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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나의 삶이 예수님의 삶이 되도록
조회수 | 2,429
작성일 | 06.08.12
여러분들의 기도와 사랑으로 이곳에서 건강하게 기쁘게 사목하고 있습니다. 소임을 끝마치고 기쁜 얼굴로 다시 만나길 기다립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요한복음 말씀으로 당신을 먹고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기쁜 소식입니다.

성체성사의 교리는 우리 그리스도교만의 특이한 교리인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와 교리가 있고, 그 종교를 만든 교주들이 있지만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는 말씀을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성서에서 먹는다는 동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뜻의 음식을 먹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 원문에 따르면 “사람을 죽인다, 학대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 봉헌의 길, 봉사의 길을 가면서 우리의 삶을 하느님 아버지께 내어드린다는 것입니다.

사제서품을 받고 첫 미사를 봉헌했을 때, 기억에 남아 있는 새로움은 성찬의 전례의식이었습니다. 늘 미사를 참여하면서 보았던 성찬례인데, 제 자신이 직접 미사를 주례하면서 주님께 올리는 성찬례는 특별했습니다. 제 자신이 성찬례를 거행하며 성체와 성혈을 들어올렸을 때, 제 자신도 들어올려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처럼 사제도 하느님과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기꺼이 들어올려져 봉헌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삼 또렷한 의식으로 마음 속에 각인되었습니다.

이제 막 사제가 되어 첫 번째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저에게 예수님은 “너는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마실 수 있느냐?”(마르 10, 38)고 물으셨고 저는 “예, 할 수 있습니다”(마르 10,39)고 대답하며 성체와 성혈을 제대 위에 들어올렸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제직, 왕직, 예언직을 수행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요한 6,51)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수난과 죽음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신앙인으로서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우리의 삶의 여정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님의 살과 피가 우리의 양식이 되고, 미사 중에 거행하는 성체성사에 깊이 참여하며 비로소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음식은 먹는 사람의 체질을 변화시키고 지워지지 않는 향기를 남깁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로 체질이 변화되고, 예수님의 사랑의 향기로 세상을 꽃피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혜로운 신앙의 눈을 가지고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헌신적인 사랑을 끊임없이 성찰케하는 성체성사는 그 어떤 보화보다 더 가치 있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는 은총의 성사입니다. 미사에 참여하면서 이러한 성체의 의미를 되살리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의 성체로 우리 모두의 삶이 예수님의 삶이 되길 바라며,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먹고 마시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 안에서 일치를 이루길 기도합니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건강하시고, 소임을 다 마치고 우리 의정부교구에서 다시 기쁘게 만나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의정부교구 한정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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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을 보고 살을 내어주기

외국인 때문에 공장이나 농장을 방문할 때가 있습니다. 사업주가 외국인을 아들처럼 딸처럼 대해 준다고, 가족처럼 대해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외국인이 묵는 숙소나 그들이 받는 처우를 보면 자기 자식이나 가족에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또는 금전에 관계된 문제를 꺼내면 언제 가족처럼 그랬냐는 식으로 욕설을 퍼붓기도 합니다. 물론 외국인이 잘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체로 사업주의 말을 믿기 어렵습니다.

그들 중에는 개신교 신자도 있고, 천주교 신자들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 모르다가 그들이 신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실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실망한다는 것이 새로울 것도 없는지 모릅니다. 돈과 관련되어서 신앙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히 이들의 문제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때로 저의 모습 속에서도 신앙과 삶이 분리되어 살아가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하느님의 영역을 따로 떼어 놓고 그분은 거기에서만 활동하도록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통해 빵을 먹었으면서도 예수님을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육체적인 배고픔을 채워준 아주 능력이 많은 사람으로 보고 따랐으나 실제로 예수님의 출신이 드러나니 그것마저도 어떻게 가능하겠느냐는 식으로 변합니다. 그리고는 가졌던 모든 기대마저도 없어집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네 마음속에, 구원자는 인간성의 영역을 넘어서 초월적인 힘을 사용하는 자이거나 다른 세계에서 와야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구원자가 우리와 같은 인간성을 지닐 수 없다고, 우리와 같이 약하고 부서지는 존재일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것이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으로 분리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 것입니다.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은 물리적인 배고픔만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배가 고파도 인간의 품위가 손상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에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온 빵, 생명을 주는 살을 이야기함으로써 육화를 이야기하고 인간의 품위를 회복하도록 보이는 빵을 통하여 통합성을 보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통합된 배고픔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통합된 양식을 필요로 합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인간성에 걸린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본다면 걸려 넘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간성을 통해, 구체적인 역사 안에서 굶주림을 보고 살을 내어준 것을 알아들어야 하고 그 너머에 참다운 생명으로 초대되었음을 보고 그분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모두 하나입니다.

