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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신앙으로만 알 수 있는 성체성사의 신비
조회수 | 2,410
작성일 | 06.08.12
성체성사의 신비는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이 접근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신앙은 항상 자극적이고도 선동적인 도전을 받는다. 바로 오늘 복음 내용이 이 점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주님의 제자들까지도 믿기를 거부한다는 것요은 신앙의 파탄을 의미한다: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 이것 때문에 요한 복음은 신앙의 명백한 요구조건과 동기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빵의 기적,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심, 가파르나움 회당에서의 담화, 즉 요한 6,1-66을 이끌어 들이고 있는 것이다.

제1독서: 1열왕 19,4-8: 엘리야는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하느님 산에...

‘음식’으로서의 성체성사에 대한 이야기는 제1독서에도 나타나고 있다.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 450명을 죽인 후(1열왕 18,40) 이세벨 왕비가 그의 생명을 위협하자 엘리야는 남쪽으로 도망을 친다. 그가 생각했던 것은 이스라엘의 순수한 야훼숭배 사상이었는데 그것이 수포로 돌아갔고, 이제는 절망을 하여 주님께 죽여달라고 간청하였다(4절). 그리고 피곤과 허기 때문에 싸리나무 덤불 아래서 잠이 들었다. 그 때 주님의 천사가 그를 흔들어 깨우며 먹으라고 하였다: “그가 깨어보니 머리맡에 불에 달군 돌에 구워낸 과자와 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그는 음식을 먹고 또 물도 마셨다. 그러고는 다시 누워 잠이 들었다”(6절). 엘리야는 다시 일어나서 먹고 마시고는 “힘을 얻어 사십 일을 밤낮으로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8절).

엘리야의 이 여정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40년 동안 광야를 헤맬 때 일어났던 빵과 물의 기적들이 새롭게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엘리야는 그렇게 음식을 통하여 힘을 얻고, 당신 백성과 계약을 맺으신(출애 19; 24; 34,10-28) 시나이산으로 간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여정에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음식 즉 주님의 몸과 피로써 양육될 때에 하느님께 이르게 된다.

복음: 요한 6,41-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41절). 이 말씀 때문에 유다인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 대한 모든 것, 즉 부모, 생활환경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데 있다. 자신들의 체험을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한 그 이상의 것은 사실일 수가 없다.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니 말이 되는가?”(42절). 이런 마음 때문에 빵의 기적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신적인 면도 잊어버리고, “세상에 오시기로 된 예언자”(6,14)도 까맣게 잊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받아들이기에 힘든 하느님의 행위와 말씀의 신비를 대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자세는 하느님의 말씀을 겸손되이 순종하는 자세로 듣는 것이다. 하느님은 사람을 차별하시는 분이 아니며, 어떤 사람은 그 신비에 초대하고 어떤 사람은 거절하는 분이 아니시며, 신앙은 하느님께서 변덕스럽게 주시는 선물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신앙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시다. “모두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45절). 그러나 모두가 다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그 군중들에게서 볼 수 있다. 그들은 기적을 체험하고 직접 그분을 만났지만 하느님 사랑의 신비에 대한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제 그 신비를 체험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즉 “듣고” “배운다”면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로서 받아들일 수 있고, 듣기만 하고 배우려하지 않고 논쟁만 하려고 한다면 예수님은 단순히 “요셉의 아들”(42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믿음이 변변치 않은 지성이나 닫혀진 마음 때문에 믿음을 갖지 못한다면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이다. 이 “웅성거린다”는 말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많은 기적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식량과 물이 부족하다고 투덜거렸던 것을 표현하는 것과 같이 사용되었다(참조: 출애 16,2-3; 17,3; 민수 11,1; 14,27; 1고린 10,10). 즉 굳어진 마음 때문에 예수를 믿지 못하고 파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선물을 받지 않음으로써 그들 스스로 구원계획 밖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신앙은 하나의 커다란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커다란 유익에 도달하는 길이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48절). 이 말씀은 인간들에게 당신 자신을 끊임없이 내어주시는 성체성사의 신비에 대한 말씀이다. 참으로 유다인들에게는 알아듣고 받아들이기 힘든 지나치게 감상적인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지성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과 믿음으로 받아들여 우리 자신을 변모시킬 수 있도록 하지 않는다면 그 신비를 거부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상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될 것이다”(51절). 이 말씀을 듣고 유다인들은 드러나게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52절).

