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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나눔은 기적을 만든다
조회수 | 2,061
작성일 | 06.07.29
우리는 해변에 깔린 예쁜 조가비를 주으려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뻐보여도 다만 몇 개를 주을 수 있을 뿐입니다. 책상위에 조가비를 하나만 두면 참 예쁘지만 서너개를 놓아두면 그 하나마저도 예뻐보이지 않습니다. 그 하나가 더 아름다울 수 있고 사랑스러울 수 있습니다. 두개를 가지면 사랑스럽던 그 하나가 예전처럼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둘을 가지려고 합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이렇게 둘을 가지려다 그 하나의 절실함과 소중함마저 잃게 됩니다. 둘을 갖지 않는 다는 것은 나머지 하나를 다른 사람이 갖도록 하는 나눔의 마음과 행위입니다.

언제가 법정스님이 쓰신 "만년필을 하나 선물받자 지금까지 쓰던 만년필이 갑자기 전처럼 소중해지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읽고 느낀바가 있습니다. 법정스님은 "모자랄까봐 미리 걱정하는 그 마음이 바로 모자람"이며, "하나가 필요할 때 둘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장자도 "바르게 살아가려면 한발자국 앞에서 멎는게 옳다"고 했습니다. 욕심을 다 채우려하지 말고 약간 모자라고 아쉬운 듯한 상태에서 멈추는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한 발자국 앞에서 멈추기가 너무 어려워 딱 한발자국을 더 내디딤으로써 그만 벼랑에 떨어져 죽고 마는게 오늘 우리 삶의 정황입니다.

나약한 인간인 우리는 그 하나마저 버리기가 힘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둘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밥 두 그릇을 먹지 말로 한 그릇은 남이 먹도록 남겨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날 아침에 나 자신도 다시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은 영원히 남의 것이요. 남에게 죽어버린 것은 영원히 내 것이다." 라고 부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 많은 군중이 모이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변명합니다.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늦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은 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 사실, 우리도 이 제자들과 똑같은 말을 매일하며 살아갑니다. "난 시간이 없어", "우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나누기에는 내가 가진 것이 너무 없어"

제자들의 변명을 다 들은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수천명의 사람들이 빵과 물고기를 배불리 먹고도 몇 광주리가 더 남았습니다. 사랑은 나눔입니다. 그리고 그 나눔은 기적을 만듭니다.

대전교구 지경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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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믿음을 강조합니다. 그러한 믿음의 동기로 표징을 연관시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믿음’이란 명사를 쓰지 않고 ‘믿는다’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이 동사는 ‘안다’라는 동사와 병행해서 사용되기도 합니다. ‘믿는다’와 ‘안다’라는 동사는 동일한 대상을 목적으로 합니다. 아는 것은 믿는 행위 곧 신앙의 삶에 있어서 조건이자 요소가 됩니다. 믿음은 믿음의 내용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결단과 더불어 실제로 받아들이는 삶 그 자체인 것입니다. 믿음에 따른 자기희생은 바로 하느님이 보여 주시는 삶의 원리요 구원의 길이며 사랑입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이것을 실천한 사람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 아이가 내놓은 음식이 모든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열두 광주리의 부스러기를 남겼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예수님의 기적이 기적이라면 어른들이 주저하는 사이에 한 아이가 가진 것을 모두 내놓은 사실 또한 기적입니다.

성경에서 자비는 ‘정의’와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본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정의의 개념입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당신은 당신의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속한 것을 그에게 건네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자선이란 호의가 아닌 정의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해타산에 밝고 받는 것에만 익숙한 현대인들은 삶을 나누기보다 오늘 복음의 사도들처럼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에만 관심을 둡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기적을 통해 하느님의 깊은 뜻과 삶의 원리는 바라보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빵만 생각 할 때가 많습니다. 기적은 하느님의 뜻이요, 능력이며 삶의 원리입니다. 희생 없이 결코 삶으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 “일해서 죽은 무덤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흙과 더불어 적당히 노동을 하는 것이 최상의 건강비결입니다. 살아가면서 조금씩 부족함을 느낀다면 과욕을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부자가 될수록 욕심이 생기고 과식을 하면서 오히려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사람의 행복은 편리하고 풍요로운 것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조금 불편하고 부족한 것을 느낄 때에 훨씬 행복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삶에서 아이의 몇 조각 안 되는 빵을 기다리기보다 부자가 제공하는 대량의 빵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백 데나리온이 아니라 이 억데나리온도 다 채우지 못 할 탐욕 때문에 순수해야 할 교회의 본래 정신이 망가질까 걱정됩니다.

대전교구 최견우 사도요한 신부
  |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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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배불리 먹이시는 주님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 말씀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입니다. 많은 군중이 예수님께로 몰려들게 되었는데, 그들 모두는 무엇인가에 목마른 이들, 배고픈 이들 이었습니다. 목마르고 배고픈 이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길은 바로 넉넉하고 풍요로운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과 닮은 그대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필립보의 대답은 사람 수와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산하여 이백 데나리온 이상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빵을 구하기 위해 얼마가 필요한지 물으신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고 물으신 것인데. 필립보는 인간적인 셈을 한 것입니다. 인간의 셈을 넘어서시어 차고 넘치게 거저 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 예수님 당신 자신임을 알려 주고자 하신 것을 필립보는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군중들은 모두 자리 잡고 앉게 됩니다. 이들의 행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주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그들의 행위 안에서 그들은 큰 성물을 받게 됩니다. 자리 잡는다는 것! 이제 피서철이라 피서지에 가면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경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먼저 자 리를 차지해야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고. 늦게 오면 자리가 없어서 주변을 한창 서성거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더위를 피해 좋은 자리를 잡는 것 이상으로 우리는 주님께로 향해서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주님께서 알려주신 곳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내 자신이 어느 자리에 있든지 그 자리는 주님께서 마련해주신 것으로 생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떻게 하면 좋은 자리에 앉아서 아주 편하고 재미있게 살수 있을까하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서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자리에 살고 있음에 감사드리고. 또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게 되면 큰 은총을 받게 됨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위해 우리가 청한 것보다 더 풍성히 당신 은총을 내려 주십니다.

▦ 대전교구 김영삼 베드로 신부 : 2018년 7월 29일
  |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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