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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진정한 행복”
조회수 | 1,985
작성일 | 06.08.04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착각 중에 하나가 『외적인 성공이 행복을 보증 한다』라는 생각입니다. 이 착각에 의해 인간은 지금 현재 행복하지 못한 것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습니다. 그리고 상상합니다. 지금 행복하지 못한 것이 외부적인 어떤 것의 부족이기에 만약 나에게 더 좋은 집과 차, 혹은 멋진 직장이 있다면, 그리고 로또 복권에 몇 백억이 당첨된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 것이라 상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러한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결단코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외적인 성공은 행복을 보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합니다. 외적인 성공이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다만 현재의 감정을 증폭시킨다고 말입니다.

즉, 돈이나 승진, 그리고 복권 당첨 등 겉으로 보이는 성공은 현재의 감정을 부풀립니다.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한 상태에서의 외면적인 성공은 마음을 더욱 평온하게 하여 행복한 생활을 가져오지만, 이와 반대로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외면적인 성공은 오히려 이러한 상태를 더욱 악화 시킵니다. 즉, 행복을 이루어 놓지 않는 상태에서 많이 가지는 것은 삶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 한 예가 도박이나 복권으로 일확천금을 누린 사람들의 삶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현재 행복을 누리는 사람만이 돈 등 외적 성공이 행복을 더 크게 할 수 있기에 우리가 진정 행복을 원한다면 우리가 눈을 돌려야 할 곳은 외면적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내적 정신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적인 무엇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더 많은 것을 갈망하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인간은 항상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고, 더 많은 성공을 원합니다.

물론 처음 인간은 이렇게 원하는 것을 갖게 되면 행복해집니다만 그러나 그 행복했던 순간은 금방 사라지고 이보다 더 많은 무엇이 있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또 다른 환상을 찾아 나서는 것도 이 같은 인간의 근본 욕구와 관련이 있고 이 같은 욕구를 가지기에 인간의 행복은 외적인 성공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행복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행복은 외적인 조건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외적인 조건을 개선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의 마음이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변화 시키는 노력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지난 주 오천 명을 먹인 빵의 기적에 이어 나오는 내용입니다. 오천 명을 먹인 빵의 기적에 군중들은 열광합니다. 그래서 지난 주 복음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기 위해 예수님을 찾습니다만 예수님은 자리를 피합니다. 그러나 군중은 오천 명을 먹인 기적의 감흥이 너무 컸기에 결코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의 선교 본부인 가파르나움까지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아마 이 당시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찾으면서 생각했던 점은 오천 명을 먹인 빵의 기적과 같은 무엇, 영광스럽고 우리가 만질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외적이고 가시적인 무엇, 노력하지 않고도 주어지는 횡재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을 것이고 그것이 우리 삶에 의미를 줄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그들을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는 냉담합니다.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 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면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썩어 없어질 양식」과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이 비교 되는데 여기서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은 구체적으로 예수님 존재 자신과 성체성사에서 이루어질 성체와 성혈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폭넓게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당시 군중들이 가졌던 마음, 어쩌면 오늘의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마음에 대한 비판입니다. 서두의 말씀과 비교해서 말씀드리자면 우리 삶의 의미를 주고 행복을 주고 생명을 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외적인 무엇이 아니라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무엇, 29절에 나오는 하느님의 일과 관련해서 이야기하자면 하느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과 같은 내적인 정신이 바로 하느님의 일을 위한 우리의 행위요, 썩어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기 위해 힘쓰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내적 보화를 준비하는 한 주의 삶이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홍금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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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밥 먹고 합시다.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신 주님께서는 당신을 찾아 모여든 이들에게 영원 히 배 부르는 삶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굶주린 것을 보시고 가엾이 여기시어 손수 빵을 늘려 먹이셨는데, 그런 분이 이제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힘쓰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굶어 죽으라는 뭇인지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밥 먹고 합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니 먹고 합시다.’ 일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입니다. 반쯤 농담으로 알이 듣지만, 먹어야 살고 먹어야 일하니 먹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라고 하십니다. ‘썩어 없어질’이란수식이 붙긴 하지만, 양식을 구하려 힘쓰지 말라하니 이슬만 먹고 살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신부님은 배가 고프면 화가 난다고 하던데, 사람이 너무 배고프면 체면이고 뭐고 없게 됩니다. 너무 배가 고프면 먹는 생각 밖에 안나고, 먹을 것 밖에 안 보입니다. 그럴 때는 인간의 존엄성이고 어쩌고는 다 고상한 사람들의 헛소리로 들리고 당장 자신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만이 전부로 보입니다. 어쩌면 주님께서는 이것을 잘 아시기에, 생명의 가르침에 앞서 배고픈 이들을 먼저 배불리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배를 채워서 정신을 차린 그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건네십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고 말입니다.

군중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 떡고물 찾아 온 면이 없지 않았기에, 따끔한 말씀이었지만, 처음부터 이런 얘길 했으면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빵의 기적에 대한 체험은 그들을 조금 달라지게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주고받는 문답은 기적을 쫓는 군중의 본성도 드러내지만, 주님께서 하시고픈 본질적인 말씀도 담겨 있습니다. “하늘에서 참된 빵을 내려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내가 생명의 빵이다.” 아직은 이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빵의 기적은 언젠가 참된 빵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토대가 됩니다.

사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빵의 기적 후에 이어진 군중에 대한 가르침은 예수님께서 늘 강조하시던 말씀입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라하니,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좀 뜨악하게 하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일용할 양식을 청하도록 하신 것을 보면, 세상을 살아갈 ‘양식 따위’를 구하는 행위를 경멸시하며 금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기도 속에서도 일용할 양식에 대한 청원 보다 하느님에 대한 것들이 먼저 나오는 것을 보면, 먹고 사는 문제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나라와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먼저 찾고 구해야 할 것들이 하느님 의 나라와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창세 이래로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양식을 마련하여 주셨습니다.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창세 1,29) 마치 오늘 독서에서 탈출기의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것이 결여된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생수를 마셨듯이, 그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에게 하느님의 사랑은 멈추어지거나 불가능한 적이 없었다는 것 입니다. 그 바탕 위에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계시는 겁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6,27).

▦ 원주교구 김민규 요한 신부 : 2018년 8월 5일
  |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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