예수님의 ‘살’은 연약한 존재이지만 신적 존재에 결합되어 있다. 이 신적 존재에 결합되어 있는 이 살을 인간들에게 먹고 살 수 있도록 주셨다. 그러기에 성체성사를 통해서 강생의 신비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귀중한 성사인가! “세상은 내 살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것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그 ‘살’이 바쳐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를 위해 바칠 내 몸이다”(1고린 11,24; 루가 22,19)라는 성체축성의 형식과 같음을 알 수 있다. 즉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즉 ‘세상의 생명’을 자기 자신을 봉헌할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체성사의 신비는 또한 수난의 신비의 계속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죽음에 처해진 것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생명의 신비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51절). 그리스도께서는 성체를 통해 우리를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주신다. 그 생명은 주님의 몸을 계속 먹음으로써 양육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이 성체성사를 통하여 강생의 신비와 수난의 신비를 지금 이 순간도 계속하고 계시기 때문에 여기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제2독서: 에페 4,30-5,2: 여러분은 사랑의 생활을 하십시오

이렇게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일원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 할 “새로운 생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선은 성령께 대한 충실성이다. 그분은 일치의 영이시기 때문에 교회 안에 분열이 있으면 슬퍼하신다(30절).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모범대로 서로 나누며 또한 용서하는 사랑을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32절).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의 거대한 불꽃을 상기시켜줄 뿐 아니라 항상 처음부터 새롭게 해주는 성사이다. 우리는 이 성사로 참 생명을 얻게된다. 당신 자신을 끊임없이 내어주시는 그 사랑의 성사의 삶을 우리도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도움을 청하며 이 미사를 봉헌하자.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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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빵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등장하는 많은 아이들이 애정결핍으로 인한 문제 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중 세 명의 아이들을 살펴봅시다.

1) 37회에 방영된 ‘자해소년’ 신효서입니다. 효서는 전형적인 애정결핍 아이인데, 싱글맘인 엄마와의 관계가 부족하여 나타나는 공격성이 보입니다.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벽에 머리를 박거나 소리를 꽥꽥 지르는 등의 자해행위를 합니다. 이런 증세는 모두 엄마와의 관계에서 아이가 애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결핍 상태에 있기에 발생하는 증상입니다. 그렇게라도 엄마의 관심을 얻으려는 마음일 것입니다.

2) 47회 ‘대물애착’ 장현준입니다. 대물애착 증세는 아이들이 인형이나 이불, 장난감 등에 애착을 보이는 것이 정도가 심해지는 것으로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나타나는 증세입니다. 현준이는 담요를 그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그 담요를 빼앗거나 할 때 과도한 저항 반응을 보이고 불안해합니다. 현준이의 경우에도 엄마에게서 사랑을 채우지 못하여 자신에게 익숙한 엄마의 대체물인 담요에 집착하는 애정결핍 증세를 보입니다.

3) 50회 ‘동생이 미워’ 권태우입니다. 동생을 미워하는 태우, 하지만 그 정도가 다른 집 아이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주변에 사람이 있건 없건 동생을 괴롭히고 때리는 태우 또한 애정결핍에 의해서 나타나는 행동을 보입니다. 자신의 물건을 동생이 건드리는 것에 대해 강한 적대심을 보이고 그로인해 또 동생에게 폭력을 일삼습니다. 동생이 자신에게 와야 할 부모의 애정을 빼앗아간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렸을 때 채워지지 않은 사랑은 클수록 더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황금뭉치’라는 이름으로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한 애정결핍으로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표현한 자신의 글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목이 마르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오직 물만 마시고 싶듯 어린 시절 ‘애정결핍’으로 인해 남자가 조금만 잘해주면 사랑에 푹 빠지게 되고 쉽게 배신을 되풀이해서 당해서 엄청난 고통으로 다시는 사귀지 않을 거라 했지만 또 다시 자기에게 잘해 주는 남자가 생기면 언제 버림받았냐 싶게 또 사랑에 빠졌다. 여러 번 임신을 했었고 그 때마다 남자들의 반대로 유산을 했었다. 여자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충격적인 일들로 죄책감에 몸부림쳤고 그거리글 20세부터 긴 세월 동안 겪다보니 30대 중반인 나는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었다. ‘그동안 남자들은 나를 성적인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았구나!’ 술에 취하면 남자라면 모두 죽이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혀 내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갔고 그동안 당했던 수많은 일들에 뒤엉켜 술에 의존하게 되었고 점점 마음의 고통에 시달려 자살을 시도도 했고 직장생활을 하 수 없게 되어 여기저기 상담을 다녔지만 별 효과가 없었는데 직장에 나이 많은 푸근한 큰언니 같은 상사의 권유로 용기를 냈었다. ... 특히 최면 속에서 동영상으로 보이는 내 어린시절 내 부모들이 이혼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내가 공포에 떨었는지... 조금만 큰 소리만 나도 난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리고 조바심 나고 우리 부모가 헤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 버림받지 않을까 늘 학교에 갔다 오면 집에 아무도 없어서 날 버리고 두 분이 모두 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함 등등, 내 어린 시절이 얼마나 불행했는지 내가 얼마나 부모의 사랑을 원했는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친구처럼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갈구했는지 그 애절한 내 자신이 정말 불쌍한 장면들이 생생이 떠올랐다. ... 그 시절 내가 너무 불쌍해서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박사님은 예쁜 인형으로 어린자아를 달래주고 위로 해 주었을 때 나도 모르게 편안해지고 푸근함을 느꼈다. 또한 남자들에게 당했던 분노 표출을 하고 나니 머릿속이 혼란하면서도 후련하고 뭔가 늘 답답했던 것들이 뻥 뚫린 것 같았다. ...”