조해인 바오로 신부
  |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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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

안식년을 지내면서 겪었던 일들이 많았습니다. 일선에선 느끼지 못했던 왠지 떨어져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와글와글 북적이던 곳에서 조용한 곳으로, 해야 할 일, 정리 해야 할 것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제일 힘들고 신경을 써야 했던 부분 중에 하나가 매일 식사를 해서 먹어야 하는 불편함이었습니다. 오늘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반찬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루 이틀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일주일, 이주일, 한 달을 생각해 보면 막막했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를 해야 하고 청소와 빨래를 하다 보니 하루가 금새 가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전업주부가 된 셈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생활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침 일찍 출근전쟁에 저녁까지 근무하고 퇴근전쟁을 치루고 나서야 집에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부지런해야 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한 한 해였습니다.

매일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또 남은 쓰레기는 분리해서 버려야 하고 해 주는 것만 먹었을 때와 해 주는 것과의 차이를 심하게 느끼면서 살아가야 하는, 목적이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면서도 목을 매야 하는 실상을 겪습니다. 더욱이, 세상이 주는 기쁨과 행복이 오래가지 못함을 알면서도 늘상 새로운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들입니다.

여기에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기쁜 소식은 다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을 먹기 위해서 그만한 노력이나 절대적인 매달림이 부족한 우리에게도 거져 내어 주시는 생명의 빵입니다. 아무 대가도 없이, 당신을 내어 주시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믿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하시면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진지한 물음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중대한 결심이 지금필요한 때입니다.

의정부교구 전세원 루도비꼬 신부
  |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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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주님의 산에 올라가요.

요즘 날씨가 많이 무덥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어디론가 시원한 계곡을 찾아 떠나고 싶은 날들이 이어집니다. 이럴 때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가 있는 산이라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산에 오르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게 됩니다. 길 찾기, 먹을 것, 누구랑 함께 가는 지 등등 계획을 짜면서 여러 번 수정을 통해 산을 오르게 됩니다. 산을 오르다보면 힘들 땐 옆에서 잠깐 쉬고 지치면 간단한 먹거리를 통해 에너지를 보충하고 산에 오릅니다. 오르면서 친구들과 담소도 하며 고민도 이야기하며 오릅니다. 결국 예정된 곳에 도착하면 한없이 기쁨에 차, 마냥 즐겁습니다.

제가 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신앙의 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의 산은 앞서 말한 보통 산과는 다릅니다. 보통 산들과 달리 신앙의 산은 모래로 이루어졌습니다. 계단이나 바위, 자갈, 다져진 흙이 아닌 모래로 이루어졌습니다. 모래산이기에 지친다고 힘들다고 잠시 쉬면 쉬는 시간만큼 밑으로 내려갑니다. 그렇기에 잠시도 쉴 수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걸음을 걸어야 오를 수 있는 산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산에 오를 때 힘들면 어떻게 하지? 못 쉬면 어쩌지? 배고프면 걸으면서 먹어야 하나? 혼자가면 심심할텐데, 같이 갈 사람은 없나? 이러한 질문의 답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신앙의 산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산에 갈 때는 보통 산을 오르는 것처럼 많은 준비를 하는 것보다 하느님이 일러주시는 길을 따라 하느님이 주시는 것을 먹으며 올라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함께 가고 싶다면 그 옆에는 항상 예수님께서 동행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산에 오를 때,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힘들다 싶을 때 경사를 낮춰주시고, 지쳤을 때 힘이 나는 먹을 것을 주시고, 외롭다고 느껴지면 예수님께서 동행해주시니 말입니다.

신앙의 산을 오르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정상으로 인도해주심을 기억하고 당신의 말씀이 한 조각의 빵이 되어 힘을 주고 당신의 말씀이 시원한 음료가 되어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것을 느끼며 기쁘고 즐겁게 신앙의 산을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 의정부교구 노주현 베론 신부 : 2018년 8월 12일
  |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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