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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생명을 주는 빵
조회수 | 2,300
작성일 | 06.08.12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말씀에 군중들은 혼란스러워합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니 말이 되는가?"하면서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인간적인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던 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군중은 왜 예수님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을까요? 예수님이 베푸시는 기적을 가까이에서 보고도 말입니다. 그것은 첫째로, 예수님의 인간적인 배경(가족관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과 수많은 기적들을 보며 저런 능력이 어디서 났는지 놀라워하면서도 예수님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둘째로,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베푸시는 현실적인 혜택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 이상의 것을 볼 마음의 문, 신앙의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예수님 안에 현존하는 신성을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면서 예수님 안에서 신성을 발견한 이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과 구원의 말씀이었고, 참으로 기쁜 소식이었을 것이며,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며 하느님을 찬미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성체와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은 우리들의 생명의 양식입니다. 주님은 성체와 말씀 안에 현존하시며 우리를 찾아주십니다.

몇 년 전에 공소에 나가시는 할머니 한 분이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병자상사를 드리러 간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 병자성사를 드렸는데, 성체를 영해드리기 전, 할머니께 성체를 보여 드리며, '성체'라고 몇 번 소리를 질러도 할머니가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오래 동안 냉담을 하고 있던 환갑이 넘은 며느리 되는 분이 갑자기 할머니 귀에 대고는 '하느님 아버지 밥'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자리에 함께했던 교우들과 함께 한참을 웃었지만, 참 정확한 표현이었습니다.

은혜로운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미사성제는 주님께서 손수 마련하신 '사랑의 식탁'입니다. 또한 구원의 은총이 충만히 내리는 '은총의 식탁'이자, '구원의 식탁'입니다. 미사성제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주어지는 구원의 은총이 충만히 내리는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미사성제는 우리 신앙의 삶에 있어 가장 은혜로운 시간이며, 가장 중심이 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성찬례 안에서 사제의 축성을 통해 밀떡이 주님의 몸으로, 포도주가 주님의 피로 신비롭게 변화됨을 믿습니다. 주님은 성체와 성혈 안에 참으로 신비로운 방법으로 현존하시며, 오늘도 우리를 찾아 주십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 사랑과 구원과 은총의 식탁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며, 모두가 구원의 은총을 충만히 받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미사의 은혜로움을 깊이 깨닫고, 열심히 미사에 참례하며 성체 안에 현존하시며 우리를 찾아 주시는 주님을 경건한 마음으로 자주 받아 모시도록 해야겠습니다.

안동교구 이희정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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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빵

안녕하십니까! 무더위에 다들 잘 지내시지요! 형제 자매 여러분!
움직이는 모든 물체는 에너지가 공급이 되어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경운기도 기름을 넣어야 움직이고 다른 농기구도 그렇습니다. 움직이는 모든 생물체도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사람도 먹어야 삽니다. 먹지 못하면 죽습니다.

요즘 건강하게 살려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들을 많이 합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 운동, 음식, 명상 등을 통하여 건강하고 행복하게 삶을 유지하려 합니다.

아무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아니 건강 이전에 생명을 유지하려면 음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오늘 1독서에 나오는 엘리야도 천사가 주는 빵과 물을 먹고서 하느님의 산에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건강을 원합니다. 그러면 좋은 음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좋은 음식은 무엇이 좋은 음식이냐? 그것은 재료가 살아있는 것이라야 합니다. 상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면 상한 음식이어서 먹지를 못 합니다. 싱싱한거! 살아있는 거라야 됩니다. 그래서 바다를 건너오면서 약을 치거나 냉동을 한 재료들은 싱싱하지 않습니다. 싱싱하지 않은 것은 맛이 없습니다. 살아 있는 맛이 나질 않습니다. 싱싱하지 않은 것으로 살아있는 맛을 내기 위하여 식품첨가물을 넣습니다. 이러면 사람의 몸이 건강하지 않습니다.

제가 바닷가에 사는 데, 살아있는 생선으로 요리를 하면 그 맛이 아주 좋습니다. 죽은 생선으로 만든 음식과는 엄청난 맛의 차이가 납니다. 살아있는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섭취하면 몸은 그냥 건강해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는 몸만 건강하면 됩니까? 살아있는 음식은 몸만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뇌)도 건강하게 만들어 선한 생각을 하도록 합니다. 우리의 머리가 선한생각을 하도록 하면 우리의 마음이 따뜻하게 움직입니다. 그러면 내 삶이 싱싱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몸은 싱싱합니다. 살아있습니다. 식품첨가물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빵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십니다.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미사시간 영성체를 통해서 살아있는 예수님의 몸을 모시는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을 살아갑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예수님의 생명을 살아가는 모습일까요?

해답은 오늘 2독서에 있습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4,31)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에페5,2)

형제 자매 여러분!
이렇게 2독서의 말씀처럼 살 때,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을 먹고 생명을 살아가는 신앙인이 아니겠습니까! 날씨는 무덥지만 살아있는 신앙인으로 열심히 살아갑시다.