[출처: 국제심리연구원, 상담사례, 황금뭉치,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한 애정결핍으로’]

저는 이 사례를 읽으면서 한 편으로는 공감이 가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어렸을 때 채워지지 않았던 애정이 과연 예쁜 인형을 통해 채워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인형은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2004년 7월 검거돼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 살인범 유영철은 “잡히지만 않았다면 100명도 더 죽였을 것”이라며 섬뜩한 말을 내뱉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범죄 심리전문가로 이름을 날린 전 미국 FBI 심리분석관 로버트 K 레슬러는 흉악 범죄자들을 대면해오면서 범행 현장, 희생자, 여타 증거구성 요소를 통해 범죄자들의 유형을 찾아냈습니다.

왜 살인을 저지르는가? 레슬러는 더할 나위 없이 정상적으로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살인마로 돌변하는 일은 절대 없다고 말합니다. 살인의 전조가 되는 행동은 어린 시절부터 존재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전된다는 것입니다.

살인범의 다수는 어린 시절 부모, 특히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나 혼자 버려졌다.’ 거나 ‘나는 쓸모도 없는 놈.’ 이라는 식의 고립감이 커질수록 내부의 공격심도 증폭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듯 심리학자들은 애정결핍이 사람을 살인자로 만든다고 합니다. 위의 자매처럼 부모로부터 채우지 못했던 애정을 남자로 채우려 했지만 남자들은 그 결핍을 메워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 여자가 만났던 남자들도 자신이 받는 애정에 만족하는 이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어느 정도씩은 애정결핍입니다. 상대도 사랑을 받고 싶은데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될 때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자신도 싫어지고 다른 사람도 싫어지는 것이고 결국 조건만 주어지면 살인까지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아야 자존감이 커지고 죽고 싶다거나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갖지 않게 만듭니다. 그러나 자존감은 사랑을 충분히 받은 사람이라야 크게 자리 잡습니다. 자존감이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인데 사랑받지도 못하는 자신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넘치는 사랑을 받았을 때는 사제가 되어 첫 본당에 갔을 때입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신자 분들이 저를 사랑해 주셔서 정말 사제가 되기를 잘 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유학을 나오니 다시 외톨이가 되고 사랑해 주는 사람도 주위에 없고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오니 그 허전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먹고 자기만 하였습니다. 그것으로 공허한 마음을 채워보려 한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살만 찌고 귀가 안 들리는 등 몸만 나빠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외국에 사는 몇몇 신자 분들이 강론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공부하면서 매일 강론을 쓴다는 것은 피가 마르는 고통일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강론을 쓰기 위해 먼저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강론을 읽는 많은 분들이 생겼고 그 분들의 응원과 사랑이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사랑은 삶의 힘입니다. 애정결핍은 삶을 지치게 만들어서 자신도 죽이고 타인도 죽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많이 받아야 됩니다. 그러나 사랑은 주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먼저 밥이 되고 사랑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받지 않으면 어떻게 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고 세상에 생명을 주는 당신의 살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사랑의 결정체인 그 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그 분의 사랑을 받습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그리스도로부터 받는 더 큰 사랑의 표징인 성체를 모시는 사람이야 얼마나 큰 자존감이 생기겠습니까? 우리는 하느님께서 직접 주시는 사랑의 양식을 먹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런 자존감이 그리스도를 닮아 우리도 살아있는 작은 빵들이 되게 하고 그렇게 이웃의 사랑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체를 자주 영합시다. 그러면 저절로 자존감이 생기고, 그래서 사랑을 줄 수 있고,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아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신부
  |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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