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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당신은 왜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조회수 | 2,161
작성일 | 06.08.04
"나는 그리스도는 좋지만 그리스도교 신자는 싫다.” 인도의 영원한 지도자 간디(1869-1948)가 교회에서 쫓겨나면서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온갖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면서 어려운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간디는 우연히 성서를 읽고 참으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위해 그의 일생을 바치겠다는 결심을 하고 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에 지나지 않는 미개한 나라였고, 인종차별이 심한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결심은 빛을 볼 수 없었습니다. 교회를 찾아다니며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여러 차례 청했지만 어느 교회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간디의 이 날카로운 비판은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유효한 말입니다.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아서 주님과 교회에 해를 끼칩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빵을 배부르게 먹은 군중들은 예수님을 구약에서 예언한 해방자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왕으로 모시려 했습니다. 군중의 속셈을 알아채신 예수께서는 산으로 몸을 숨기십니다. 군중은 예수님이 사라지신 것을 알고서 그분을 찾아 나섭니다.

왜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까? 군중은 예수님이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지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의 참뜻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분과의 진정한 만남은 가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애써 찾아온 군중에게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 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요한 6,26-27).

이러한 군중의 마음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우리 역시도 세속적인 이익만을 위해 예수님을 찾으려 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내 충족이 안 되면 불만과 불평을 터뜨립니다. 신앙을 단순히 우리의 세속적인 욕구를 채워 주는 수단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내 생활의 일부가 아니고 내 삶의 전부입니다. 현재에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삶이 진정한 신앙생활입니다.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당신들, 그리스도인이 우리와 다른 점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의 삶으로 보여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리스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허영엽 마티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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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 없어질 것과 영원한 것"

하느님께서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청하시겠습니까?
 
돈 때문에 걱정이 많으신 분들은 평생 쓰고도 남을 재산을 청하실 것이고, 몸이 아파 고생하시는 분들은 건강을, 자식교육 때문에 고민이 많은 부모는 자식의 성공과 건강을 청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이렇게 하느님께 청한다면 오늘 복음처럼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는 경고 말씀을 듣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예수님의 이 말씀이 신자들에게 이 세상을 떠나서 영원한 것만을 추구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런 뜻이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삶이 중요하기에 굶주리는 백성들을 위해서 그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는 빵의 기적을 일으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느님과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깨닫게 되기를 바라셨지요. 하지만 사람들 관심이 여전히 썩어 없어질 빵에만 쏠려 있었기에 이런 염려 말씀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가르침을 통해 영원한 것에 관심을 보이는 군중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하고 한 단계 높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은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어느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래 젊은이들은 여름 휴가철이라 바다로 놀러간다, 어학연수를 떠난다 하며 자기만을 생각하며 계획을 세우는데 성당 청년연합회원인 이들은 사회복지시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아기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아기들을 달래고 먹이며 생전 남의 빨래는 처음 하면서도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보는 저 역시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에 반해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아주 가난하게 살았던 부부가 있습니다. 이 부부는 너무도 가난하게 살았기에 억척같이 일해서 돈을 벌었고 자식들에게는 절대로 고생을 시키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어느 아이들보다 잘 먹이고 잘 입혔으며 자식들을 위한 일에는 액수를 가리지 않고 돈을 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입니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들을 보호하고 있으니 부모가 와야 한다는 통보였습니다. 깜짝 놀라 뛰어가 보니, 글쎄 그 집 아들이 강도짓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한 달 용돈이 30만 원인데 그것도 모자라서 세 녀석이 합세해 가난한 슈퍼를 털었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 이런 짓거리를 했느냐며 자식을 나무랐지만 아들은 조금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어서 돈으로 자기를 빼내 달라는 소리만 했습니다.
 
오직 돈만을 아는 이기적 아이로 키운 결과입니다.
 
세상에서의 안락함과 출세,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몸만이 아니라 정신과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아무리 몸이 편해도 마음이 불편하면 모든 것이 괴로워집니다. 몸이 불편해도 정신과 영혼이 평화를 누릴 때 진정 행복해집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이기양 신부
  |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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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람

오래전 본당에서 1년 동안의 예비자 교리를 마치고 세례성사를 위해 마지막 면담을 할 때였습니다. 그 때 형제 한 분과 나눈 대화가 제 기억 속에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신부님! 저는 시장에서 작은 신발 가게를 합니다. 사실 제가 성당에 온 이유가 신발을 많이 팔기 위해서였습니다. 옆 가게를 보니 주인이 천주교 신자라 성당 사람들이 많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세례를 받고 성당에 다니면 돈을 더 많이 벌게 될 것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교리를 배우면서 제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신앙을 가지는 것은 결코 순수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신부님! 제가 돈에 눈이 멀었습니다. 너무 죄스럽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형제님! 하느님은 형제님을 바로 그런 방법으로 부르셨나 봅니다. 이미 하느님이 다 아시고 용서해주셨을 것입니다. 용기를 갖고 세례를 받으세요.”