장현준 에프렘 신부
  |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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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홍수에서 참된 말 찾기

사람의 이동이 많은 휴가철입니다. 이때에는 불의의 사고들도 많고 대자연도 몸살을 앓겠지만 언론을 통해 듣지 못하는 많은 뒷담화나 소문들을 종종 나누게 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가끔은 삶의 맛을 느끼게 하기도 하는 뒷담화는 인간 세상이 불평등하고 불공정할 때 횡횡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 복음에서도 역시 우리의 일상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이번에는 뒷담화가 문제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요한 6, 41)고 하시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곤 ‘요셉의 아들 아닌가?’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가?’ ‘저 사람이 어떻게….’하는 식의 자기들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쏟아냅니다. 그리고는 수군거림을 넘어 심지어는 ‘말다툼’(6, 52)까지 벌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군중들이 알고 있던 지식으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만나를 먹은 조상들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기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해 보면 예수님을 정상적인 상태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들과 같은 마을에서 자란 분이었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세상에서의 사실관계가 오히려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을 깨닫는 데에 방해거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결국 군중이 가지고 있었던 지식과 정보는 일상사에서 변화 없이 살아온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또한 어딘가에 매이고 무엇에 집착하여 근본을 깨닫기 어려운 인간 실존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과 삶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섭리를 일깨워주십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6, 43)는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의 변화의 중심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간 삶의 역동성은 바로 하느님 말씀에 있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어맡겨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6, 49)는 말씀으로 확인시켜 주십니다.

나아가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6, 51)고 하심으로써 인간의 조건에 맞추어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십니다. ‘살’ 곧 ‘몸’은 인간의 실체를 이루는 모든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간의 가능성과 나약함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살’은 그리스도께서 참 인간이 되셨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간의 구원과 하느님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 ‘살’은 예수님의 죽음이 지니는 세상 구원의 차원을 드러내는 전통적인 사상이 담긴 표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6, 51)는 말씀을 통하여 군중으로 하여금 논란을 일으키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그 논란을 통해 군중을 당신의 가르침 안으로 끌어 들이십니다. 인간의 부족함마저도 인간 구원의 과정으로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곧 논란을 통해 군중들이 참된 진리, 참된 생명에로 나아가도록 이끄시고 계십니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뒷담화는 대개 잘못된 정보들로 사실관계나 인간관계들을 왜곡시키곤 했습니다. 생명은 참된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평등하지 못해 정의가 실종되면 이 뒷담화나 소문은 사실관계나 인간관계를 오히려 보완해주는 기능도 수행해 왔습니다. 곧 뒷담화는 다양한 형태의 언론의 통제와 독주로 말미암은 말의 독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복음의 상황처럼 말입니다.

안동교구 정진훈 타대오 신부
  |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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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육적인 물음, 영적인 물음

내적 인간의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두고 수군거립니다. 그분 말씀의 뜻을 영적으로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들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라 부르는데, 그분의 신비스러운 탄생에 대해 모르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수군거림이 배고픔을 느끼지 못해서임을 아십니다. 그들이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며, 이것 또한 신비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을 아들에게로 이끌어 주시며, 아들은 나중에 아버지께 나라를 바치십니다. 이는 종속이 아닌, 서로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로 이끌고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께로 이끄십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주신 믿음의 선물 덕분에 그리스도께로 오며, 따라서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우리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이는 강제로 이끌려 온 이가 아니라 진리를 알기를 갈구하듯 그분을 알고자 갈망하며 그리스도의 계시를 본 이 입니다.

하느님은 아들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는 교사이십니다. 궁극적으로 믿음은 하느님에게서만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은 사람들 모두가 하느님에게 배우게 될 것이라고 썼습니다.

사람들 모두가 그리스도에게 올 것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는 아무도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의 목소리를 통해 가르치시는 것을 듣습니다. 하느님 안에 있는 이들만이 온전하게 하느님을 볼 수 있으며, 아들께서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성령을 통해 그분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믿는 이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을 죽인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나는 생명의 빵”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생명의 빵임을 강조하시는 것은, 죄도 자기만의 고유한 빵, 곧 ‘죽음’을 가지고 있고 그분은 죽음과 대립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빵을 먹는 자들은 자기 죄 속에서 죽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당신께서 주시는 한없이 만족시키는 빵을 배고파하고 목말라하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입니다.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과 우리를 합쳐 하나의 빵 덩어리로 만들기 위하여 당신의 몸을 반죽하시며, 이 결합을 통해 부패와 그 안에 숨어 있는 죽음을 파멸시키십니다. 성찬의 살아 있는 빵은 만나보다 훨씬 위대합니다. 그 빵은 영원한 생명의 실체인 그리스도의 몸을 주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는 이는 합당히 생명을 지닙니다. 이 빵은 곧 죄의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처음에는 우리에게 당신을 젖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린 아기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영적 음식을 주십니다. 그것은 오늘날 성찬 때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지금도 비처럼 쏟아지는 만나입니다. 흩어진 알곡들인 우리는 이 빵을 받음으로써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거룩한 빵 안에 모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빵을 당신의 ‘살’이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간의 몸값으로 당신의 육을 내주셨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말씀께서 육이 되심으로써 당신의 육이 생명을 주게 하시어, 그것을 먹는 모든 이가 생명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위해 당신의 몸을 바치셨고, 그 몸을 통하여 생명이 우리 안에 머무르게 하십니다.

▦ 안동교구 최상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2018년 8월 12일
  |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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