님께서는 밥이 모자란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자 주임 신부님께서 약간 언성을 높이면서 조 금씩 나누어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신부 생활을 하다 보니 갑자기 식사 초대를 받거나 사제관에 평신도를 초대하여 식사를 하게 되 는 경우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식복사 자매님에게 말씀드리면, 두 가지 대답이 나옵니다. “예” 하는 대 답과 “밥이 없는데요” 하는 대답입니다. 그런데 “예.” 라는 대답보다 “없는데요” 라는 대답이 더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 와 같은 내용을 전해주는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너 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제1독서에서도 엘리사 예언자는 어 떤 사람이 가져 온 적은 양의 양식을 백 명이 넘는 사 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주님 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 고 말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 되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예수님과 열두 제자가 먹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양식을 예수님께서는 배고 픈 군중에게 나누어 주심으로써 나눔의 기적을 행하 십니다. 넘치도록 많은 양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부 족한 가운데 나눔으로 진정한 나눔이 무엇인지를 예 수님은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위생상의 이유로 너무나 도 많은 음식이 쓰레기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또 어 떤 것은 가정집 냉장고 안에서 몇 개월씩 방치되어 있다가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 곳곳에서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 은지요. 더 나아가서 굶주림으로 인해 목숨을 잃어 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의 양이 지구촌에서 굶주리고 있는 몇 백만 명이 살아갈 수 있는 양식이라고 합 니다.

모자람 가운데서 나눔의 신비를 통하여 더욱 풍 성해진 오늘의 복음을 통해서 조금의 내어줌이 커 다란 기쁨을 가져다주고, 모두가 풍성한 삶을 살아 갈 수 있음을, 기적은 커다란 베풂에서 일어나는 것 이 아니라 조그만 나눔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나눔을 살아가 야 하겠습니다.

의정부교구 김시용 베드로 신부
  |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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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으로써 소유한다

'나눔'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가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나눔'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면을 보지 못하기에 갈수록 나누기를 꺼립니다. 인정이 메말라가고, 서로가 자신을 것을 챙기려고 바둥거리는 모습이 안쓰럽게 다가오는 요즈음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기적이 곧 나눔의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빵 한 개를 백 개로 만들고, 물고기 한 마리를 천 마리로 부풀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내 빵'을 '네 빵'으로, '내 물고기'를 '네 물고기'로 내어놓을 수 있도록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닫혀져 있던 마음을 열고, '나'와 '너'라는 울타리를 깨부수어 하나의 '우리'로 묶어 세우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에 함께 한 사람들은 이제 하나가 되었습니다. 나는 너의 것이고, 너는 나의 것임을 체험하였습니다. 이 체험은 세상이 주는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아름답고 감미로운 것이었기에, 사람들은 "이분이야말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예언자이시다." 라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외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기적, 이 체험, 나눔으로써 얻어진 소유는 결코 세상에서 말하는 소유, 인간적인 욕망에 따른 소유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달려들어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는 낌새를 알아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피해 가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안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에 초대받고 있습니다. 서로를 나눔으로써 서로의 소유가 되라는 초대를 받는 것입니다. 이 소유는 지배를 뜻하지 않습니다.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는" 소유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소유야? 이런 소유는 필요 없어.' 라고 말입니다. '소유'를 '지배'와 동일시하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예수님의 소유가 된 신앙인들은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자기 나눔은 성체 성사를 통해 절정을 이룹니다. 예수님게서는 성체와 성혈로 자신을 완전히 나누어주심으로써 우리를 당신의 소유물로 만드십니다. 성체를 모심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눔, 예수님의 소유는 곧 우리의 삶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완전한 나눔을 통해 완전한 소유를 이루어야 합니다. 내 자신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나'와 '너'가 하나가 됩니다. '나'와 '너'가 하나가 되는 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완전한 소유,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사랑이 담긴 완전한 소유입니다.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신 아름다운 소유입니다.

참 신앙인이라면 우리 자신을 벗들을 위하여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내어놓음으로써 서로를 소유해야 합니다. 서로를 완전하게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는 주님의 놀라운 기적을 세상에 드러내는 살아있는 표지가 될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의정부교구 상지종 신부
  |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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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기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군중들에게 먹을 것을 주십니다. 마태오 복음을 보면 이때 모여든 군중이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적을 하신 것은 군중이나 제자들이 부탁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 결정하신 일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인간의 감정이 아니라 전형적인 하느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당신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가엾이 여기심’을 나타내는 것이며 동시에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특징짓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먹을 것을 요청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취미생활이 있죠. 저도 취미생활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취미생활에 빠지다 보면 밥 먹을시간이 지났는데도 배고프다는 느낌이 없는 경우가 많이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에게 힘이 되는 것에 우선시되며 그것에 빠지면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분명 밥을 먹을 시간이 되었지만 주님의 말씀이 더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느끼며 집중하였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지금 필요한 것을 마련해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성체성사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빵과 물고기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이러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배고픔을 느끼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미사 때마다 우리가 모시는 그리스도의 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 안에 들어와 사라지지 않고 몸속에 현존하여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오천 명을 먹이신이 기적은 현재에도 세계 곳곳에 자신의 몸을 우리들에게 주시며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미사를통해서 오천 명을 먹이신 이 기적을 다시금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전적으로 자신 혼자서 기적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이 기적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을 가지고 있었던 아이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에게는 이것이 자신이 가진 전부였을 것입니다. 그 전부를 예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아이가 어떻게 예수님께 드렸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으나 그 아이의 마음이 바로 오늘의 기적을 일으키게 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들과 함께 모든 기적들을 일으키시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소중한자신의 것을 내놓을 때, 그것은 하늘나라의 징표가 될 것입니다.

▦ 의정부교구 오근 다니엘 신부 : 2018년 7월 29일
  |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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