그분은 지금도 아주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찾아 배를 타고 멀리 가파르나움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군중들의 어리석은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썩
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라고 말입니다. 오직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고 하십니다. 헛된 것에 힘을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군중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빵의 기적을 올바로 이해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의 세속적 욕심을 한껏 채워 줄 분으로 기대했고, 충분히 자신들의 왕이 되고도 남을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의 중심이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군중들은“그럼,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하고 다그쳐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하십니다.

믿음을 이기적 욕심을 채우는 방편으로 생각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아주 왜곡되어 버립니다. 마치 부모님께 효도를 드리는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은 바로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어쩌면 그 옛날 예수님께 꾸지람을 들었던 군중이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이나 욕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잘못도 범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어느 때나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과 자신의 욕심 가운데서 갈등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오늘의 복음 말씀을 기억한다면 순수한 믿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허영엽 신부
  |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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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신병자가 밤에 몰래 백화점에 들어갔습니다. 이물건 저 물건을 살펴보다가 갑자기 물건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떼어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 붙였습니다. 만 원짜리 상품에는 백만 원을 붙여놓고, 백만 원짜리는 만 원을 붙이는 등, 온통 뒤죽박죽으로 가격표를 바꿔 달아 놓았습니다. 놀라운 일은 그 다음 날 일어났습니다. 아침에 백화점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들어왔습니다. 그러고서는 어떠한 이상한 점도 느끼지 못한 채 정신 병자가 바꿔 놓은 가격표대로 물건을 사갔습니다. 백만 원짜리를 만 원에 그리고 만 원짜리를 백만 원에….

현대인들의 잘못된 가치관을 비꼬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무엇이 중요하고, 정말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 제대로 모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 그래서 진정 가치 있는 것을 싸구려 취급하고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을 귀한 것인 양 착각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잘못된 가치관을 비판하는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예수님께서 꾸중하고 계십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 몹시 헤맵니다. 예수님께서 군중 가운데 한 아이가 가지고 있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할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하며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진정한 이유, 즉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표징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백화점에서 한 정신병자가 바꿔놓은 가격표대로 물건을 사는 현대의 우리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우리는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이기에 배고픔을 달래 줄 육신의 음식이 중요하지만 영적인 존재이기에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삶의 가치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입니다. 바로 생명의 빵입니다. 육적인 음식은 잠시의 배고픔을 달래주지만 영적인 음식인 생명의 빵은 영원을 달래줍니다.

그렇다면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을 구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 6,29)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은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오늘 제2독서의 에페소서 말씀에서처럼 헛된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아니라, 지난 생활을 청산하고 욕망에 사로잡힌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하느님의 모습대로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를 몸과 마음 안에 받아들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서울대교구 고준석 신부
  |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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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내가 생명의 빵이다.

신월동성당의 견진성사를 집전한 후 사진을 찍는데 한중학생이 “주교님, 이 책에 사인 좀 해 주세요!”하고 청하였습니다. 책 제목을 보니 현대인을 위한 창조와 진화 이야기인 「쇤보른 추기경과 다윈의 유쾌한 대화」였습니다. 반가움에 눈이 번쩍 띄어 “아주 중요한 책이니 꼭 읽어요!” 하며 사인해 주니, “벌써 다 읽었어요!”라고 당당히 말 하는 것 이었습니다. 참으로 대견하고 기뻤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Sapiens)」나 「호모데우스(HomoDeus)」를 읽다 보면 참으로 마음이 슬프고 우울해짐을 금할수 없습니다. 저자는 이 세상의 물질과 생명 세계는 ‘자연발생(自然發生)’으로 이루어지고 심지어 인간의 자유의지까지도 그러하다고 봅니다. 감성, 지성, 의지가 인간 인격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들도 자연발생적인 선택에 따라 움직인다고 합니다. 이는 인간을 구성하는 정신적인 실체나 본질은 물론, 물질세계의 근본적인 구성요소들까지도 부정하거나 상대화시킵니다. 이런 책들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지식은 결국 인간이 가꾸어온 문화와 문명을 오직 물질적이고 지상적인 역사 발전과 번영에만 국한시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라고 강조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원한 생명은 생물학적인생명과 구분되는 하느님의 생명이며 인간의 모든 근원적인 갈망을 채워주는 충만함(콜로 1,19; 에페 1,23 참조)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예수님께는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이 하느님의 권능이 미치고 그분의 손길이 가져온 열매요 결실인 표징(요한 6,26 참조)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신앙인이 가져야 할 현실에 대한 올바른 식별 기준이 나옵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현상 안에는 그 현상을 지탱해주고 존속시키는 실상(實相)인 실재(實在)가 있는데,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느님께서 이 현상 안에 계신다는 것 또한 진정한 현실(realitas)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해야 합니까?”라는 유대인들의 질문에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답변에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브 11,1)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은 만나(탈출 16,15 참조)가 모세가 아니라 하느님이 내려주신 빵이었으며 하느님은 지금도 계속하여 온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십니다. 더 나아가서 하느님은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서 당신의외 아드님을 강생의 신비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서 당신의 생명 자체를 주십니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 6,33.35)

▦ 서울대교구 구요비 욥 주교 : 2018년 8월 5일
  |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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